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전통의 산미구엘, 맥주만 생각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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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에게 필리핀을 대표하는 기업을 물어보면 딱히 떠오르는 기업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맥주 브랜드인 산미구엘이 있다. 산미구엘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필리핀 대표기업 중 하나이다. 수많은 기업이 생겨났다 사라지는 시장에서 산미구엘이라는 브랜드를 한세기 넘게 이어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산미구엘 맥주는 전 세계에서 알아주는 브랜드이지만 오늘날 산미구엘 코퍼레이션이라는 기업은 맥주에서 전력, 인프라 사업으로 그 존재감을 훨씬 더 강력하게 키웠다.

산미구엘 본사 / 라몬 앙 산미구엘 회장 SNS 갈무리

산미구엘 본사 / 라몬 앙 산미구엘 회장 SNS 갈무리

광산과 신문, 라디오, 항공에도 투자

산미구엘은 도대체 얼마나 오래된 회사일까. 또 얼마나 영향력이 크길래 필리핀 하면 떠오르는 상징이 됐을까. 그 기원은 18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필리핀이 스페인의 식민지였을 당시 마닐라에서 사업을 하던 스페인 사업가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엔리케 마리아 바레토 데 이카자 에스데반(Don Enrique Maria Barretto de Ycaza y Esteban)은 필리핀에 새로운 주류를 선보이면 잘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고, 당시 필리핀에 없던 맥주를 선보이기로 했다. 이때 만들어진 회사가 산미구엘 브루어리였다. 회사 이름은 마닐라의 산미구엘이라는 지역 이름에서 따왔다. 동남아 최초의 맥주 양조장 산미구엘 브루어리는 가톨릭의 성 미카엘 축일에 맞춰 회사를 정식 오픈했다.

처음 맛보는 병에 든 맥주는 반응이 좋았다. 필리핀 사람들이나 필리핀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 산미구엘은 인기를 끌었고, 상하이와 홍콩, 괌 등 수출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1920년대 사세 확장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산미구엘이 코카콜라와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1927년 계약 당시 산미구엘은 미국계가 아닌 최초의 해외 보틀러 및 유통 파트너가 됐다.

산미구엘 설립자는 스페인 사람이지만 스페인에 생산기지를 갖고 있지는 않았다. 1953년에서야 라 세가라(La Segarra)가 안드레스 소리아노 사장에게 산미구엘 브랜드로 스페인에서 맥주를 생산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지면서 스페인에서 생산된 산미구엘 맥주가 등장한다. 이를 ‘마닐라 합의’라고 부른다.

2020년 세계주류품평회 몽드셀렉션에서 금상을 받은 산미구엘 페일 필젠 / 경향신문 자료사진

2020년 세계주류품평회 몽드셀렉션에서 금상을 받은 산미구엘 페일 필젠 / 경향신문 자료사진

다시 필리핀으로 돌아가보자. 1963년 산미구엘은 브루어리가 아닌 산미구엘 코퍼레이션으로 이름을 바꾸고 신규사업에 눈을 돌린다. 농산물과 가공식품 생산, 육류, 유제품, 코코넛, 주류 그리고 포장용기로 사용되는 유리병과 박스, 알루미늄 캔 생산에 직접 뛰어든다. 관련 사업 다각화를 진행한 것이다. 이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산미구엘은 한때 필리핀 탄산음료 시장의 거의 전부를 장악했고, 주력사업인 맥주와 알코올 부문에서도 막대한 시장 점유율을 보이며 필리핀 대표기업으로 자리를 굳혔다. 식품 이외에 광산과 신문, 라디오 등 미디어에도 진출했으며 필리핀 항공사에도 투자했다.

거대 기업으로 키운 안드레스 소리아노

이처럼 산미구엘을 거대 기업으로 키운 것은 안드레스 소리아노였다. 사실 산미구엘 브루어리 회사가 만들어질 때 참여한 주주들은 여러명이었다. 그 가운데 페드로 파블로 록사스가 엔리케 바레토의 지분을 인수해 대주주로 자리를 잡았다. 록사스의 손자가 바로 안드레스 소리아노이다. 그러나 이내 지배구조문제가 불거졌다. 대주주인 소리아노의 사촌이자 아얄라그룹의 대표인 엔리케 조벨이 경영상의 문제를 들어 반기를 들었고, 지분을 에두아르도 코후앙코 주니어에게 매각했다. 그는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의 측근이었고, 코코넛 산업 투자 펀드를 등에 업고 소리아노를 압박했다. 1986년 아키노 대통령이 당선되자 코후앙코는 마르코스와 함께 하와이로 달아나면서 경영권 다툼 1차전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복잡한 필리핀 정치사는 다시 코후앙코, 라몬 앙 그리고 조벨을 무대 전면에 내세우게 했다.

누가 경영을 맡건 산미구엘은 필리핀 경제에서 중요한 기업이었지만 국내외 기업들 사이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었다.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산미구엘은 해외 진출에 전력을 다했다. 주변 국가의 브루어리를 포함 6개 회사를 사들였고, 에너지와 인프라에 도전장을 냈다. 2010년 석유기업 페트론(Petron)의 지분을 인수했고, 엑슨 모빌 말레이시아의 지분도 사들였다.

이중 산미구엘의 제2의 도약을 불러온 것은 인프라 분야였다. 필리핀은 1억명의 인구를 가지고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려 애쓰는 국가지만 인프라가 취약하다. 지금까지 모든 대통령이 당선될 때마다 내세운 것도 인프라 확충이었지만 실제 완성된 프로젝트는 많지 않다. 현 두테르테 대통령도 ‘빌드 빌드 빌드(Build Build Build)’ 정책으로 인프라 건설을 경제 최우선 정책 전면에 내세웠다. 인프라 없이 외국인 투자도 경제재건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산미구엘 마켓 / 라몬 앙 산미구엘 회장 SNS 갈무리

산미구엘 마켓 / 라몬 앙 산미구엘 회장 SNS 갈무리

산미구엘은 딸락에서 라우니온을 잇는 민자고속도로 사업 TPLEx에 참여했다. 또 남부 루손시역 고속도로 사업(SLEX)과 마카티 중심부와 루손 남부지역에서 뻗어나가는 고가 고속도로 사업 스카이웨이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이 외에도 여러 고속도로 사업과 통행관리와 불라칸 수도공급 프로젝트도 맡고 있다. 보라카이공항은 이미 완공해 운영하고 있으며 마닐라 신국제공항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인프라 프로젝트는 모두 막대한 예산의 자본이 투입되는 대규모 공사다. 산미구엘은 필리핀의 국가정책이 사회기반시설 건설에 집중되는 시기와 맞물려 주력사업으로 인프라 부문이 성장했고, 기업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게 증가했다. 산미구엘은 필리핀 국내총생산(GDP)의 5.2%를 감당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만큼 필리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중요성이 크다.

2020년 팬데믹의 여파로 필리핀 경제도 타격을 입었고, 산미구엘 전체 매출과 이익도 크게 하락했다. 그러나 2021년 상반기는 전년 동기 대비 확실한 회복세를 보여주고 있다. 전체 매출도 증가했지만 영업이익 309%, 순이익 841%가 증가했다. 기저효과의 영향도 있지만 식품과 원유, 인프라 부문에서 고르게 매출과 이익이 회복되고 있다. 필리핀이 봉쇄를 풀고 마닐라나 보라카이를 자유롭게 거닐며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넘쳐날 때, 산미구엘의 가치를 한번 생각해보아도 좋을 것이다.

<고영경 선웨이대 비즈니스스쿨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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