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후변화 시대 ‘변화의 힘’과 ‘저항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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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는 바로 위에 있는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와 더불어 미국 내 한인이 많이 사는 곳이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는 오래전에 발달한 도시인 만큼 낡은 도시의 모습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반면 오렌지 카운티는 한때 오렌지족이 오렌지 카운티에서 유래됐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부유하고 세련된 느낌이 나는 곳이다. 그 오렌지 카운티를 대표하는, 어쩌면 가장 미국다운 헌팅턴비치는 한적한 해안 지대가 서부 연안을 따라 가장 길게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길게 뻗은 야자수와 일년 내내 눈부시게 화창한 태양, 드넓게 펼쳐진 백사장과 쉼없이 넘실거리는 태평양의 파도는 남부 캘리포니아 특유의 여유로운 해변 문화를 탄생시키며, 연중 자전거를 타고 해변을 달리거나 비치발리볼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또한 속칭 ‘서프 시티 유에스에이(Surf City USA)’라 불리며 전 세계 서퍼들이 서핑을 즐기고, 또 그들의 서핑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굴착장치가 원유를 뽑아내고 있다. / AFP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굴착장치가 원유를 뽑아내고 있다. / AFP연합뉴스

몸살 앓고 있는 헌팅턴비치

그 아름다운 헌팅턴비치가 몸살을 앓고 있다. 2021년 10월 초, 캘리포니아 남부 해안에서 약 3000배럴 이상의 기름이 유출되는 최악의 환경사고가 발생했고, 한때 기름띠는 헌팅턴비치 주변 9㎞에 걸쳤다. 이 기름은 헌팅턴비치에서 약 8㎞ 떨어진 해상에 있는 석유 굴착장치와 연결된 송유관에서 유출된 것으로, 롱비치 항구에 들어가기 위해 대기 중인 대형 화물선에서 내린 닻이 원인이 됐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킴벌리카 헌팅턴비치 시장이 ‘환경 재앙’이라고 경악한 것처럼 이 사고로 인한 환경적 피해는 막대했다. 헌팅턴 해변에는 기름으로 뒤덮여 떼죽음을 당한 새와 물고기들이 떠밀려 왔고, 주요 야생동물들이 서식하는 주변 습지의 생태계가 파괴됐다. 기름을 뒤집어쓴 새들과 죽어버린 헌팅턴 해변의 모습은 석유 개발·성장에 몰두하던 미국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사건으로 각인되고 있다.

최첨단 정보통신(IT) 산업이 즐비한 실리콘밸리와 풍요로운 서부해안 비치로 상징되는 캘리포니아에 왜 석유 굴착장치가 있었을까? 캘리포니아는 한때 텍사스와 더불어 원유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주였다. 지금은 비교적 많이 줄어들었지만, 로스앤젤레스 주변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지상에서 석유를 퍼올리는 펌프들을 볼 수 있다. 캘리포니아 근해에도 해상 유전이 많다. 지난해 발생한 기름유출사고의 원인도 엘리(elly)라는 해상 굴착장치와 연결된 송유관에서 시작했다. 생산량이 최고점이었던 1985년 이후 계속 하락하는 추세지만 캘리포니아는 여전히 미국 전체 주 가운데는 7번째로 많은 원유를 생산한다. 동시에 최근 대규모로 셰일가스가 발견돼 잠재 석유자원도 풍부한 지역이다.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새로운 유전의 발견을 어떻게 바라볼까? 더 많은 석유자원을 가지게 된 정유·가스업계는 환호하지만, 개발에 따른 환경오염과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려는 환경단체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셰일가스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지하 셰일층에 고압의 물을 쏴 암석을 파쇄한 뒤 석유와 가스를 얻는 수압파쇄(fracking) 공법을 이용하는데, 이는 많은 수자원이 필요하고 지하수 오염 같은 환경파괴의 우려가 크다. 캘리포니아는 항상 물 부족 문제로 고통받아왔기 때문에 셰일가스 개발에 반대하는 환경단체의 주장은 이곳 지역뉴스에서 자주 보인다.

환경단체들의 주장에 힘입어 올해 2021년 4월, 캘리포니아주 뉴섬 주지사는 3년 뒤부터 수압파쇄를 새로 허가하지 않겠다는 ‘과감한’ 발표를 했다. 동시에 석유채굴을 2045년 전에 전부 중단시키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이것이 주지사의 힘만으로 가능할까? 아직까지 캘리포니아주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정유·가스업계의 막강한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고, 주의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친환경을 지지하는 세력과 기존 석유산업의 세력이 충돌하며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러다 팽팽했던 줄다리기의 줄이 한쪽으로 쏠리는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했다.

[정봉석의 북미 환경편지](1)기후변화 시대 ‘변화의 힘’과 ‘저항의 힘’

미국은 현존 최대 석유 생산국이자 최대 석유 소비국이다. 동시에 석유는 오랫동안 가장 미국적인 상품이자 산업이었다. 미국에서 석유가 최초로 발견됐고, 석유를 이용한 산업화도 가장 빨리 발전했다. 그랬던 미국이 기후변화 시대로 들어오면서 석유 같은 화석연료 대신 태양광과 풍력 같은 무한하고 친환경적인 에너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해 10월 31일부터 2주 동안 영국 글래스고에서 진행된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에 이곳 북미 언론도 큰 관심을 보였다. 최대 쟁점 사항인 지구 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억제하려는 목표를 논의했지만, 구체적인 실행방안에 대해서는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새로 대두된 ‘그린플레이션’

최근 북미에는 친환경을 의미하는 ‘그린(Green)’과 물가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성해 만든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이라는 단어가 자주 보인다. 친환경 에너지 수요가 늘어나면서 이에 필요한 구리, 알루미늄 같은 원자재 가격이 뛰어오르고,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면서 에너지 가격이 인상돼 경제 전반의 물가가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을 뜻한다. 역설적이게도 전 세계가 탄소중립과 친환경의 가속페달을 밟으면서 화석에너지 가격은 오히려 폭등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풍력과 태양광 같은 친환경 발전량이 필요한 에너지 수요를 지속적으로 충족하지 못한 상태에서 채굴 감소로 화석연료가 품귀현상을 보이자 화석연료의 가격이 급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20년 11월 캐나다 토론토 지역의 휘발유 판매가격은 갤런당 0.99달러였는데, 계속 상승하면서 지난해 11월에는 1.44달러로 1년 만에 45%가 올랐다. 매번 주유소에 갈 때마다 휘발유 가격이 올랐다는 것을 느끼며, 현재 북미에서 진행되는 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이 에너지 때문임을 체감한다.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려는 기후변화 시대의 ‘변화의 힘’과 화석연료를 마음껏 썼던 익숙한 관성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산업혁명 시대의 ‘저항의 힘’이 부딪히면서 주변에 마찰음이 들린다. 그린플레이션이 악화되고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도 커지면서 역설적으로 친환경 에너지산업은 의문점을 남기기도 한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기름유출 사고처럼 기후변화 시대의 힘은 거스를 수 없는 방향이라는 건 분명하다. 어떤 속도로 움직여야 할까? 어려운 숙제다.

정봉석은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환경기업인 하이드라텍의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토론토대학에서 토목환경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정봉석 하이드라텍 연구원>

정봉석의 북미 환경편지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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