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슈퍼앱’ 간다! 저가항공 에어아시아의 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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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접종률이 올라가며 리오프닝이 다가오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막혔던 빗장이 풀리면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고 해외 출장이나 여행을 떠날 것이다. 각국에 여러 항공사가 있지만, 아세안 지역의 대표적인 항공사, 저가항공의 신화를 쓴 기업으로는 에어아시아를 꼽을 수 있다. 에어아시아는 동남아로 휴가를 떠났던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이름이면서, 박지성 선수를 영입했던 잉글랜드 축구클럽 QPR의 구단주로도 유명하다.

토니 페르난데스 에어아시아 회장/연합뉴스

토니 페르난데스 에어아시아 회장/연합뉴스

팬데믹 충격이 오기 전까지 에어아시아는 동남아지역 내 여러 대도시와 중소도시 그리고 미국과 일본 등 장거리 노선을 담당하는 에어아시아X까지 포함해 전 세계 25개국 165개가 넘는 노선을 갖춘 아세안 저가항공의 대명사로 자리 잡고 있었다. 에어아시아는 원래 말레이시아 정부 소유의 DRB-Hicom의 항공사로 1993년 출범했다. 당시 에어아시아는 몇 안 되는 노선만을 갖춘 일반 항공사였다. 그러나 기대만큼 영업이익이 발생하지 않아 지속적인 운영난을 겪었고, 모기업 역시 부패 스캔들에 얽히는 등 상황이 좋지 않았다. 결국 에어아시아는 2001년 튠 에어(Tune Air)에 매각됐다. 이때 매각대금은 1링깃에 불과했다. 당시 환율로 26센트, 1달러도 안 되는 금액이다. 40000만링깃(1100만달러)에 달하는 부채를 지고 있었기 때문에 상징적인 의미로 1링깃을 책정했을 뿐이다.

비용 최소화·노선 확대로 성장

수렁에 빠진 에어아시아를 인수한 이들은 토니 페르난데스와 카마루딘 메라눈이었다. 대표인 토니 페르난데스는 인도 출신의 말레이시아인으로 미국기업 타임워너의 임원 경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타임워너를 떠나면서 그동안 받았던 스톡옵션을 처분한 돈으로 에어아시아를 인수했다. 그는 영국에서 유학할 당시 항공료가 비싸 방학에도 집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며 저가항공사를 세우는 꿈이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토니 페르난데스는 인수 직후 에어아시아를 저가항공사로 전환했고, 초저가 프로모션을 펼치며 국내외 노선을 확장하는 등 공격적인 전략을 택했다. 방콕 노선에 이어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 마카오, 중국 샤면과 필리핀 마닐라, 베트남, 캄보디아 등 연달아 해외노선을 확장했다. 에어아시아는 가격경쟁과 노선확보에서 승기를 잡았고, 단숨에 선두주자로 떠올랐다. 저비용 구조를 만들기 위해 콜센터와 메시지로 예약을 받으면서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종이 티켓이 필요 없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무서운 확장세를 보인 에어아시아는 인수 3년 만인 2004년 11월 말레이시아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기염을 토했다.

쿠알라룸푸르를 중심으로 아세안 대도시를 연결해온 에어아시아는 2007년 장거리 노선을 취급하는 에어아시아X를 별도의 기업으로 출범시켰다. 다른 경쟁자들을 누르고 한발 앞서 나갔던 에어아시아는 2009년과 2010년 스카이트랙스가 주는 세계 최고 저비용항공사에 2년 연속 선정되는 등 말레이시아의 가장 가치 있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성과 덕분에 단거리와 장거리를 구분해 에어아시아와 에어아시아X를 구분하고, 태국과 인도 등 지역별로 이들의 자회사를 두는 멀티-허브 전략은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비책으로 보였다. 승객 증가율은 지속적으로 상승했으며, 승객당 부수입은 경쟁사보다 훨씬 높았다. 기내에서 물 한잔도 제공되지 않는 철저한 저비용구조에 기반을 두고 있어 승객들은 음료수나 간단한 식사, 스낵, 이어폰을 원할 경우 전부 구매해야 한다. 예약취소나 변경도 쉽지 않으며 환불은 대단히 어려운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이러한 비용 최소화와 노선 확대를 통한 성장이 영원할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비행기를 지속적으로 구매해야 했고, 알짜 노선은 말레이시아 항공과 자리다툼을 벌이면서 말린도 등 경쟁자들이 점차 영역을 확대하고 있었다. 관리와 마케팅 운영, 승무원 및 인력 구조 등 모든 자원이 분리된 기업인 에어아시아X는 브랜드 사용료를 에어아시아에 지불해야 하는 부담도 지고 있었다.

‘에어아시아 슈퍼앱’/고영경 제공

‘에어아시아 슈퍼앱’/고영경 제공

디지털 기반 서비스로 승부수

에어아시아는 포트폴리오 다각화라는 변화의 승부수를 던졌다. 멤버십을 가진 고객을 레버리지로 활용해 신규사업, 특히 디지털 기반 서비스를 론칭, 강화하는 전략을 취했다. 먼저 2018년 자체 전자지갑 및 디지털 결제 빅페이(Big Pay)를 출시했다. 말레이시아에는 이미 여러 핀테크 사업자들이 활약하고 있었지만, 에어아시아는 기존 고객들이 마일리지 점수(빅포인트)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각종 공과금 납부가 가능하다는 강점을 내세워 시장을 파고들었다. 기내식을 브랜드화해 식당을 열고 음식배달업에도 뛰어들었으며, 이커머스 물류 사업, 포인트 활용 프로그램과 쇼핑, 차량호출 서비스까지 손을 뻗쳤다. 비행기 예약부터 쇼핑, 송금이 에어아시아 앱에서 다 이용 가능하다. 이처럼 일상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서비스를 하나의 앱에 올려놓고 이용자가 아이디 하나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 플랫폼을 슈퍼앱이라고 부른다. ‘에어아시아 슈퍼앱’이라는 이름의 회사를 둘 정도로 에어아시아는 자신의 목표와 방향성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2021년 아세안 대표 슈퍼앱 고젝의 태국 라이드헤일링과 결제 사업부를 5000만달러에 인수하기도 했다. 비단 말레이시아에 머물지 않겠다는 강렬한 신호탄이다.

에어아시아 디지털 사업의 성장기회는 이제 인터넷 전문은행 자격 획득에 달려 있다. 말레이시아 중앙은행은 5개 사업자에게 라이선스를 부여할 계획이며, 최소 29여팀이 신청했다고 알려져 있다. 2014년 MH370 실종사건 이래로 말레이시아 항공은 생존이 위태로운 상황인데다 2020년부터 이어진 팬데믹으로 항공사 전체가 바닥을 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부가 결국 자국 항공사업자 에어아시아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이러한 시나리오 개연성 덕분일까. SK 동남아투자법인은 지난 8월 빅페이에 700억원을 투자하고, 빅페이가 주도하는 인터넷 전문은행 사업 컨소시엄에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한다는 소식을 발표했다.

팬데믹 이후 에어아시아는 1등 저가항공사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지, 슈퍼앱 및 디지털 금융서비스 거인으로 성공적인 변신을 과연 이뤄낼 수 있을지 에어아시아의 미래를 결정지을 중요한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고영경 선웨이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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