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베트남 향한 ‘백신 선물 공세’의 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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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베트남과 미국이 동맹국 수준으로 가까워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올 정도로 두 나라 관계가 뜨겁다. 이를 지켜보는 중국은 불편하다 못해 불쾌한 감정을 공개적으로 드러낸다. 중국은 남미, 아프리카, 아세안 등 전 세계 80여개국에 중국산 백신을 지원하며 백신 외교에서 승기를 잡았다. 그런데 미국이 뒤늦게 백신 외교전에 뛰어들면서 느닷없이 베트남이 미중 백신 전쟁의 한가운데 섰다. 겉으로는 백신 기부이지만 실상은 베트남 동해와 (남중국해) 메콩강 유역을 둘러싼 치열한 정치·경제·외교·군사적 갈등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숨겨져 있다.

팜 민 찐 베트남 총리(오른쪽)를 만나는 씽 보 주베트남 중국대사 / VNA

팜 민 찐 베트남 총리(오른쪽)를 만나는 씽 보 주베트남 중국대사 / VNA

미국·베트남의 ‘백신 협력’ 8월 24일 차기 미국 대통령 후보로 꼽히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2박3일 일정으로 베트남을 방문해 많은 선물 보따리를 풀어놨다. 미국은 그동안 베트남에 모더나 백신 500만회분을 무상 지원했는데 해리스 부통령이 화이자 백신 100만회분을 추가로 가지고 왔다. 화이자는 베트남 청소년 900만명의 접종을 위한 백신 2000만회분을 무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미 국방부도 베트남 전국 63개성에서 화이자 백신을 영하 70도에서 보관할 수 있는 초저온 냉장고 77개를 기부하기로 하고 미 인도태평양사령부의 괌 공군기지에서 베트남으로 수송 작전을 펼치고 있다. 또한 미 정부는 백신 유통과 감염병 퇴치 지원 명목으로 2300만달러(약 266억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아울러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 CDC는 동남아시아 지역본부를 베트남 하노이에 설치하기로 하고 해리스 부통령 방문에 맞춰 개소식을 했다. 전 세계에 4개밖에 없는 CDC 해외 지역본부 중 하나를 베트남에 설치한 것은 미국이 베트남을 거점으로 중국의 ‘백신 일대일로’를 차단하려는 것을 뜻한다. 또한 미국이 베트남에 지원하는 초저온 냉장고를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가 기부하고 공군 수송기로 배송하는 것은 베트남과 미국의 군사적 협력을 시작하는 신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응우옌 쑤억 푹 국가주석(오른쪽)을 만나는 미국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 AP

응우옌 쑤억 푹 국가주석(오른쪽)을 만나는 미국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 AP

이를 지켜보는 중국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해리스 부통령이 베트남에 도착하기 2시간 전 주베트남 중국대사가 베트남 총리를 만나 ‘평화로운 사회주의 이웃국가 간의 불화를 조장하는 시도를 막아야’ 한다며 중국 백신 200만회분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해리스 부통령이 가져오는 화이자 100만회분을 의식해 미국의 2배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베트남과 미국의 협력을 왜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미국, 남중국해 분쟁 개입 의사 표명 해리스 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하기 한달 전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이 먼저 베트남을 다녀갔다. 베트남과 미국 양국 국방부 장관이 다양한 현안에 대해 협의를 했는데 여러 대목 중 눈에 띄는 것은 ‘해상법 집행 능력 강화’다. 결국 중국과 영토 분쟁을 겪고 있는 베트남 동해(남중국해) 문제에 미국이 다양한 형태로 지원하는 것을 협의한 것으로 보인다.

호아 로 교도소를 방문한 미국 해리스 부통령 / UPI

호아 로 교도소를 방문한 미국 해리스 부통령 / UPI

해리스 부통령은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과 만나는 자리에서 노골적으로 “중국이 유엔해양법협약을 준수하도록 압박 강도를 높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베트남이 중국과 영토 분쟁을 겪고 있는 해역에서 ‘미국 해안 경비 요원을 파견하는 것을 지지하며 남중국해에서 강력한 주둔을 유지할 것’이라고까지 했다. 중국은 베트남주재 중국대사관 명의로 “미국이 영유권 분쟁의 긴장감을 조성하는 배후에서 검은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전 세계 언론이 ‘남중국해 갈등’에 미국이 개입한다는 것에만 집중보도했지만,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는 요소는 몇가지 더 있다. 해리스 부통령은 베트남을 떠나며 남긴 담화문에서 앞으로 베트남과 협력할 분야로 ‘기상관측을 위한 우주개발 협력’을 강조했다. 필자가 지난 기고문을 통해 베트남 인공위상 발사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다(주간경향 1425호). 표면적으로는 기상위성이지만 중국을 겨냥한 군사위성으로 전환이 가능한데 미국이 이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표명한 것이다.

미국이 베트남에 제공하는 초저온 냉장고 / nguoi Lao Dong

미국이 베트남에 제공하는 초저온 냉장고 / nguoi Lao Dong

메콩강 유역 둘러싼 치열한 이해관계 또한 “기후변화에 따른 메콩강 유역의 침식에 대해 깊은 우려를 베트남 정부와 공감했다”라고 했다. 이는 중국이 일대일로 사업 일환으로 메콩강 중상류에 해당하는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에 차관 형태로 11개 댐을 설치하면서 메콩강 하류인 베트남, 캄보디아에는 유입 수량이 줄어 농업과 어업에 막대한 피해를 받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은 2030년까지 댐을 30개에서 최대 70개까지 더 짓겠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남중국해보다 메콩강 유역에서 친중국가와 반중국가 사이에 전쟁이 발발 가능성이 더 높아진 것이다.

해리스 부통령이나 오스틴 국방부 장관이 공통적으로 방문한 곳이 미국 포로들이 수용돼 있던 호아 로 교도소이다. 오스틴 장관은 베트남 첫 방문지로 선택했고, 해리스 부통령은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가 포로로 붙잡혀 호아 로 교도소에 수감됐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3주기 추모일에 맞춰 방문했다. 미국 고위급 관계자들이 연달아 전쟁으로 얼룩진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전략적 파트너로서 관계를 형성하겠다는 제스처로 취한 것으로 보인다. 이 해석이 과도하지 않아 보이는 것이 해리스 부통령이 교도소 방문 전날 주베트남 미국대사관 신축 이전 협약 체결식을 이행했다. 신축 비용이 12억달러 무려 1조4000억원이다.

그렇다면 베트남은 정말 미국과 군사적 동맹을 맺고 아세안 지역의 반중전선의 선봉에 서게 될까? 베트남은 외교 줄타기의 명수라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 적극적인 관계는 형성하겠지만 그렇다고 중국과 대척점에 서지는 않을 것이다. 전 주미베트남 대사를 역임한 팜 꽝 빈이 베트남 현지 언론 VNExpress에 기고한 글은 앞으로 베트남이 취할 베·미·중 관계를 예상하게 한다.

“베트남을 비롯한 아세안 국가들은 어느 편을 들거나, 평화와 안전을 해치거나 국제법을 무시하는 그러한 경쟁을 원하지 않는다. 베트남과 아세안 지역의 중요한 파트너인 미국과 중국은 이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유영국 「왜 베트남 시장인가」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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