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홀리데이-고혹적인 노래 가능케 한 처연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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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화려한 무대 뒤편에서 경험했던 빌리 홀리데이의 어두웠던 삶을 다루고 있다. 예전에는 그냥 풍문으로 돌던 이야기가 알고 보면 훨씬 더 추악한 얼굴을 드러내곤 한다.

제목 빌리 홀리데이(The United States vs. Billie Holiday)

제작연도 2021

제작국 미국

상영시간 130분

장르 드라마

감독 리 다니엘스

출연 앤드라 데이, 트래반트 로즈, 가렛 헤드룬드

개봉 2021년 11월 4일

등급 청소년 관람 불가

㈜퍼스트런

㈜퍼스트런

영화를 보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에스콰이아 구두가 지금도 팔리고 있을까. 검색해보니 나온다. 인터넷 쇼핑몰에. 한국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빌리 홀리데이와 처음 만난 건, 1990년대 중반 이 구두회사의 CF 덕분이리라. 배경음으로 쓰인 ‘나는 바보라 당신만 원했어요(I’m A Fool To Want You)’. 빌리 홀리데이의 일대기 영화이니 그 노래도 나올까. 안 나온다.

진짜 빌리 홀리데이를 대표하는 노래는 따로 있다. ‘이상한 열매(Strange Fruit)’다. 영화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노래다. 이상한 열매란? 린치당해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흑인들의 시체다. 공포영화 <살아난 시체들의 밤(Night of living Dead)>(1969)에서 살아남은 흑인주인공이 마지막 장면에서 좀비 퇴치를 위한 민병대에게 사살당한다. 엔딩크레딧에 백인 구경꾼들에게 둘러싸여 처참하게 죽은 흑인들을 찍은 흑백사진들이 나열되는데, 실제 사진들이다. 가사를 모르고 들으면 그냥 빌리 홀리데이 특유의 고혹적인 음색만 귀에 들어오지만 섬찟한 역설을 담고 있는 노래다. 그걸 알았기에 미국 정부는 이 노래를 싫어했다고 영화는 주장한다.

영화의 원제목은 <미국 정부 vs 빌리 홀리데이>다. 버수스를 붙인 케이스는 보통 재판사례일 때가 많다. 미국 정부는 빌리 홀리데이가 공연할 때 저 노래를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은 것으로 영화는 묘사하고 있다. 심지어 그의 매니저와 전남편까지 매수해 저 노래를 부르지 않도록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돼 있다. 어디까지가 진짜 이야기일까.

‘이상한 열매’ 노래를 못 부르게 한 정부

어찌 됐든 ‘이상한 열매’가 미국사회의 어두운 구석, 인종차별의 현실을 날카롭게 고발했던 것은 사실이다. 영화는 화려한 무대 뒤편에서 경험했던 빌리 홀리데이의 어두웠던 삶을 다루고 있다. <오즈의 마법사>(1939) 도로시 역을 맡았던 배우 주디 갈랜드의 삶을 다룬 영화 <주디>(2020)도 그렇지만, 예전에는 그냥 풍문으로 돌던 이야기가 알고 보면 훨씬 더 추악한 얼굴을 드러내곤 한다.

빌리 홀리데이는 약물중독자였다. 그에 맞선 미국 정부를 대표하는 인물은 FBI 마약단속국의 해리 앤슬링어다. 실제 인물이다. 금주법 시대 미국 워싱턴의 금주부서 수장이었던 그는 금주법이 사라지자 새로운 악당이 필요했다. 마리화나다. 영화에서 앤슬링어는 이제 막 대학교를 졸업하고 연방수사국에 들어온 젊은이를 빌리 홀리데이를 감시하도록 붙여놓는데, 그가 흑인청년 지미 플레처다. 찾아보니 대부분 영화 개봉 후 나온 이야기지만 그 역시 실존 인물이다. 영화에 따르면 플레처 자신보다 그의 어머니가 빌리 홀리데이의 팬이었다. 신분을 감추고 이제 막 언론사에 입사한 기자로 위장한 플레처가 인터뷰하면서 친분을 쌓았다. 나중에 그의 신분(연방 마약단속국 요원)이 밝혀지자 그는 배신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 앤슬링어는 플레처가 빌리 홀리데이의 마약 투약 사실을 숨기는 것이 아닌가 의심했고, 버스투어에 나선 빌리 홀리데이 일행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긴다.

영화는 두 사람이 나중에 육체적 관계를 맺는 연인관계까지 발전한다고 묘사하는데 그건 사실일까. 지난 2015년 미국의 정치 전문 일간 신문 폴리티코에 실린 기사를 보니 실제 육체적 관계까지 맺었는지 여부는 불투명하지만(그건 어디까지 프라이버시 문제다) 두 사람이 ‘특별한 관계’인 것은 맞다고 한다. 기사는 몇가지 증거를 제시하는데 그중 하나는 빌리 홀리데이가 출간한 자서전을 플레처에게 건네면서 앞에 쓴 기증사 같은 것이다.

어디까지 진실이었을까

영화는 버스투어 중 두 사람이 가까워지게 된 계기를 린치당해 아버지를 잃은 흑인 가족의 집을 매개로 보여주는데 실제 사건이라기보다 상상의 경험에 기초한 환유다. 두려움을 느낀 빌리 홀리데이는 집안으로 피신하고, 거기서 자기가 어린시절을 보낸 매음굴의 환상을 본다. 무의식 저편으로 밀어냈을 끔찍한 기억이었을 텐데 플레처는 그 집에 고립돼 떨고 있는 그를 구해준다. 인상적인 장면이다.

영화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빌리 홀리데이역을 맡은 앤드라 데이의 열연이다. 원래 가수 겸 작곡자 활동으로 알려졌는데, 장편영화 데뷔작인 이 영화로 골든글로브와 오스카 여우주연상 후보로 지명됐다. 사운드 시설이 좋은 극장에서 보길 추천한다.

‘이상한 열매’ 때문에 탄압 주장은 음모론?


㈜퍼스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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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스크린 개봉을 하지만 미국에서는 훌루를 통해 공개됐다. 평론가들의 평들을 살펴보면 반응은 엇갈린다. 특히 재즈팬들 사이에서 영화가 묘사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 실제 팩트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오는 모양이다.

예를 들어 영화에서는 ‘1947년 5월 27일, 필라델피아 얼시어터’라고 일어난 장소와 시간까지 특정해 ‘사건’을 묘사하는데, 실제 그 날짜에 빌리 홀리데이는 그 극장의 무대에 서지 않았다고 한다.

재즈평론가들에 의하면 더 큰 문제는 바로 그 ‘사건’이다. 영화에서는 빌리 홀리데이의 공연장에는 경찰들이 참관하고 있었다. 빌리 홀리데이가 ‘이상한 열매’ 노래의 첫 소절을 부르자 매니저였던 조 글래이저의 묵인 아래 끌려나가는 것으로 묘사돼 있다. 연방 마약단속국이 그의 마약 투약을 감시·추적한 것은 맞지만, 빌리 홀리데이의 직업적 경력 전체에서 저 노래를 부르다 끌려나간 일은 없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실제 마약단속국의 단속이 인종차별적 권력과 결합해 있었다는 영화의 시각은 음모론에 가깝다는 것이 재즈평론가들의 주장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미국 남부에서 횡행했던 흑인 린치를 담고 있는 노래 ‘이상한 열매’는 미국의 여러 주에서 오랫동안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그리고 지금은? 미국 주간지 ‘타임’은 20세기를 마감하는 1999년 12월 31일호에서 이 노래를 ‘세기를 대표하는 최고의 노래’로 선정했다고 한다. 미국 잡지 ‘롤링스톤’이 선정한 500대 명곡 리스트에도 이 노래는 2021년 현재 21위로 올라 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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