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도 못 흔든다? TV 시사코미디 활발한 미국·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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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과 토크쇼, 주요 정치·사회적 이슈 꼬집어… 유럽, 공영방송이 나서 시사풍자

미국이나 유럽을 비롯한 서구권 국가들에서는 지금도 TV를 통해 시사풍자 코미디가 활발하게 방송되고 있다. 일찌감치 근대 시기를 거치며 여러 투쟁과 사회운동을 통해 ‘표현의 자유’가 모두가 지니는 중요한 권리로 자리매김한 영향이 컸다. 특히 미국의 경우 1791년 채택된 수정헌법 제1조에서 발언이나 출판을 비롯한 표현의 자유를 명시한 덕분에 성별·인종 등에 대한 차별을 조장하지 않는 이상, 무척이나 노골적인 수위의 시사풍자도 사회적으로 용인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동시에 콩트나 토크쇼, 스탠드업 코미디, 시트콤 등 다양한 포맷의 코미디가 지속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어 정세나 상황에 맞는 시사풍자를 펼치는 것도 보다 용이한 측면이 있다.

미국의 장수 TV 시사풍자 프로그램 'SNL'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역할로 출연한 배우 알렉 볼드윈의 모습 / NBC

미국의 장수 TV 시사풍자 프로그램 'SNL'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역할로 출연한 배우 알렉 볼드윈의 모습 / NBC

미국 TV 시사풍자 코미디의 양 축

한국에 잘 알려진 미국의 TV 시사풍자 코미디 프로그램은 1975년부터 NBC 방송사에서 47개 시즌에 걸쳐 방영 중인 <SNL>(Saturday Night Live·토요일 밤의 라이브)이다. 제목처럼 매주 토요일 밤마다 생방송을 원칙으로 하는 이 콩트 코미디 프로그램은 매 시기 미국에서 주목받는 여러 사건을 웃음과 해학으로 버무려 냈기에 반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미국인들은 물론 해외에서도 주목받는 장수 TV 프로그램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특히 성역을 가리지 않고 정치를 풍자하는 자세가 <SNL>을 지속적으로 이끄는 큰 원동력이 됐다. 상대적으로 미국 민주당 지지자가 많은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특성상 공화당 출신의 대통령에게 좀더 날을 세우는 점은 있지만, <SNL>은 정파성을 드러내면서도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풍자의 내용을 구성하며 꾸준히 많은 시청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레이건 정권 시기에는 본격적으로 미국에 도입되던 신자유주의로 인해 국가경제 성장과는 별개로 서민의 삶이 힘들어지는 것을, 조지 W. 부시 정권 시기에는 이라크전쟁이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경제위기를 비롯한 온갖 실정을, 최근 트럼프 정권 시기에는 종잡을 수 없이 쏟아지는 대통령의 온갖 막말과 극우적 행보를 시의적절하게 꼬집었다. 인종 차별이나 젠더 평등 등 사회적 이슈를 놓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1997년부터 20년 넘게 시사풍자 토크쇼의 대명사로 손꼽히고 있는 코미디언 스티븐 콜베어(오른쪽)는 2015년부터 지상파 방송국 CBS로 진출해 꾸준히 인기를 모으고 있다. / Vox

1997년부터 20년 넘게 시사풍자 토크쇼의 대명사로 손꼽히고 있는 코미디언 스티븐 콜베어(오른쪽)는 2015년부터 지상파 방송국 CBS로 진출해 꾸준히 인기를 모으고 있다. / Vox

미국 TV 시사풍자 코미디의 한 축에 <SNL>이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는 한편, 다른 한 축에는 ‘토크쇼’가 있다. 미국의 모든 토크쇼가 시사를 풍자하거나 코미디적 감각을 지닌 것은 아니지만, 미국인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상당수의 토크쇼는 코미디언이 진행하는 동시에 적재적소에 시사 현안을 풍자하는 측면을 지니고 있다. 미국의 코미디 전문 케이블 방송사 ‘코미디 센트럴(Comedy Central)’에서 오랜 시간 폭발적 인기를 얻고, 2015년부터는 미국 지상파 방송사인 CBS의 인기 토크쇼인 <레이트 쇼>(Late Show)에 이적해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스티븐 콜베어(Stephen Colbert)는 시사풍자 코미디에 능한 미국 토크쇼의 대표적 인사다. 스티븐 콜베어의 개인적인 정치성향은 민주당에 가깝지만, 그는 코미디 센트럴의 토크쇼 <더 데일리 쇼>(The Daily Show)를 진행할 때부터 의도적으로 극우적이며 나르시즘적 성향마저 있는 가상의 시사평론가 캐릭터를 연기하며 큰 웃음을 이끌어냈다. 그는 명목상으로는 조지 W. 부시나 도널드 트럼프의 보수적인 정책을 지지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같은편 인사가 봐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거나 억지로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만드는 식으로 무리수로 가득한 정책을 옹호하는 연기를 펼친다. 그런 스티븐 콜베어의 모습은 미국 토크쇼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2018년 3월 2일 'SNL'에서 자신을 풍자한 코너가 방송된 이후 분노를 감추지 못하며 알렉 볼드윈과 'SNL'을 비난하는 글을 남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트위터

2018년 3월 2일 'SNL'에서 자신을 풍자한 코너가 방송된 이후 분노를 감추지 못하며 알렉 볼드윈과 'SNL'을 비난하는 글을 남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트위터

아무도 시사코미디를 막을 수 없다

물론 이러한 토크쇼를 모두가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토크쇼에 자주 풍자의 대상으로 오르내리는 공화당 인사를 지지하는 이들은 미국 TV의 시사풍자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지나치게 민주당에 유리하게 구성돼 있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특히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활발하게 SNS 플랫폼 ‘트위터’를 사용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SNL>에서 자신을 소재로 삼은 콩트가 나올 때마다 직접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과 닮은 외모를 활용해 자주 <SNL>에서 본인 역으로 등장했던 배우 알렉 볼드윈에게는 “<SNL>에서 나를 묘사하며 보잘것없이 죽어가던 커리어를 되살렸다”고 조롱하는 한편, <SNL>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편향됐고 웃기지도 않는다”면서 강하게 비난을 퍼부었다. 하지만 이러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SNL>은 단 한 번도 외압에 의해 중단한 적은 없다. 오히려 <SNL> 등의 TV 코미디 프로그램을 싫어하는 미국의 우파나 극우 세력들은 ‘폭스뉴스’나 ‘브레이트바트’같이 자신들이 소유한 매체들을 통해 더욱 노골적으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코미디를 연출하면서 대응하고 있다.

영국 공영방송사 BBC는 2005년부터 2012년까지 영국 정치계를 무대로 한 블랙 코미디 시트콤 <The Thick of It>을 방송했다. / BBC

영국 공영방송사 BBC는 2005년부터 2012년까지 영국 정치계를 무대로 한 블랙 코미디 시트콤 을 방송했다. / BBC

유럽 국가들 역시 꾸준히 TV를 통해 시사풍자를 시도하고 있다. 주로 민영방송사에서 시사풍자를 시도하는 미국과 달리 유럽 방송사들은 오히려 공영방송사에서 적극적으로 사회풍자를 곁들인 코미디를 선보인다. 1976년부터 독일 공영방송사 ARD에서 방송 중인 콩트 프로그램 <extra 3>나 2005년부터 2012년까지 영국 정치를 무대로 신랄하게 시트콤의 형식으로 풍자를 해왔던 <The Thick of It>이 대표적인 프로그램들이다. 상대적으로 공영방송의 힘이 약했던 미국과 달리, 공영방송을 중심으로 TV 미디어 환경이 형성된 유럽권의 방송사들은 공영방송이 앞장서서 정치를 비롯한 사회적 현안을 뉴스나 시사 교양 프로그램은 물론 코미디의 형식을 통해 지속적으로 환기시키며 사람들이 사회 이슈에 꾸준히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고 있다. 한국이나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 TV를 통한 시사풍자 코미디가 저조한 가운데, 서구의 TV 프로그램들이 시사풍자를 꾸준하게 펼쳐온 모습은 한국은 물론 다른 아시아권 국가들이 주의 깊게 살펴볼 여지가 분명하게 존재한다.

<성상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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