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와 침묵이 만들어내는 하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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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연극은 시각적 이미지의 영향력이 큰 장르다. 하지만 니나 레인 작, 박정희 연출의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은 시각적 이미지보다 침묵, 소리, 대화, 노래, 음향효과 등 청각적인 이미지가 훨씬 강력한 작품이다. 8년 만에 무대로 돌아온 이 작품의 첫 장면은 암전 속, 오케스트라의 악기 조율하는 소리로 시작하는데 조명이 들어오면 바로 주인공인 빌리네 가족이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저녁식사 장면으로 바뀐다. 제각기 소리를 내는 악기들의 불협화음, 그것이 바로 이들의 대화다.

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노네임씨어터컴퍼니 제공

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노네임씨어터컴퍼니 제공

비평가인 아버지와 추리소설 작가인 어머니, 언어학을 공부하는 형과 오페라 가수 지망생 누나에 이르기까지 빌리네 가족은 모두 특별히 세련된 말과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로서 이들의 대사는 각기 특별한 자기만의 음색과 음역을 갖고 있다. 여기에 말을 듣지도, 하지도 못하는 청각장애인 빌리의 침묵이 들어감으로써 시끌벅적한 대화와 고요한 침묵이라는 청각적 대조가 도드라진다. 한 가족 안에서 펼치는 이러한 선명한 청각적 대조를 통해 이 작품은 궁극적으로 ‘소통’과 ‘이해’라는 보편적이면서도 어려운 주제를 그리고 있다.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에 등장하는 가족 구성원에게서 일반적인 의미의 ‘소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잘 살펴보면 극중 대부분의 장면에서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듣는’ 사람은 없다. 이는 그 자체로 가족의 소통 부재를 드러내는 하나의 장치라 할 수 있다. 또 빌리를 제외한 가족 모두가 비평가, 소설가, 언어학자, 오페라 가수 등 언어 관련 일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우리의 언어가 과연 진정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인지도 묻는다.

빌리의 가족은 모두 엄청나게 많은 말을 쏟아내지만 다 겉돌고 떠돌 뿐, 의미 있는 말은 하나도 없다. 다들 열심히 떠들며 자기 생각과 존재를 주장하지만 그들의 언어는 공허하고 그토록 열심히 주장하는 주체성 역시 그리 선명하게 와닿지 않는다. 빌리는 침묵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보하고 수화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주체성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이들과 다른 지점을 보여준다.

이 작품이 향하고 있는 또 하나의 축은 ‘차별과 배려’로 대표될 수 있는, 장애인을 향한 우리의 이중적인 태도다. 작가는 극중 청각장애를 가진 등장인물(빌리와 실비아)과 그렇지 않은 인물들의 갈등을 통해 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그들이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영향을 받는지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특히 빌리로 하여금 수화를 쓰지 못하게 한 가족의 태도는 이러한 문제점을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빌리네 가족은 청각장애를 가진 빌리를 비장애인과 똑같이 취급한다. 비장애인처럼 행동하도록 요구한다. 얼핏 보면 차별 없는 태도인 것 같지만, 실은 그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생각을 강요하는 이기적인 요구다. 당사자의 욕망을 전혀 알려고 들지 않은 채 자신의 입장에서 그들을 ‘배려’한다고 생각하는 것, 바로 거기서부터 차별이 생겨난다는 것을 작품은 넌지시 비춘다.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는 주제를 향해 상당히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1월 18일부터 2월 27일까지, 국립정동극장.

<김주연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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