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폭염·가뭄·홍수…밴쿠버 덮친 기후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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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는 캐나다 서부 태평양과 맞닿은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 서남단에 있는 아름다운 도시다. 토론토, 몬트리올에 이어 캐나다에서 세 번째 큰 도시로, 한국인을 포함한 많은 민족이 함께 모여 사는 이민 도시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밴쿠버는 높은 위도(북위 49.3도)에 위치해 다른 캐나다 도시(토론토 북위 43.7도·몬트리올 북위 45.5도)보다 추울 것 같지만 서울(북위 37도)보다 겨울 날씨가 따뜻하다. 적도에서 올라온 따뜻한 태평양 해류가 밴쿠버 서쪽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따뜻하고 습한 바람은 겨울철 밴쿠버 해안지역의 기온을 높인다. 이 습한 공기는 해안을 지나 동쪽에 있는 로키산맥을 타고 상승하면서 한껏 머금은 습기를 밴쿠버에 쏟아내 겨울에 비가 많이 내린다. 이런 특징 때문에 밴쿠버를 ‘레인쿠버(Raincouver)’라 부른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건조하며 겨울에는 따뜻하고 습해 세계에서 살기 좋은 도시 상위권에 올라 있다.

시원했던 여름, 폭염 찾아와

‘살기 좋은’ 밴쿠버와 주변 BC주가 지난해 여름부터 이어지는 기후재앙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밴쿠버 주변은 평년기온이 영상 22도 정도다. 밴쿠버 인근 도시 리턴이 지난해 6월 말 무려 49.6도까지 올라가는 열돔현상을 기록했다. 캐나다 역사상 최고의 온도로, 에어컨을 거의 설치하지 않는 밴쿠버 시민에게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고온이었다. 열돔은 지열로 뜨거워진 공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대지를 또다시 데워 온도가 올라가는 현상으로, 항상 시원한 여름을 보낸 밴쿠버에선 보기 힘든 기후재앙이었다.

지난해 여름, 뜨겁고 건조한 날씨로 BC주에선 무려 1500건이 넘는 산불이 발생했다. 주지사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40번 이상의 대피명령을 내렸다. 약 5700명과 2900개 건물이 산불 피해를 입었다. 최고 기온을 기록했던 리턴의 한 마을은 90%가 산불로 파괴됐다. BC주에서 발생한 산불의 스모그가 토론토까지 영향을 미치는 등 산불의 크기를 실감케 했다.

폭염과 산불도 심각했지만, 그보다 더한 폭우와 홍수가 밴쿠버 지역을 휩쓸었다. 지난해 11월부터 BC주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면서 수천명의 주민이 집을 떠나 대피했고, 밴쿠버는 사실상 봉쇄됐다. 홍수로 인한 산사태까지 겹치면서 캐나다 최대 항구인 밴쿠버항으로 통하는 모든 철로가 끊겼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정체됐던 공급망이 아예 막혀버렸다. 존 호건 BC주지사는 다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여행금지령을 내렸다. 캐나다 국영방송인 CBC 메인뉴스는 2주일 동안 이 사태를 첫머리에 보도하며 심각성을 알렸다.

밴쿠버와 BC주는 왜 이렇게 홍수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을까? 원래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인데 왜 미리 방비하지 못했을까? 그 답은 홍수에 대비한 하천설계에 있다. 인류는 초기 문명부터 물의 접근이 용이한 강을 중심으로 도시를 만들어왔다. 예를 들어 초기 문명으로 알려진 메소포타미아의 어원적 의미도 ‘두 강 사이에 있는 땅’이란 뜻을 가진다. 강을 중심으로 만든 도시는 항상 재앙적인 홍수의 피해에 노출돼 있고,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은 도시계획의 우선 과제였다. ‘예상 가능한’ 홍수에 대비해 하천 제방을 높이고 세굴(국부적인 침식) 및 침투가 발생하지 않도록 설계하는데, 일반적인 계획 홍수량은 50년에서 100년 사이에 한 번 올 수 있는 최대 홍수량을 고려한다. 지난해 BC주의 홍수는 500년에 한 번 발생할까 말까 하는 규모로,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었다. 당연히 기존의 홍수 방비책은 유명무실했고, 물은 도시를 침탈해 도로와 철도망을 붕괴하고 인명손실을 가져왔다.

영국 글래스고에서 청소년 기후활동가들이 지난해 11월 2일(현지시간) ‘기후의 역습을 막아야 한다’고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 참석한 세계 정상들을 향해 촉구하고 있다./AFP연합뉴스

영국 글래스고에서 청소년 기후활동가들이 지난해 11월 2일(현지시간) ‘기후의 역습을 막아야 한다’고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 참석한 세계 정상들을 향해 촉구하고 있다./AFP연합뉴스

기후변화, 멈출 수 있을까?

밴쿠버 지역의 폭염, 가뭄으로 인한 산불 등의 근본 원인은 궁극적으로 기후변화 때문이다. 지구온난화가 시작되면서 대기가 더 많은 수분을 보유(대기는 1도 상승 시 약 7% 더 많은 수분을 보유)하고, 이는 지구상 물의 순환사이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기후변화를 야기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따뜻한 대기는 물의 증발을 높여 대지 표면을 더 건조하게 했다. 특히 밴쿠버 지역은 뜨거워진 공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면서 열돔현상이 발생했다. 건조해진 지표면은 가뭄을 심화시키며 대규모 산불사태를 BC주에 초래했다. 건조해진 토양은 단단한 땅의 특성으로 비가 왔을 때 많은 물을 흘려보냈고, 기록적인 폭우와 함께 처참한 홍수사태를 불러일으켰다.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지난해 밴쿠버 지역에 나타난 극한 날씨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의 영향이 ‘예상보다 빨리’ 도래하고 있고, 그 영향은 재앙적”이라고 말했다. 캐나다 정부는 다가오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연방 ‘재난 완화 및 적응기금(Disaster Mitigation and Adaptation Fund)’을 2018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기금은 캐나다 지역사회가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기반 시설을 마련하는 프로젝트에 10년 동안 매년 20억달러를 투입한다. 지난해 예산부터는 매년 13억7000만달러를 추가했다. BC주의 홍수사태 지역을 직접 방문한 트뤼도 총리는 “기후변화에 어려움을 겪는 지역사회를 돕기 위해 계속해 이 기금을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변화를 멈출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지구온난화 원인인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 동시에 이미 진행 중인 기후변화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제사회는 1997년 선진국에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여하는 교토의정서를 채택한 데 이어 2015년에 선진국과 개도국이 모두 참여하는 파리협정을 채택했다. 최근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최대 쟁점 사항이었던 지구 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억제하는 목표의 구체적 실행 방안에 관한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1.5도는 기후재앙을 막을 마지막 마지노선으로 알려졌지만, 각국의 이해와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전 세계적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 토론토 지역 슈퍼마켓 계산대에서 BC주 홍수피해 기부금을 받는다는 푯말이 등장했다. 이런 재앙은 밴쿠버만으로 끝날까? 지구온난화는 전 지구에 영향을 미치고, 그에 따른 기후변화는 모든 지역이 함께 겪게 된다. 전 인류가 지혜를 모아 지구온난화의 난제를 풀어야 한다. 1.5도를 향한 기후위기 시계의 톱니바퀴는 오늘도 째깍째깍 움직이고 있다.

<정봉석 하이드라텍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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