(21)지식인집단과 과학적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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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통제불가능한 수준으로 확산 중이다. 백신의무화 반대시위로 캐나다 수도가 마비됐고, 미국과 유럽은 사실상 방역을 포기했다. 팬데믹의 유일한 희망인 백신은 음모론으로 몸살을 앓는 중이다. 누군가는 이런 모습을 보며 반지성주의라는 단어를 꺼내들고 싶을 것이다.

2022년 2월 12일(현지시간) 미국-캐나다 국경 태평양 고속도로 국경 교차로 인근에서 코로나19 백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2022년 2월 12일(현지시간) 미국-캐나다 국경 태평양 고속도로 국경 교차로 인근에서 코로나19 백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팬데믹과 반지성주의 그리고 지식인

팬데믹 이후 반지성주의에 대한 칼럼이 쏟아져 나왔다. 신학자 강남순은 반지성주의를 바이러스라고 부른다. 그는 트럼프와 그 추종자들을 반지성주의의 상징으로 본다. 그는 “비판적 사유하기의 연습, 지속적인 자기학습, 타자와의 인내심 있는 대화”를 통해 “나와 우리 속의 반지성주의라는 바이러스를 적극적으로 물리쳐야” 한다고 우리를 훈계한다. 하지만 유럽의 백신반대론자들이 인문학적 교양의 부족 때문에 시위에 나선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그들은 ‘자유’라는 인문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백신에 반대한다.

현병호는 <반지성 주의보>라는 책에서 코로나19 팬데믹보다 더 위험한 ‘인포데믹(잘못된 정보나 악성루머 등이 매우 빠르게 번져가는 현상)’의 근저에 ‘반지성주의’가 깔려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 세계에는 반지성주의라는 유령이 배회하고 있”지만, “이 유령을 사냥하려고 동맹을 맺은 집단은 없다”고 한다. 그는 “유럽 귀족사회에 대한 반발이 미국 반지성주의의 흐름을 낳은” 것처럼, 어쩌면 현재의 반지성주의는 잘난 척하는 권력과 이에 기생하는 지식인에 대한 민중의 반발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태극기 부대는 고졸의 노인들이 “대졸 86세대의 잘난 척에 대항하는” 반지성주의 운동으로 본다.

김진경은 톰 니콜스를 따라 반지성주의의 배경을 첫째, 인간의 심리학적 본성인 확증편향과 평등평향(평판을 생각해 자신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의 의견을 끝까지 듣는 행위), 둘째, 대학의 비판적 사고 교육 부실화, 셋째, 인터넷을 통한 지식의 무분별한 확산, 마지막으로 민주주의 개념의 뒤틀림으로 구분한다. 그는 전문가와 일반인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비민주적인데, 서구 민주주의 사회는 이를 민주적으로 잘못 해석했다고 말한다. 이 4가지 배경보다 더욱 근본적으로 반지성주의를 추동하는 뿌리는 종교다. 반지성주의가 종교와 만날 때마다 사회의 비극이 가중됐다.

반지성주의가 확산하면서 ‘지식인의 죽음’이라는 화두도 유행한다. 반지성주의 확산에는 분명 지식인의 책임이 있다. 지식인은 지식의 생산과 유통 그리고 교육을 직업으로 삼는 이들이다. 사르트르는 지식인이 자본가 계급의 착취를 폭로하고,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 중간층이라고 말했다. 푸코는 권력이 자신의 행사를 위해 지식을 필요로 하며, 따라서 지식의 생산 속에는 권력이 관철돼 있다고 밝혔다. 촘스키는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적합한 대중에게 가능한 범위 내에서 진실을 찾아내 알리는 것이 지식인에게 주어진 도덕적 과제”라고 말했다.

과학적 열망과 지식인집단

집단지성이 화두가 되면서 한국사회에서도 지식인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다. 사회학자 김동춘은 지식인이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율성을 가져야 하며, 사회적 약자를 옹호해야 한다고 말했고, 김병익은 지식인이 창조적이며 비판적인 자유를 지녀야 한다고 말했다. 손석춘은 대학, 자본, 권력의 삼각동맹 속에서 지식이 도구화됐고, 지식인의 도구화가 대학을 망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 모두는 인문학적 지식인이다. 한국사회의 지식인 논의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인문주의적 편향이다.

반지성주의에 대한 논의 대부분은 반지성주의와 ‘과학’적 지식의 관계를 지적하고 있다. 창조론이 상징하는 미국의 초기 반지성주의도, 현재 벌어지고 있는 백신음모론 속에도 분명 정상적인 과학이 인정할 수 없는 주장들이 주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도 황우석 사태와 광우병 촛불집회, 천안함과 세월호 등의 굵직한 사건들 속에서 반지성주의가 각종 비과학적 음모론으로 나타나는 상황을 목격해왔다. 하지만 우리는 단 한 번도 반지성주의를 과학적 맥락에서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다. 지금까지 과학이 사회에 기여하는 방식을, 혁명적 발견과 이를 통한 세계관의 변화라는 구도 속에서만 다뤄왔다.

과학은 자연을 발견하는 방법론과 과학자사회가 지식을 생산하고 발전시키는 방식으로, 우리의 일상과 사회에 기여할 수 있고, 또 기여해왔다. ‘과학적 삶의 양식’은 과학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숨은 방법이며, 해리 콜린스 같은 학자는 바로 “과학적 지식이 아닌 과학적 열망이 민주주의 사회를 구성한다”고 주장한다.

반지성주의와 지식인의 논의에서 무시돼온 다른 화두는 ‘지식인집단’이다. 한명의 지식인이 세계를 변화시킨 사례는 거의 없다.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지식과 사상은 대부분 혁명적 소그룹 혹은 학파라는 형태의 지식인집단을 통해 등장했다. 17세기 보일과 훅이 주도한 ‘보이지 않는 대학’은 훗날 영국왕립학회가 됐고, 18세기 영국 버밍엄의 만월회는 영국의 공학과 교육 및 산업의 진흥을 이끌었다. 양자역학의 기초를 만든 코펜하겐 그룹, 노버트 위너의 사이버네틱스 그룹 등은 과학사에 흔히 등장하는 혁명적 소그룹이다.

혁명적 소그룹은 여러 특징을 보여주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공유철학’의 존재다. 비엔나 학단은 자연과학의 통일법칙을 찾으려 했고, 20세기 미국의 메타피지컬 클럽은 미국의 정신을 찾아 미국의 근대화를 이루려 했다. 19세기 말 일본에는 서양문물을 배워 일본을 근대국가로 변화시키려는 이들이 ‘요시다 쇼인의 촌숙’에 모여들었고, 메이지 시기 일본의 근대화는 ‘메이로쿠샤’라는 지식인집단이 그 철학적 기반을 마련했다. 대부분 기존의 제도에 저항하는 인물들이 이들 혁명적 소그룹을 구성했고, 오래된 제도와 관습의 실패를 새로운 학문적 방법론과 제도적 혁명을 통해 해결하려 했다.

한국사에도 의미 있는 지식인집단이 존재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들이 그렇고, 대한제국기 개화당과 독립협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국사의 지식인집단은 대부분 엘리트주의에 빠졌거나, 과학기술과 연결점을 찾지 못한 채 사회의 변혁에 실패했다. 인문학적으로 편향된 엘리트주의 전통은 명문대 교수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굳건하다.

역사학자 이영석은 책 <지식인과 사회>에서 18세기 중반 스코틀랜드 계몽운동을 소개한다. 실패한 지식인집단의 역사만 간직한 한국의 지식인들이 살펴볼 이야기가 많다. 데이비드 흄과 애덤 스미스 등 에든버러 지식인들은 영국에 복속된 조국 스코틀랜드에서 새로운 도덕철학을 구상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뉴턴과 베이컨의 과학적 방법론을 받아들였다. 혼란의 시기를 횡단하고 있는 한국사회엔, 그런 지식인집단이 존재하는가.

<김우재 낯선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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