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검열, 정치권 외압 등 지상파서 풍자 각종 압력 견뎌야… “유튜브, 수익보다 자유 이점 커”
정치풍자를 TV에서 볼 수 없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한순간 증발하듯 사라진 정치풍자는 몇해 전만 해도 주말 황금시간대 방송을 책임지고 있었다. 하지만 ‘공개 코미디’의 위기가 시작되며 정치풍자 역시 설자리를 잃었다. 아니, 어쩌면 설익은 정치풍자에 대한 반감이 공개 코미디를 위기에 빠뜨렸는지도 모른다. 일의 선후가 어떻든 2021년 11월 현재, TV 방송을 통해 정치풍자를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 됐다.
무대를 잃은 희극인들은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이때 선택된 것이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해방공간’ 유튜브였다. 많은 희극인이 유튜버로 전향했고, 약 150만 구독자를 확보한 채널까지 탄생했다. 그렇다면, 궁금증이 생긴다. 이들은 대체 유튜브를 통해 무엇을 해방시킨 걸까.
희극인들은 왜 유튜브로 갔나
“이곳에서는 더 이상 자기검열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구독자 38만명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강성범씨의 말이다. 이제는 희극인이라는 정체성보다 친여 성향 정치 유튜버라는 소개가 그를 더욱 잘 설명한다. 박근혜 정부 시절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에서 ‘LTE 뉴스’를 진행한 것이 그가 방송을 떠나는 계기가 됐다. 강씨는 “게시판에 비난글이 올라오고, 방송국 민원실로도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정치권 유력 인사가 방송국에 전화를 하기도 했다”며 “관계자들 눈치도 보이고 카메라 앞에서 위축도 되길래 그냥 내가 먼저 그만두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강씨는 진보성향의 유튜버이기 때문에 불이익을 당한 것일까.
구독자 13만명의 ‘내시십분’ 채널을 운영하는 김영민씨는 희극인 출신의 보수성향 유튜버다. 김씨는 방송을 떠나 유튜브로 옮긴 이유를 “가장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시청률이 잘 나오면 인정받는다는 방송계의 불문율이 현 정부에서 붕괴됐다”며 “몇몇 친정부 인사들은 방송에서 성과를 내지 못해도 교체되지 않았다. 이념 편향적인 캐스팅이 반복되면서 최소한의 공정질서를 지키고 있는 유튜브를 찾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성향은 다르지만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한국 코미디에서 정치풍자가 사라진 것은 ‘정치권의 외압’, ‘각 진영 지지자들의 비판’, ‘자기검열을 강요하는 방송환경’의 영향으로 요약된다. 실제로 2015년 KBS <개그콘서트>의 ‘민상 토론’은 박근혜 정부의 메르스 사태 대응을 풍자했다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행정지도를 받았다. “불쾌감을 유발했다”는 이유였다.
문제는 ‘민상 토론’이 특정 정치세력에게 불쾌감을 유발함과 동시에 또 다른 정치세력에게는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정치풍자 코미디의 딜레마는 여기서 발생한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과거 독재정권 시절과 달리 현재는 비판해야 할 권력이 애매해졌다”며 “정권을 비판한다는 것이 곧 부정적 권력을 비판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민이 정치적으로 양극화된 상황에서 한쪽을 비판하는 풍자는 해당 정치세력 지지자들에게 비판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며 “희극인 입장에서는 정치권의 압력뿐만 아니라 시청자의 압력까지 걱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의 분석은 결과는 같지만 원인에서 차이가 있다. 그는 “정치적 양극화가 풍자를 가로막는 요소라면 미국은 우리보다 정치풍자를 못 해야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라며 “그보다는 우리 사회 분위기가 코미디에서 정치적 표현이 사용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SNL>이나 <개그콘서트> 사례처럼 풍자를 코미디 요소로 받아들이지 않고, 고소를 해버리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금기 넘치는 TV… 웃길 수가 없다
사회적 분위기가 용인하지 못하는 것은 비단, 정치적 표현만이 아니다. 강씨는 “해외에서는 코미디의 주요 소재로 종교, 성, 정치 세가지를 꼽는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세가지 모두를 못 한다”며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외모, 신체적 특징을 부각해 웃음을 유발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마저도 이제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불편해한다. 무엇을 하건 코미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지 않는 세상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방송 제작 환경과 만나면 더 큰 문제를 유발한다. 사실상 ‘웃음에 대한 희극인의 창의성’을 제한해 버리는 것이다. 39년차 희극인이자 12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 서승만씨는 “방송심의위원회 등에서 단어 선택에 제재를 하기 때문에 담당 피디나 국장 등이 알아서 검열을 한다”며 “코미디 방송 내용도 작가나 피디의 성향이 내성적이냐, 외향적이냐, 웃음 포인트가 어디냐에 따라 결정됐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피디 성향에 맞지 않으면 재미가 있는지 없는지 해보지도 않고 무산됐다”며 “코미디가 피디 성향에 맞게 제작됐는데 방송이 망하면 전부 희극인 잘못이 됐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상파 방송 검열이 강화되는 것과 달리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커뮤니티, 유튜브 등은 풍자에 대한 제약이 없다. 한쪽에서 막혀버린 표현방식은 풍선효과처럼 다른 쪽에서 부풀고 있는 것이다. 결국 TV 방송만 떠나면 기존에 웃음을 줬던 콘텐츠도 별다른 제약 없이 얼마든지 접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를 두고 정 평론가는 “지상파 방송은 이에 동의하고 이해하는 사람들만 보는 것이 아닌 누구나 볼 수 있다는 관점에서 윤리적 잣대를 강하게 들이댄다”며 “상대적으로 유튜브 같은 뉴미디어는 시청자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이유로 자유로운 표현을 용인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미디어 헤게모니가 뉴미디어 쪽으로 옮겨가는 상황에서 코미디도 이러한 대세를 따라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러한 상황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11월 4일 기준 모든 TV 방송을 통틀어 공개 코미디는 tvN의 <코미디 빅리그>가 유일하다. 이마저도 민감한 정치풍자를 내세운 코너는 전무한 상황이다. 하 평론가는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인터넷에 훨씬 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기 때문에 TV 속 코미디 방송은 싱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며 “정치적 올바름은 글자 그대로 보면 좋은 말인데 그게 너무 과도해지면 코미디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든다”고 말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한 선택
코미디 방송에 가해진 각종 제약은 시청자가 느끼는 재미를 반감시켰다. 그 결과, 지상파 방송이 주도해온 공개 코미디부터 몰락했다. 희극인들은 사실상 직장을 잃게 된 상황에 놓였다. 결국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보다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새로운 무대였다. 김씨는 희극인에서 ‘정치 유튜버’로 성공적 변신을 한 경우다. 그는 “내 유튜브 채널에서 피디, 작가, 배우 역할을 모두 나 혼자 한다”며 “피디님이 무엇을 좋아할까 고민하고 검사를 받을 시간에 이제는 시청자들 반응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씨 역시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측면에서 만족하고 있다”며 “25년간의 희극인 생활로 언제부턴가 매너리즘에 젖었는데 요즘은 웃으면서 대본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웃찾사가 없어질 때 후배들에게 ‘실망하지 마라. 오히려 너희들 세상이 왔다. 그동안 생각만 하고 하지 못했던 것들을 빨리 시작하라’고 말했다”며 “그때 자신만의 콘텐츠를 가지고 빠르게 유튜브 등에 진출한 친구들은 불과 1년여 만에 큰 성공을 거뒀다”고 말했다.
이러한 희극인들의 정치 유튜버 변신을 두고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사람들의 취향과 기호가 세분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은 하나의 틈새시장을 잡은 것”이라며 “진보든 보수든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콘텐츠는 충분히 수익창출 구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편성을 잃어버리고 극단화될 가능성은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실제로 희극인들이 유튜브에서 일반 코미디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과 달리 정치풍자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반감이 크다. 반대 성향 지지자들은 이들 유튜브를 찾아와 악플을 남기고 있다. 특히 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정치적 편향성을 과장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러한 비판에 김씨는 “아무리 수익 창출이 된다고 해도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것에 대한 고충은 엄청나다”며 “편향성을 드러낸다고 해서 다 수익으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희극인은 방송 수익보다 외부 행사 수익이 더 많은 편인데 정치 유튜버로 알려지는 순간 행사 섭외도 어렵다”고 말했다. 강씨 역시 “지상파 방송을 했을 때보다 수익은 많지 않다”며 “눈치 보지 않고 내가 원래 관심이 있던 일을 하고 싶은 것뿐이지 무리하게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하 평론가는 “한 개인으로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일 뿐 희극인이라고 특별한 잣대를 둘 필요는 없다”며 “풍자를 하는 사람은 정치인을 무조건 썩었다 욕만 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뭐가 잘못됐는지 비판할 수 있어야 하고 시청자들은 이를 관대하게 바라볼 수 있을 때 바람직한 정치풍자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