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 없는 꿈을 꾸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평범한 일상 뒤엎은 잘못된 욕망

한낮에 방영하는 사회부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인간의 치졸함과 사악함에 괜스레 치가 떨린다. 어린아이를 학대하고 여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예사다. 최근엔 초등학교 교장이란 작자가 여교사 화장실에 카메라를 설치했다니 선한 가면 뒤에 숨기고 있을 추악한 욕망은 또 얼마나 많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이렇게나 범죄가 가까운 탓인지 때때로 뭇 사람들이 꾹꾹 눌러담고 있을 악의의 정체가 궁금해질 때가 있다. 평범한 사람들 속에 잔뜩 웅크리고 있을 음습한 광기. 지금은 잘 제어되고 있다지만 과연 영원히 터지지 않을 수 있을까.

<열쇠 없는 꿈을 꾸다>(츠지무라 미즈키 지음)의 표지 / 문학사상사

<열쇠 없는 꿈을 꾸다>(츠지무라 미즈키 지음)의 표지 / 문학사상사

츠지무라 미즈키의 <열쇠 없는 꿈을 꾸다>는 이런 멀지 않은 범죄에 근접하거나 다다르고야 마는 5편의 단편소설을 수록한 작품집이다. 절도에서 시작해 각각 방화, 납치, 살인, 유괴 같은 강력범죄를 다루는데, 마치 포물선 그래프를 그리듯 배치돼 점점 더 깊은 절망을 안기다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내뱉게 하는 기승전결 구조로도 읽힌다. 실제로 유년기의 절도와 살인의 크나큰 간극만큼이나 다채로운 갈등이 각 단편의 핵심을 자처한다. 그럼에도 작품집 전체를 아우르는 질감은 동일하다. 모두 20~30대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들이 지닌 내밀한 고민과 허영심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있기 때문이다. 범죄는 그릇된 욕망의 실체를 들여다보기 위한 수단이자 폭발을 좌우하는 뇌관이다. 작가는 여성의 마음속을 헤집으며 그 치졸하고도 이기적인 속내 안에 감춘 욕망의 기저를 들춘다. 사실 그곳에 웅크린 심리는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지만, 초라한 욕망을 좇는 사이 곧 일상과 일탈이 나뉜다.

첫 작품인 ‘니시노 마을의 도둑’에서는 초등학생 미치루가 친한 친구인 리쓰코의 엄마가 도둑질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갈등한다. 뜻밖의 사건에 고민하지만, 알고 보니 리쓰코 엄마의 도벽은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알고 있는 것으로 그간 비밀인 양 치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담 같던 이야기는 계속 균열을 일으키고, 리쓰코마저 물건을 훔치다 미치루의 눈에 띈다. 어른이 된 현재, 미치루는 오랜만에 마주친 리쓰코를 두고 이런 추억을 더듬다 어렵사리 말을 걸지만, 그의 반응은 전혀 뜻밖의 것이다. 질투와 성장의 맛이 그만큼 맵싸하다.

이어지는 ‘쓰와부키 미나미 지구의 방화’, ‘미야다니 단지의 도망자’, ‘세리바 대학의 꿈과 살인’은 본격적으로 강력범죄를 다루는데, 모두 덜떨어진 남자들로 말미암은 비극이 중심을 이룬다. 결혼할 생각은 없지만 여전한 인기를 증명하고자 내세운 여자의 자존심은 지극히 평범한 것임에도 곧 남자의 허세로 인해 끈적한 자국을 남긴다. 또 단지 친구들보다 나은 인생임을 확증받기 위해 묵묵히 감내해오던 데이트 폭력은 실로 참혹한 그림을 그린다. 의대로 전과하겠다는 것도 모자라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남자 친구의 허황된 꿈을 알면서도 끌려다니던 여자의 최후는 그대로 작품집의 절정과도 같은 비참한 최후로 이어진다.

마지막 작품인 ‘기미모토 가의 유괴’는 육아 스트레스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렇게나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보내는 원망과 반성의 회오리치는 감정 묘사가 일품인데, 실제로도 작가가 2011년 출산 후 처음 집필한 작품이다. 제147회 나오키상 수상작인 이 소설집은 결국 범죄를 놓고 투영한, 인간에 대한 면밀한 보고서다. 추하고도 약한 마음을 가감 없이 들춰내지만 그렇다고 절망할 수만은 없도록 인간의 진심 한가운데를 절묘하게 꿰뚫는다.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장르물 전성시대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