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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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거듭해 아이서 어른으로 재탄생

영화 <듄>의 성공을 뒷받침한 원작을 소개한 지난 회에 이어 이번에는 스페이스오페라의 역사를 간략히 짚어보겠다. 스페이스오페라 하면 맨 먼저 떠오를 이미지는 우주공간에서 우주선들이 벌이는 전투다. 이런 전개는 자칫 배경만 우주로 바뀐 권선징악 서부극이나 B급 전쟁소설로 전락하기 쉽다. 실제로 초창기 스페이스오페라는 진부한 틀을 반복해 비평가와 진지한 독자들의 조롱을 받았다.

1965년 발행된 프랭크 허버트의 <듄> 초판본 표지 / Chilton Books

1965년 발행된 프랭크 허버트의 <듄> 초판본 표지 / Chilton Books

<듄>에서 보듯 스페이스오페라는 환골탈태를 거듭해 어린아이에서 어른으로 거듭났다. 일부 뛰어난 작가들을 통해 재해석되고 사회문화의 변화(시류)를 적극 받아들여 주제의식과 스타일에서 변신을 거듭한 덕분이다. 다만 1950년대에는 아서 C. 클락과 로벗 앤슨 하인라인 그리고 아이작 아시모프 등이 우주탐사와 외계 식민지 개척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큰 호응을 얻어 스페이스오페라가 잠시 퇴조한다. 게다가 제2차 세계대전은 로켓과 원자폭탄이 황당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당면현실임을 일깨웠고, 미소냉전으로 두 초강대국이 당대 최고첨단 분야인 우주탐사에서 각축을 벌였으며, 달 표면에 내려선 닐 암스트롱이 그 정점을 찍었다.

이제 스페이스오페라는 유치찬란한 환상모험담에 안주하기보다 실체 있는 사변적 이야기로 도약해야 했다.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오리지널 3부작은 그런 성과를 보여준 초기 대표작으로,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흥망사>를 벤치마킹해 <듄> 시리즈보다 10여년 앞서 방대한 영토의 은하제국을 배경으로 체제의 붕괴와 재건을 그린 거대담론이다. 이 대하 스페이스오페라는 심리역사학(미래예측 수리통계학) 기반 사회공학으로 독자를 매료시켜 오늘날까지 재간된다.

1960년대 과학소설이 한층 성숙해지며 스페이스오페라 또한 오락성 강한 이야기형식을 활용해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사회풍자 스페이스오페라와 루리타니아 스페이스오페라가 바로 그것들이다. 후자는 은하제국 산하 소공국과 봉토로 분할된 먼 미래에 다양한 이해집단들이 전쟁 또는 음모를 일삼는 이야기인 만큼 <듄>의 등장은 시간문제였다. <듄>은 루리타니아 스페이스오페라의 전범(典範)으로 많은 아류작을 낳았고, 1960년대 말 뉴웨이브 SF문학운동에도 영향을 줬다.

1980년대 중반 스페이스오페라는 단지 청소년문학이 아니라 남녀노소 즐기는 일반 대중의 범용 콘텐츠로 자리 잡는다. 드라마틱하고 스케일 큰 모험담 형식은 고수하되 주제와 소재 그리고 스타일에서 업그레이드된 진지한 작품들이 나왔다. 1982~2002년 사이 약 20년간 휴고상 장편 수상작 중 상당수가 스페이스오페라란 사실이 그 증거다. 심지어 전혀 무관했던 모더니즘이나 포스트모더니즘과 접목되는 소설들도 나왔고, 페미니즘 영향으로 일부 작품에서 여성들이 명실상부한 주인공으로 나섰다.

1990~2000년대에 스페이스오페라는 또 한 번 중대 변신을 꾀한다. 전에 비할 수 없이 ‘하드’해진 것이다. 작가 편의적 과학기술 묘사는 자취를 감추고 하드 SF 못지않은 과학기술적 엄밀성을 토대로 전개되는 스페이스오페라가 나타났다. 현실도피물이란 비판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초중반 SF 펄프잡지들은 스페이스오페라 연재 덕에 생존했다. 지난 1세기 동안 스페이스오페라는 부단히 자기 혁신을 계속했다. 포스트모던 스페이스오페라 소설들을 보라. 얼핏 현실도피 모험담 같지만, 세상의 부조리와 질곡을 까발리는 엉큼한 속내를 감추고 있지 않던가.

<고장원 SF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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