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풍자, 편견 갖고 만든 느낌 줘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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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연출자 안상휘 에이스토리 제작2본부장

TV 정치풍자 코미디의 기근 속에 tvN에서 쿠팡플레이로 자리를 옮긴 <SNL 코리아>에 대한 시청자 반응이 뜨겁다. 이재명, 윤석열, 홍준표, 심상정 등 각 당의 대선후보들도 줄줄이 출연했다.

<SNL 코리아> 총연출자인 안상휘 에이스토리 제작2본부장은 CJ ENM 재직 때인 2011년부터 미국 NBC로부터 방송 포맷 사용권을 받아 이 프로그램을 기획·제작해왔다. 안 본부장이 지난 11월 3일 서울 상암동 에이스토리 사무실에서 <SNL 코리아>와 정치풍자에 대해 인터뷰하고 있다. / 박주연 선임기자

총연출자인 안상휘 에이스토리 제작2본부장은 CJ ENM 재직 때인 2011년부터 미국 NBC로부터 방송 포맷 사용권을 받아 이 프로그램을 기획·제작해왔다. 안 본부장이 지난 11월 3일 서울 상암동 에이스토리 사무실에서 와 정치풍자에 대해 인터뷰하고 있다. / 박주연 선임기자

<SNL 코리아>는 미국 NBC 장수 코미디 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Saturday Night Live·SNL)의 한국 버전이다. 총연출자인 안상휘 에이스토리 제작2본부장(52)이 CJ ENM 재직 때인 2011년부터 미국 NBC로부터 방송 포맷 사용권을 받아 이 프로그램을 기획·제작했다. 날 선 ‘정치풍자’와 발칙한 ‘19금 개그’로 화제를 모았고, 그로 인해 청와대 외압논란도 일었다. 2017년 방송된 시즌9까지는 tvN에서 방송되다가 2021년 1월 안 본부장의 에이스토리 이적 후 쿠팡플레이를 통해 지난 9월 4일부터 리부트 시즌1이 방송 중이다. 11월 3일 서울 상암동 에이스토리 사무실에서 안 본부장을 만났다. 그는 “정치풍자는 작가들과 직접 대본을 짠다”며 “적절한 수위 조절을 위해 1·2차 수정 과정을 거치고 특정 진영 이슈에만 소재가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 유지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SNL 코리아>는 4년 만에 시청자들과 다시 만났다. tvN에서 시즌9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제작하지 않은 이유가 뭔가.

“<SNL 코리아>는 미국 NBC에 1회당 얼마씩 라이선스비를 지급한다. <SNL 코리아>의 두 축은 19금 개그와 시사풍자다. 19세 이상만 시청할 수 있어 시청자 확보에 한계가 있는데다 정치풍자가 광고 수주에 제약으로 작용했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 투자 대비 수익이 좋지 않다고 판단한 것 같다. 2017년 시즌9 이후 더 이상 예산 편성이 되지 않았다. 지난 1월 내가 에이스토리로 이적하면서 NBC와 <SNL 코리아> 라이선스 계약을 다시 맺었다.”

-지금은 쿠팡플레이라는 인터넷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SNL 코리아>가 방송되고 있다. tvN에서 제작할 때와 어떤 차이가 있나.

“미디어의 물결은 지상파에서 케이블로 이동했다가 이제는 OTT로 바뀌었다. 방송사는 시청률이 중요하고, 방송사 PD들은 예산 편성이 돼야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다. 반면 OTT는 고정 팬, 즉 유료 가입자 유지 및 증가가 중요하다. 게다가 넷플릭스, 디즈니, 애플, 피콕, HBO 맥스 등 해외에서 국내로 유입됐거나 곧 유입될 글로벌 OTT가 아시아 시장에 영향력이 큰 한국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높다. 쿠팡플레이, 시즌, 카카오TV, 티빙 등 국내 OTT도 있다. 대형 플랫폼의 증가로 제작환경이 크게 좋아졌다.”

-<SNL 코리아>의 인기 콘텐츠를 쿠팡플레이에 가입하지 않고 유튜브 ‘짤방’으로 보는 시청자도 많다.

“아쉽지만 초기에는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유튜브 짤방으로 보면서 <SNL 코리아>와 쿠팡플레이가 홍보되면서 가입자도 늘고 있다.”

실제로 <SNL 코리아>의 리부트 시즌이 공개되면서 쿠팡플레이 가입자도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9월 쿠팡플레이 앱의 신규설치만 69만건으로 넷플릭스의 120만건에 이어 OTT 시장 2위에 올랐다. 쿠팡플레이의 9월 순이용자(MAU·안드로이드+iOS)는 240만명으로 전월 대비 60만명가량 급증했다. 이는 국내 서비스 중인 OTT 서비스사에서도 가장 높은 성장률로 4위 왓챠의 추월을 목전에 뒀다. <SNL 코리아>가 이 같은 위력을 발휘하게 된 가장 큰 힘이 특유의 날 선 정치풍자임은 불문가지다. 대장동 논란, 하위 88%에 국민 지원금 지급 기준 논란, 부동산 문제는 물론 최근엔 배우 김부선씨를 성대모사한 개그우먼 안영미씨가 “어 재명 오빠? (중략) 난 오빠의 그런 ‘점’이 좋더라”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연상케 하는 개그를 펼치기도 했다.

<SNL 코리아>의 ‘위켄드 업데이트’는 정치를 포함한 시사풍자 코너다. 특히 어설픈 인턴기자를 연기하는 ‘인턴기자 주기자가 간다’가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정치풍자는 안 본부장이 직접 작가들과 함께 아이템을 구상한다. / <SNL코리아> 캡처.

의 ‘위켄드 업데이트’는 정치를 포함한 시사풍자 코너다. 특히 어설픈 인턴기자를 연기하는 ‘인턴기자 주기자가 간다’가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정치풍자는 안 본부장이 직접 작가들과 함께 아이템을 구상한다. / 캡처.

-<SNL 코리아>의 대표적 정치풍자 코너인 ‘위켄드 업데이트(Weekend Update)’, 그중에서도 특히 ‘인턴기자 주기자가 간다’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한달 전 업로드된 첫회의 경우 유튜브 짤방 조회수가 무려 600만회에 달했다.

“‘위켄드 업데이트’는 2011년 처음 라이선스 계약을 맺을 때 NBC 측에서 꼭 하면 좋겠다고 요청한 코너다. NBC에선 앵커가 뉴스를 읽어준 후 그에 대해 짧은 논평을 하거나 트럼프 등 유명인으로 분장한 출연자와 대담하는 게 전부다. 말로 하는 스탠딩 코미디를 좋아하는 미국인들과 달리 우리나라 사람들은 행동으로 하는 코미디를 선호해 ‘위켄드 업데이트’ 초기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오랫동안 이 코너를 해오면서 한국 스타일로 변형해 기자를 등장시켰다.”

-어리바리한 ‘인턴기자’ 주현영 캐릭터는 어떻게 발굴했나.

“출연자 오디션 때 주현영씨가 여러가지 장기를 보여줬는데, 특히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성대모사를 잘했다. ‘위켄드 업데이트’에 기자로 투입하려 했더니, 주현영씨가 자기는 인턴 연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연기에 디테일이 살아 있었고, 이건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첫회에 20대 여성 비하라는 비판이 일어 당황했다. 그런 의도는 전혀 없었다.”

-최근 여야 대선후보인 이재명, 홍준표, 윤석열, 심상정 후보가 ‘인턴기자’에 출연했다.

대선후보인 이재명 윤석열 홍준표 심상정 후보(왼쪽부터 시계방향)도 ‘인턴기자 주기자가 간다’에 출연했다.

대선후보인 이재명 윤석열 홍준표 심상정 후보(왼쪽부터 시계방향)도 ‘인턴기자 주기자가 간다’에 출연했다.

“<SNL 코리아>는 2012년 제18대 대선을 앞두고 방송한 ‘여의도 텔레토비’ 때부터 대선후보와 접점이 있었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박근혜, 문재인, 이정희, 안철수 대선후보를 텔레토비 캐릭터들로 묘사했고, ‘베이비시터 면접’ 코너에선 연기자들이 후보들로 분장했다. 2017년 방송한 시즌9에서는 실제 대선후보들이 등장했지만, 연기자가 찾아가 만나는 이벤트로 그쳐 아쉬웠다. 이번엔 인턴기자가 청년을 대변하는 캐릭터니까 이 사회에서 소위 꼰대로 불리는 시니어 중에서도 대선후보들과 직접 만나면 캐미가 좋겠다고 판단했다. 후보들에 대한 호감도도 높아질 것으로 생각했다.”

-섭외에 어려움은 없었나.

“각 캠프에서 ‘인턴기자’를 잘 알고 있어 섭외는 어렵지 않았다. 젊은층 표심을 얻고 싶었던 것 같다.”

해당 콩트에서 주 기자는 홍준표 후보에게는 “저에게 오늘 막말하거나 화내실 예정인지 여쭤보겠다”고 했고, 윤석열 후보에게는 “‘이재명이 내 캠프에서 일하기’와 ‘내가 이재명 캠프에서 일하기’ 중 어떤 것을 택하겠느냐”고 물어 폭소를 자아냈다.

-후보마다 불편한 질문이 두개 정도 있던데, 관련해 캠프와 신경전은 없었나.

“대강의 사전 질문지를 먼저 보냈고, 구체적인 질문과 불편한 질문은 현장에서 협의했다. 일단 촬영을 마친 다음 후보나 캠프에서 요청하면 편집을 통해 방송으로는 안 내보내겠다고 약속했다. 각 후보 간 균형감 있게 질문하려고 했다.”

-이재명 후보 촬영분은 11월 6일 공개되는데, 어떤 불편한 질문을 했나.

“영화 <아수라>와 <말죽거리 잔혹사> 중 뭘 보겠느냐고 질문했다. 이 후보의 답은 <아수라>였다(웃음).”

지난 10월 2일 공개된 <SNL 코리아> 조여정 편에서 개그우먼 안영미씨는 ‘백화점 VIP’ 손님으로 나와 배우 김부선씨를 성대모사했다. 안씨는 “재명 오빠? 난 오빠의 그런 ‘점’이 좋더라”는 대사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인 이재명 전 경기지사의 여배우 스캔들 논란을 풍자했다. / <SNL 코리아> 캡처

지난 10월 2일 공개된 조여정 편에서 개그우먼 안영미씨는 ‘백화점 VIP’ 손님으로 나와 배우 김부선씨를 성대모사했다. 안씨는 “재명 오빠? 난 오빠의 그런 ‘점’이 좋더라”는 대사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인 이재명 전 경기지사의 여배우 스캔들 논란을 풍자했다. / 캡처

-정치풍자 아이템은 누가 짜나.

“정치풍자는 내가 직접 작가들과 구상한다. <SNL 코리아>에는 연출자들 외에 15명의 작가가 A팀과 B팀으로 나눠 격주로 일한다. ‘위켄드 업데이트’는 이들 외에 따로 2명의 작가가 있다. 이 두 작가와 메인 PD 한명과 함께 한주 동안 화제가 된 뉴스 중 2~3개를 선별하고 콘셉트를 정한다. 그런 후 작가들이 대본을 쓴다.”

-수위 조절 면에서 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작가들이 대본을 써오면 1차 수정 과정을 거친 다음 목요일 녹화 때 출연진과 작가진 30명이 모여 같이 리딩하고 회의한다. 여기서 수위를 조정한다. 다수 의견을 기준점으로 판단하고, 이 방송을 오래한 신동엽씨의 의견을 많이 듣는다.”

-정치풍자를 하다 보면 기획자나 연출자의 정치적 성향이 반영될 수도 있지 않나.

“그것을 늘 조심하고 있다. 한주 동안 가장 이슈가 된 사건을 선택하고 어느 한 진영에 치우치지 않게 상대 진영과 관련된 이슈도 고루 다루고 있다. 가령 이재명 후보와 관련 있는 이슈인 ‘대장동 개발’을 다룬 날에는 윤석열 후보와 관련 있는 ‘왕(王)자’ 논란도 다뤘다.”

-2013년 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 <SNL 코리아>에 대한 외압 행사 의혹이 보도됐다. ‘여의도 텔레토비’ 코너와 관련해 제작진의 성향을 조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실제로 이 코너와 ‘베이비시터 면접’ 코너는 폐지됐고 이후 <SNL 코리아>에서 정치풍자도 사라졌다.

“당시 회사의 리스크 관리팀에서 실무진에게 대통령과 검경 비하 느낌을 주는 시사풍자를 좀 자제해달라는 이야기가 전달된 것은 맞다. 청와대에서 직접 압박한 것인지는 나도 모른다. 그래서 3년간 19금 개그만 했더니 선정성 논란이 일었다. 정치풍자는 3년 만인 2016년 국정농단 사태 때 다시 했다.”

-TV에선 왜 정치풍자가 사라졌다고 보나.

“현재 한국은 진보와 보수가 극한 대립을 보이고 있다. 그 결과 시청자 게시판이 항의성 글로 도배되면 프로그램이 존폐 위기가 오니까 제작진이 몸을 사리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풍자를 확실히 웃음으로 승화되도록 세련되게 만들지 못하는 제작진 탓도 있다. 정치풍자는 시청자들에게 어떤 일방적 편견을 갖고 만들었다는 느낌을 줘선 안 된다.”

안 본부장은 “어떤 플랫폼으로 유통할지는 아직 미정이지만 내년 상반기 방송을 목표로 새로운 정치풍자 시트콤 <청와대 사람들>을 촬영 중”이라고 밝혔다. 대통령과 그 가족이 주인공으로 차인표(대통령), 장희정(영부인), 정상훈(비서관) 등이 출연하며 현재 60% 촬영을 마쳤다.

<박주연 선임기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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