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해결 ‘공평한 분배’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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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의 분전제록(分田制祿)과 금슬우지(琴瑟友之)

[신동준의 인물 비평]비정규직 해결 ‘공평한 분배’ 주장

여의도에 짙은 전운이 감돌고 있다. 여야 모두 미디어법 등의 강행처리에 대비해 소속 의원들에게 ‘외국출장 자제령’을 발령했다. 육탄전을 가정한 비상경계 태세에 들어간 셈이다. 일각에서 정치권을 향해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다’라고 한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의정교범’으로 삼고 있는 게 아니냐는 야유를 보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실제로 비정규직법 처리를 단독개원의 명분으로 내세운 한나라당은 병법에서 역설하는 ‘병귀신속(兵貴迅速: 용병은 신속함을 귀하게 여김)’의 원칙을 관철시켰다. 국회 환경노동위에서 한나라당 간사와 소속 의원 8명이 민주당 소속 추미애 위원장과 야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기습 상정한 게 그것이다. 민주당은 ‘의회민주주의의 파괴’라며 격렬히 반발했으나 한나라당은 실업대란을 묵과할 수 없었다며 이를 정당화했다. 사회권을 탈취당한 추 위원장은 허탈한 심경을 자조적으로 표현했다.

“모의국회도 있고 하니까 한나라당끼리 연습을 한번 해본 것에 불과하다.”
원래 비정규직 문제는 근원적인 해법을 찾지 못하는 한 훗날 더 큰 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그가 기간연장 등의 미봉책을 반대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는 비정규직 사용 요건의 강화 등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해결이 요원할 수밖에 없다.

미디어법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는 양측의 ‘언론장악’과 ‘편파방송’ 공방을 공히 잠재울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20조 원이 넘는 ‘4대강 개발’이 대운하의 전 단계로 진행되고 있다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디어법의 강행처리에 대한 저항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이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다.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하나마나한 해법을 제시한 게 그 증거다.

“어떻게든 대량 해고 사태를 막아야 한다. 비정규직법 처리는 정치권이 책임지고 처리해야 한다.”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한 라디오연설에서 ‘근원적 처방’의 화두를 꺼냈다가 용두사미로 끝낸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인적쇄신에서 시작해 개헌에 이르기까지 백가쟁명(百家爭鳴)의 관측이 쏟아졌는데도 그의 귀국 일성은 ‘개각 무(無)’의 만언(漫言)이었다. <한비자> ‘세난 편’에 이를 경계하는 구절이 나온다.

“중원 땅에 사는 사람이 물에 빠졌을 때 수영을 잘 하는 월나라 사람이 오기를 기다려 구하고자 하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수 없다.”

청와대에 긴급서신 보내
‘중장기 화두’ 운운은 수영 잘 하는 월나라 사람을 마냥 기다리는 우행(愚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추 위원장이 실업대란을 구실로 한 여당의 단독개원 명분 뒤에 숨어 있는 미디어법 강행처리의 속셈을 읽은 것은 탁견이다. 그는 최근 긴급서신 형태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같이 제언한 바 있다.

“대통령이 노동 유연성 문제를 금년 내 해결하겠다고 언급한 후 여당과 노동부가 시행 연기 방안 등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속히 대통령이 결단해야 합니다.”

근원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는커녕 경제 위기와 노동유연성을 구실로 미봉책을 밀어붙이는 구태를 지적한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양극화 지수는 선진국의 2배를 넘고 있다. 그는 구체적인 증거로 생산성 대비 임금 상승률을 들었다. -4.4%의 우리나라는 +5%의 유럽과 극명히 대비되고 있고, 잉여이익 대부분이 기업으로만 돌아가고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그의 이런 지적은 <맹자> ‘등문공 상’ 편의 균배(均配) 주장과 맥을 같이한다.

“인정(仁政)은 반드시 경계(經界: 토지의 경계를 확정함)에서 시작한다. ‘경계’가 바르지 않으면 곡록(穀祿: 토지수확과 녹봉)이 공평치 못하게 된다. 폭군(暴君)과 오리(汚吏)가 늘 ‘경계’를 태만히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경계’를 바로 하면 분전제록(分田制祿: 공평한 토지분배와 곡록 제정) 또한 가히 앉아서 정할 수 있다.”

맹자는 ‘분전제록’을 명군(明君)과 청리(淸吏)의 요건으로 내세운 것이다. 공자도 <논어> ‘계씨 편’에서 ‘고르면 가난하게 되는 일이 없고, 조화를 이루면 적게 되는 일이 없고, 편안하면 기울어지는 일이 없게 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들 모두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문제를 국가존망의 요체로 간주한 것이다. 그가 청와대에 보낸 긴급서신도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으로 짐작된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이 2008년 7월 3일 당대표 경선에 출마한 정대철(왼쪽)·정세균 후보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경향신문>

민주당 추미애 의원이 2008년 7월 3일 당대표 경선에 출마한 정대철(왼쪽)·정세균 후보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경향신문>

원래 그는 2004년 초의 소위 ‘탄핵정국’이 빚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정치권 내에서 한나라당의 박근혜 전 대표에 버금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린 바 있다. 16대 대선 전날의 극적인 정황이 그 증거다. 당시 노무현 후보의 명동유세에 따라나선 정몽준 의원은 지지자들이 ‘정몽준, 차기 대통령!’을 연호하자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때 노 후보가 문득 추 의원의 손을 치켜들면서 찬물을 끼얹었다.

“여러분, 정몽준 의원만 대통령 후보가 아닙니다. 민주당에는 정동영·추미애 의원도 있습니다.”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내심 ‘속았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던 정 의원은 이 사건 직후 곧바로 노 후보 지지를 철회했다. 당시 노 후보는 자신의 주변에 추 의원을 비롯해 당대의 내로라하는 인물이 매우 많다는 것을 과시코자 했는지 모르나 사실 이는 경망스런 행동이었다. 그는 비록 노 후보가 당선돼 정신적인 부담을 덜기는 했으나 노 전 대통령에게 적잖은 정치적 부채를 안고 있었던 셈이다.

그와 노 전 대통령 사이가 벌어진 결정적 계기는 한나라당이 제기한 소위 ‘대북특검’을 노 전 대통령이 전격 수용한 데서 비롯했다. 햇볕정책을 적극 지지한 그는 강력 반발했다. 당시 DJ도 기자회견을 통해 이를 ‘통치행위’로 간주해줄 것을 호소했으나 결국 ‘대북특검’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이로 인해 국민의 정부가 그토록 자랑했던 햇볕정책이 심대한 타격을 입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민주당이 둘로 쪼개져 열린우리당이 창당된 배경이 여기에 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노 전 대통령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는 격으로 무모할 정도의 총애를 보냈던 노 전 대통령이 청와대 입성 후 강금실 법무장관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인 점도 적잖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참여정부 출범 후 일부 여론조사에서 강 장관이 문득 다크호스로 등장해 그와 박 전 대표의 지지도를 뛰어넘는 역전극을 벌인 바 있다.

찰떡금실로 총선패배 위기 극복
탄핵후폭풍으로 17대 총선에 낙선한 그는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2년 동안 컬럼비아대 객원연구원으로 있으면서 북핵 문제를 집중 연구했다. 이후 모교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에서 초빙교수로 있다가 18대 총선을 통해 국회에 복귀했다. 여기에는 부군의 ‘외조’가 크게 기여했다.

원래 대구의 명문여고 출신인 그는 나이도 세 살 많고, 사시합격도 3년 늦은 호남 출신 동문과 결혼해 판사로 재직하던 중 DJ가 영·호남 화합의 실천 사례로 전격 발탁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탄핵정국’의 와중에 치른 17대 총선은 악몽이었다. 그는 무명의 신인에게 패하고, 시종 소리나지 않게 외조하던 부군마저 회계책임을 맡는 등 ‘열부(烈夫)’ 행보를 보이다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고소당했다. 그는 18대 등원 직후 대법원의 무죄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적잖은 심적 고통을 겪어야 했으나 ‘금슬우지(琴瑟友之)’의 찰떡금실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그가 4년의 의정공백 기간 중 북핵과 동북아문제 등에 깊이 파고들어 2008년 말에 <한국의 내일을 말하다>를 펴낼 수 있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의 신자유주의 대한 분석은 탁월한 바가 있다.

“한국은 이미 오래 전에 한계에 부딪힌 신자유주의가 보내는 이상신호음을 듣고 속도와 방향을 조절했어야 했음에도 오히려 신자유주의의 한 가운데로 내달리고 말았다.”

사실 우리나라는 ‘세계화’를 내세운 문민정부 때 이미 신자유주의로 경도되기 시작했다. 정작 가장 큰 문제는 진원지인 월스트리트가 굉음을 내고 무너졌는데도 아직까지 신자유주의에 매달리고 있는 데 있다. 그가 최근의 한·미정상회담과 관련해 시기의 적절성은 인정하면서도 6자회담의 재개 약속을 받아오지 못한 것에 큰 아쉬움을 표한 것도 그의 식견이 간단치 않음을 방증하고 있다.

“이전 정부와 차별화된 정책을 펴야 한다는 강박감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한반도의 안정은 정권의 자존심으로 희생시킬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현재 그의 의정 행보는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숙(靜肅)하다. 그는 과연 언제쯤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로 각광받던 참여정부 초기 때 인기를 만회할 수 있을까? 그는 노 전 대통령의 빈소에 들러 이같이 애도한 바 있다.

“희로애락이 없는 세상에서 편히 쉬기를 바란다.”
‘희로애락’은 애증(愛憎)의 산물이다. 고인에 대한 애증과 몌별(袂別)하는 심경으로 이런 조사(弔辭)를 한 듯하다. 그는 이미 의정공백 기간을 권토중래의 자수(自修) 기간으로 활용한 바 있다. 많은 사람이 ‘금슬우지’로 정평이 나 있는 그를 차세대 지도자로 지목하며 자신의 두발로 우뚝 서기 위한 그의 ‘정숙행보’에 주목하는 이유다.

신동준 <21세기정경연구소장> xhindj@hanmail.net | <조선일보> <한겨레신문> 기자,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서울대·외국어대·국민대 강사, <자치통감-삼국지> <국어> <공자와 천하를 논하다> <연산군을 위한 변명>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초한지> 등의 저·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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