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충동-‘절대악’을 사회가 어떻게 수용하나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이가 형기를 마치고 출소할 때마다 우리 사회는 실로 복잡다단한 문제와 마주하곤 한다. 심신미약 등의 이유로 형을 감경했던 판결은 다시금 도마 위에 오르고,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편의에 무게를 둔 듯한 법제도는 곧 지탄의 대상이 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애초에 사회 복귀가 불가능해 보이는 이들과 더불어 살 수밖에 없는 구조 그 자체에 있을 것이다. 덕분에 일각에서는 늘 사형을 거론하지만 당연히 궁극적인 해답이 될 수는 없다. 결국 무조건 내칠 수만은 없기에 우리는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타인’과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얀 충동>의 표지 / 블루홀식스

<하얀 충동>의 표지 / 블루홀식스

재일 교포 3세 오승호 작가의 <하얀 충동>은 이런 ‘절대악’을 사회가 어떻게 수용해야 하느냐며 무거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학교 카운슬러인 지하야에게 고등부 1학년 아키나리가 자신의 살인 충동을 상담한다. 지하야도 처음엔 사춘기 남학생 특유의 허세나 망상 정도로 여겼으나 상담을 거듭할수록 통제할 수 없는 스스로의 욕구를 두려워하는 아키나리의 징후가 거짓이 아님을 확신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15년 전 잔혹한 연쇄 강간 상해 사건을 일으켰던 범인 이리이치가 출소해 지하야의 집 인근에 자리 잡는다. 학교에서는 아키나리가 교내에서 키우던 염소를 몰래 칼로 베고, 출소한 이리이치마저 금속 배트를 들고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돌면서 마을은 온통 불온한 기운에 휩싸인다. 심리상담사의 시점에서 다양한 정신분석 개념을 동원해 아키나리의 마음속을 파헤치는 가운데, 마침 옛 은사의 요청으로 지하야가 이리이치의 정신감정을 하기로 결정하면서 이야기는 급기야 2명의 불가해한 존재 한가운데 자리한다.

갈등은 한 범죄 피해자 지원 단체의 대표가 라디오 생방송에서 이리이치가 거주 중인 주소를 언급하는 의도된 사고에서 촉발된다. 지역 주민들은 곧 그를 내쫓고자 단체 행동을 벌인다. 게다가 아키나리는 어차피 살인할 수밖에 없다면 죽여 마땅한 사람을 죽이겠다며 이리이치의 주변을 맴돈다. 긴장 상태가 지속되는 사이, 마침내 이리이치가 교내에서 죽은 염소를 안고 피 칠갑한 모습을 내보이면서 증오와 선동에 가까웠던 지역민들의 결집은 힘을 얻고 더욱 첨예한 갈등으로 치닫는다.

지하야의 말대로, 단지 위협의 가능성만으로 누군가 제거된다면 다음엔 나와 내 주변 역시 언젠가는 불합리한 편견과 배척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뭇사람들은 애초에 자신의 이해 수준을 넘어선 존재를 견디지 못한다. 지하야가 아키나리와 이리이치에게 내린 결론 또한 동일하다. 한마디로 ‘불가능’. 그럼에도 그는 아직 벌어지지 않은 사건을 빌미로 개인을 단죄하는 것엔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작중에서는 이 둘을 몰아붙이는 다수의 이기가 다분히 폭력적인 결과로 이어지기에 지금 우리 사회가 떠안은 문제의 뿌리까지 정확히 엿볼 수 있다.

<하얀 충동>은 당면한 사회문제를 직접 반영한 사회파 미스터리지만, 모종의 사건을 통해 추리 게임을 더하고 몇차례 허를 찌르는 반전으로 미스터리 서사 특유의 재미까지 모두 아우른다. 여기에 인간의 양면성을 가장 큰 미스터리로 가져가면서 묵직한 물음을 여럿 남긴다. 무엇보다 마지막 순간 넌지시 흘린 복선을 회수하며 서늘한 여운마저 남기면서 좋은 소설, 멋진 미스터리의 거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장르물 전성시대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