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라 스트랜디(Amara Strande)는 미국 미네소타주 오크데일시에서 프로 뮤지션의 꿈을 키우던 고등학생이었다. 하지만 2017년 15세 때 그의 삶이 바뀌었다. 두통, 메스꺼움, 코피 및 복통으로 고통받았고, 500만명에 한 명꼴로 걸리는 희소간암 판정을 받았다. 5년 동안 20번 이상의 수술을 받았지만, 암을 치료할 수는 없었다.
아마라는 주변에서 암으로 고통받는 것이 자신만이 아님을 알았다. 2005년부터 2015년까지 같은 고등학교 학생 5명이 암으로 숨졌고, 다른 많은 사람이 암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또 지역 어린이의 암 사망률은 다른 지역에 비해 171%나 높았다. 아마라는 자신을 포함한 주변 친구들이 왜 비슷한 고통을 겪는지 의아했다. 그리고 원인을 알았다. 미네소타에 있는 제조회사 ‘3M’이 과불화화합물(PFAS: Per- and polyfluoroalkyl substances)가 포함된 폐기물을 주변 지역에 묻었고, 이것이 지역 지하수를 오염시켰다.
아마라는 자신의 남은 시간을 친구들과 지역 사회를 위해 싸우는 데 쓰기로 했다. 여러 위원회 앞에서 증언하며, 미네소타에서 PFAS를 금지하는 활동에 헌신했다. 법정 증언 당시 목에 난 종양과 폐로 전이된 암 때문에 말하기조차 힘들었다. 아마라는 자신의 21번째 생일을 이틀 앞둔 작년 4월 14일에 세상을 떠났다.
아마라의 노력과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그가 세상을 떠난 2주 뒤 ‘아마라 법’으로 불리는 PFAS 사용 금지 법안이 미네소타 주의회에서 통과됐다. 이 법안에 따르면 제조업체는 2026년부터 PFAS 사용을 주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 2032년부터는 PFAS 사용이 금지된다.
두 얼굴의 화합물
PFAS는 인간이 만든 인공 유기화합물로, 유기화학에서 가장 강력한 탄소와 불소 원자 간의 결합이다. 내구성이 좋고, 열에 강하고 물과 기름을 모두 밀어내는 유용한 특성이 있다.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식품 포장재, 프라이팬이나 냄비 코팅, 화장품, 의류 등 일상생활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산업계에서도 필수적인 물질로, 자동차의 주요 부품에,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냉매, 세정제, 윤활제, 리튬 이온 배터리를 만드는 데도 쓰인다. 소화기에 쓰이는 거품도 1960년대 미 해군과 3M이 함께 연구해 특허로 개발한 PFAS 기반 화합물이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확인한 것만 1만2000종 이상이다. 초기 광산업으로 사업을 시작한 3M은 PFAS를 사용한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며 거대 다국적 제조 기업으로 성장했다.
PFAS의 장점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이후에 단점으로 남았다. 내구성이 좋아 잘 분해되지 않고, 열에도 강해 소각처리가 되지 않는다. 또한 물이나 기름으로 분리가 되지 않아 따로 제거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이런 특징 때문에 ‘사라지지 않는 화학물질(forever chemical)’이라는 별칭도 있다. 1950년대부터 오랫동안 사용된 후 다양한 경로를 통해 토양과 하수로 배출돼 동식물을 거쳐 인체에 축적됐다.
PFAS의 유해성은 사용된 지 50년이 지나서야 발견됐다. 미국 과학∙공학∙의학 한림원(NASEM)에 따르면 영유아와 태아의 성장 감소, 신장암 위험 등과도 연관성이 있다. PFAS가 당뇨병, 비만, 심혈관 질환 등의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도 이어진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PFAS가 암 발병과 불임, 갑상샘질환, 간과 면역시스템 붕괴, 혈관 노화, 고혈압, 염증, 비만, 미숙아 출산 등과 연관 있다고 경고했다.
PFAS의 유해성 발견에 따라, 작년 7월 초 미국지질조사국(USGS)은 미국 전 지역의 수돗물 PFAS 오염도를 조사해 발표했다. 주택과 사무실, 학교 등 지역을 대표하는 716곳의 수돗물 샘플을 수집해서 32가지 PFAS 유형의 존재 여부를 확인했다. 미국 수돗물의 최소 45%가 오염됐고, 특히 도시의 오염률이 75%로 높았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PFAS는 미국인 98%의 혈액에서 검출됐다. 작년 노르웨이 6~16세 어린이 1094명의 혈액 샘플을 수집해 조사한 결과, 모든 아이에게서 PFAS가 발견됐다. 또한 약 22%의 아이들이 유럽식품안전청이 정한 안전 한도 이상의 수치를 보였다.
PFAS에 대한 글로벌 대응
이에 PFAS를 줄이려는 규제 바람이 불고 있다. 아마라가 세상에 외친 메시지는 미네소타주뿐만 아니라 미국 연방정부, 그리고 전 세계로 이어졌다. FDA는 지난 2월 PFAS가 함유된 식품 포장재를 퇴출시켰다. 패스트푸드 포장재, 전자레인지 팝콘 봉지, 테이크아웃 용기, 반려동물 사료 봉투 등 식품 포장재에 PFAS가 함유된 제품은 판매하지 못한다. 미국 환경보호청(EPA)도 지난 4월 대표적인 PFAS인 과불화옥탄산(PFOA)과 과불화옥탄술폰산(PFOS)의 식수 내 함유 허용량을 기존 70ppt(1조분의 1)에서 4ppt로 줄였다. 이는 수질 테스트 기술이 판독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수준으로, 실질적으로 식수 내 PFOA와 PFOS의 완전 제거를 목표로 한다. 미국수도협회(American Water Works Association)는 이 규제로 연간 38억달러(약 5조2000억원)에 가까운 비용이 들 것이라 예상했다.
유럽연합(EU) 산하 유럽화학물질청(ECHA)은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5개국이 2023년 1월 제출한 PFAS 전면 금지안을 검토 중이다. 올해 PFAS의 위해성과 사회∙경제성을 분석해 결정하고, 2025년 유럽연합집행위원회에서 안건을 채택할 예정이다. 시행이 확정되면 유럽 최대 규모의 화학물질 규제가 된다. 뉴질랜드 정부도 2026년 12월 31일부터 PFAS가 함유된 화장품의 제조와 수입을 금지하기로 했다.
과학계에서도 PFAS를 분해하기 위한 연구 경쟁이 치열하다.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은 올해 5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워터’에 자외선과 아황산염을 이용한 공정과 전기화학적 산화 반응으로 PFAS를 분해하는 방법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2022년에는 미국 노스웨스턴대 연구진이 유기성 액체와 섭씨 10도의 약한 가열만으로 PFAS를 분해했다고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하지만 두 연구 모두 고농도의 PFAS를 처리하는 것에 제한돼 자연계 저농도의 PFAS 처리에는 어려움이 있다. 또한 미국 환경보호청이 확인한 PFAS만 1만2000종 이상인데 처리 가능한 종은 너무 적다. 아직 많은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한국 정부는 PFAS 규제에 신중하다. 표면적으로는 제조업 중심의 국내 산업에 PFAS 규제가 미칠 영향을 고려해서다. 국내 규제는 고사하고, EU가 도입을 추진하는 PFAS 사용 규제에는 우려 입장을 전달했다. 마치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기후위기 시대에 국내 재생에너지 발생량 비중이 OECD 회원국 중 꼴찌인 것과 비슷하다.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과 PFAS 규제 같은 급변하는 글로벌 사회, 경제 환경 속에서 한국은 나 홀로 떨어져 있다. 국제사회와 발맞추기 위한 국가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정봉석 JBS 수환경 R&C 대표·부산대학교 환경공학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