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나더 라운드-열정을 향해 비상하는 중년의 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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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매즈 미켈슨의 존재가 이 작품의 백미란 사실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건조한 일상에서 시작해 조금씩 열정을 되찾지만, 결국 한계를 넘어서며 스스로 제어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인물의 혼란과 번민은 그의 눈빛만으로도 설득력을 갖는다.

제목 어나더 라운드(Another Round/ Druk)

제작연도 2020

제작국 덴마크

상영시간 116분

장르 드라마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그

출연 매즈 미켈슨, 토마스 보 라슨, 라스 란데, 마그누스 밀랑

개봉 2022년 1월 19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이놀미디어

㈜이놀미디어

토마스 빈터베르그는 라스 폰 트리에, 니콜라스 빈딩 레픈과 함께 덴마크를 대표하는 영화감독 중 하나다. ‘도그마95’의 일환으로 만든 초기작 <셀레브레이션>(1998)이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하면서 명성을 얻었지만, 이후 한동안 슬럼프에 빠져 벗어나지 못했다.

호아킨 피닉스, 클레어 데인즈를 주연으로 내세워 2003년 발표한 <올 어바웃 러브>는 상업 장편영화 작업의 본격적 시발로 꼽히지만, 동시에 그를 주목받게 했던 ‘도그마95’를 공식적으로 포기하는 선언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다분히 역설적인 작품이다. 당시로써는 다가올 미래인 2021년을 배경으로 일종의 SF 멜로 스릴러를 펼쳐보인 이 영화는 구태의연하고 지루한 드라마라는 혹평을 듣고 만다. 주목받던 젊은 배우들의 출연과 11개국 공동제작이라는 거창한 외형에 비해 결과는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2012년 발표한 <더 헌트>는 그의 작품세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줬다. 실화를 기반으로, 원생을 농락했다는 의심을 받게 된 한 유치원 교사의 몰락과 저항을 섬세하게 다룬 이 작품은 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과 촬영상, 유럽영화상 각본상 등 다수의 수상을 통해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알코올 예찬 또는 상실된 열정의 갈망

<더 헌트>는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그와 배우 매즈 미켈슨이 처음 만난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큰 의미를 갖는다. 이 작품을 통해 두 사람 모두 비약적으로 도약했다. 두 사람이 8년 만에 재회해 완성한 영화 <어나더 라운드>는 <더 헌트>와 비교해 한층 깊어진 철학과 절제된 연출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무기력한 일상의 반복에 지쳐 있던 고등학교 교사 마틴(매즈 미켈슨 분)은 어느 날 친구에게 “인간에게 결핍된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적절히 유지하면 창의력과 활력이 회복된다”는 흥미로운 가설을 전해듣고 이를 몸소 실험해보기로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루한 수업시간은 즐거워지고, 소원했던 가족과의 관계도 점차 회복했다는 마틴의 경험담을 들은 교사 친구 3명도 동참하기로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의 알코올 의존도가 높아지고, “음주 수업 아니냐”는 학교의 의심이 깊어지면서 이들의 순수한 도전은 전혀 기대치 않던 상황으로 흘러간다.

토마스 빈터베르그가 자국에서 찍은 대표작은 외형적으로 소박한 멜로드라마처럼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도발적이고 자극적인 소재를 취하는 것이 특징이다. <셀레브레이션>은 가족 내 성폭행과 막장폭로의 패륜이 등장하고, <더 헌트> 역시 아동 성폭행과 현대판 마녀사냥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다룬다.

2016년 발표한 <사랑의 시대>는 저택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여러 가족의 모습을 등장시켜 언뜻 대안가족의 이야기를 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남편의 불륜 상대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여주인공의 피폐한 정서를 잔인할 정도로 집요하게 파고든다.

명배우 매즈 미켈슨의 재확인

좀처럼 공감하기 힘든 소재로 시작해 상식 밖 사건들이 펼쳐지는 이야기는 결국 예정된 비극으로 끝을 맺지만, 신기하게도 이런 일련의 과정이 종국에 이르면 보편적인 감정의 울림으로 바뀐다. <어나더 라운드> 역시 스스로 파국을 자처하는 등장인물들의 선택과 행동이 많은 의문을 던지지만, 진정으로 원하는 하나를 얻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내던지기도 하는 인간본성의 불가해성을 숙고해보는 기회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배우 매즈 미켈슨의 존재가 이 작품의 백미란 건 이론의 여지가 없을 듯싶다. 건조한 일상에서 시작해 조금씩 열정을 되찾지만, 결국 한계를 넘어서며 스스로 제어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인물의 혼란과 번민은 그의 눈빛만으로도 설득력을 갖는다. 무엇보다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뜻밖의 퍼포먼스는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그의 새로운 모습이라 놀랍기만 하다. 영화가 쉽게 전달하지 못한 추상적 진심을 명쾌하게 전달하는 방점이라는 점에서도 경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어나더 라운드>는 윤여정씨가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해 이목을 끈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장편영화상(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고,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제작과 주연을 맡는 할리우드 리메이크를 확정했다.

10년 천하의 영화사조 ‘도그마95’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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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예술영화 르네상스를 향유하고 있었다. 코아아트홀, 씨네하우스, 뤼미에르 극장, 동숭시네마텍 등 소위 예술전용관을 표방한 극장들이 호황을 누리며 비영어권 영화나 뒤늦은 고전영화를 상영했다. 다양한 영화 소모임이 상영회를 이어갔고, 신작 소개와 비평으로 넘쳐나는 주간지와 월간지들이 사랑받았다. 당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비디오 시장의 위세도 여기에 힘을 실었다. 이런 분위기는 비단 한국의 것만은 아니었다.

1995년 영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린 프랑스 파리에서 당시 촉망받던 젊은 감독 라스 폰 트리에는 ‘도그마95’ 선언을 공표했다. 그를 포함한 4명의 덴마크 영화감독이 관습적 작가주의와 할리우드 장르영화를 배격하고 영화의 순수성을 회복하자는 목적에 일명 ‘순결의 서약’을 포함한 선언문을 작성한 것인데 당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영화의 예술성을 거세하고 인물과 배경 자체로만 진실을 탐색해야 한다는 ‘순결의 서약’은 도그마 영화를 충족하는 10계명을 담고 있다. ▲소품과 세트를 사용하지 말고 ▲가공의 소리를 사용하면 안 되며 ▲필름은 컬러를 사용해 조명 없이 자연광으로만 찍을 것 등 현대 산업영화들이 도저히 수용할 수 없을 것 같은 제작원칙이다.

최초의 ‘도그마95’ 영화로 기록된 작품이 토마스 빈터베르그의 <셀레브레이션>이다. 이후 라스 폰 트리에의 <백치들>로 이어진 도그마95 영화 ‘열풍’은 2004년까지 약 10년 동안 모두 35편이 탄생하며 계속됐지만 실제로 영화의 완성도나 가치를 놓고선 평가가 중구난방이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를 통틀어 유일하게 도그마95 영화로 기록된 작품으로는 2000년 이정재, 심은하가 주연하고 변혁 감독이 연출한 <인터뷰>가 있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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