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우리의 ‘우상’도 일그러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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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과 우왕좌왕은 다른 말이지만, 기실은 내면으로 꽤나 연결된 말이다. 대중이 쉽게 어딘가로 정신을 빼앗기면 우상을 쫓는 셈이고, 그러느라 대중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둥대면 우왕좌왕하는 꼴이 된다. 인간은 오랫동안 나무, 돌, 흙, 쇠붙이 등으로 우상을 만들어왔다. 누군가의 리드에 끌려 어딘가로 쩔쩔매고 쫓아가면 무리 지어 우왕좌왕한다. 이 두 단어 속에는 사색과 지혜의 인간이 가진 슬기로움이나 존귀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낱 사람은 초조하고 불미한 하루살이를 하는 못난 허약함과 연약한 미진함을 느끼게 할 뿐이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40년을 증시에서 투자분석가로 일하면서 요즘 너무 생경하고 본데없는 말들이 시장에 등장해 어안이 벙벙하다. 그중에서도 ‘따상’이나 ‘빚투’란 말이 언어도단의 압권이다. 하나는 상장 시세가 바로 두 배로 오르며 출발하는 청약의 기대감이고, 하나는 부채로 하는 투자 열기를 말한다. 게다가 혹자는 ‘십만전자’라는 말도 하고, ‘1억코인’에 ‘천슬라’라는 말까지 한다.

그동안 인간이 금은보화만 가지고도 역사에서 인간성의 경박함이 충분히 기록되고 있는데, 이제는 마치 온 시대가 배금 일색의 탐욕의 계절을 보내고 있는 느낌이다,

서부영화 속 철도역과 우체국

사람이라곤 전혀 살지 않던 미국 유타주의 황량한 허허벌판 한가운데에 유령도시 파레아(Pahreah)가 있다. 올드 파리아(Old Paria)라고 부르기도 한다. 1865년에 암벽으로 둘러싸인 이곳에 몇몇 종교인들이 들어와 작은 마을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은 원래 잦은 홍수와 산불 등의 자연재해로 사람이 사는 데는 적합하지 않은 환경이었다, 그러나 ‘믿음의 커뮤니티’들은 1893년에 이곳에 우체국을 세웠고, 그 이름이 파리아(Paria)이다. 1912년에는 조그마한 금광을 찾아내 채굴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홍수의 범람과 산불은 그치지 않았다, 거듭되는 홍수로 마을이 물에 쓸려가고 불에 마을이 타는 재해가 끊이지 않았다. 결국 금광도, 우체국도 다 폐쇄가 됐다. 1930년 마침내 마을도 폐쇄돼 지금까지 폐허의 유령도시가 됐다. 후일 우리는 그 마을을 스크린에서 가끔 보게 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무법자 조지 웨일즈>가 이곳을 세트장으로 사용했다. 1960년대에 만든 <상사 3>나 <버펄로 빌>이란 영화도 여기서 찍었다. 그러나 지금은 세트장 마을도 홍수에 쓸려가고 불에 타고 없다.

미국 내륙의 자연이 이렇게 험난한 곳인지는 철도가 생기기 전까지는 잘 몰랐다. 1868년 미국 동서대륙 간의 철도가 연결되면서 사람들이 끼리끼리 미지의 자연으로 들어갔다. 낯선 마을을 만들었고, 잘 모르던 자연을 사용하다가 끝내 자연재해로 사람도, 마을도 사라진 것이다. 당시 골드러시의 붐까지 겹치면서 철도회사가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그 철도역의 근처에 우체국을 만들고, 누구는 금을 채굴하러 다니고, 누구는 장터(market place)를 만들었다가 사라진 것이다.

그 여파는 뉴욕증시로 옮겨왔다. 당시 상장 주식은 대다수가 철도주였고, 그 후광을 입은 철강업 주식이 뒤를 이었다. 그때 벌어들인 큰돈으로 대학을 만든 스탠퍼드 가문, 밴더빌트 가문이나 정치가들이 나온 록펠러 가문도 그 열풍의 수혜자이자 주역들이다.

물론 지금 그들은 미국 증시에서 대부분이 사라지고 없다. 특히 전국을 호령하던 철도주식들은 대공황의 주연배우로 애초에 대다수가 사라졌다. 그런데 그 시절의 낯익은 영어단어인 플랫폼과 포털과 마이닝과 마켓 플레이스는 지금 다시 유령처럼 벌떡 일어나 우리 증시 곁으로 왔다.

현란한 재무전략보다 사업본질에 충실해야

사실 과거에는 누적 재고로 인해 반도체의 중고가격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을 때도 많았다. 그런데 코로나19 와중에 반도체가 여기저기에서 큰 쇼티지(shortage)가 나고 있다. 나아가 관련 소재가격의 앙등에도 그 여파가 미친다. 여기에다 미국 반도체회사나 삼성전자 등 관련업계는 인수합병(M&A)설도 일어나고 있다. 글로벌 금융가에서는 이들의 나비효과로 연일 인플레이션 논쟁도 벌인다. 모두 느닷없는 일들이다.

대체불가란 말은 종종 신앙인들이나 사용한다. 특히 역사를 뒤흔든 서구종교의 유일신 논쟁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근자에 다시 NFT(Non-Fungible Token)라는 디지털자산이 나타나 대체불가란 이름을 투자금융시장에 소환해 큰돈을 담기 시작한다. 인간의 투기 흑역사로 보면 이 칼날 위의 춤사위가 어떻게 끝날지 짐작이 안 간다.

정말 한낱 스쳐지나가는 우상현상으로 보아주기엔 심상치가 않다. 어쩌면 이걸 붙잡아야만 더 큰 미래로 갈 수 있을지도 몰라 수중에 큰돈을 가지고 있다면 정말 우왕좌왕할 만한 일이다. 그래서 언론은 비트코인을 억만장자들의 대여금고라고 부르기도 한다.

도시를 연구하는 학자 중에는 200년을 지켜봐야 도시생존 여부가 가려지고, 최소한 80년은 살아봐야 마을이 온전한지 안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그래서 선조들이 살지 않는 땅은 다 그럴 만한 사유가 있다고 말한다. 유령의 도시 올드 파리아도 그런 셈이다.

정보통신의 기술이 유익하고 디지털의 역할이 중차대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면서도, 카카오란 회사가 카톡으로 소식을 전해주다가 이젠 상점을 하고, 은행도 벌리고, 게임도 올리는 것을 보면 서부영화 속에서 본 철도역과 우체국 생각이 난다. 그들도 처음에는 사람을 만나게 하다가, 편지를 전해주다가, 소포도 맡고 돈도 부치게 하고 보험도 들어주고 택배도 하다가 사람들이 마을에서 빠지니까 그냥 사라졌다.

결국 지나고 보면 어느 포털이나 플랫폼에도 오래 머물지 않고 수시로 무리 지어 움직일 것이다. 사람이 줄어들다 보면 지금은 저렇게 강력해 보이는 글로벌 플랫폼들도 종내에는 사라질 것이다. 근간에 발호해 사업을 일순에 다변화하려는 정보와 문화와 소매와 유통과 물류와 금융의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이제는 적당히 좀 차분해지자고 말하고 싶다. 원래 사람이 살지 않던 동네의 명운이나, 오래전부터 문명의 검증도 없고 사용하지도 않던 신기술의 수명은 누구도 장담할 수가 없다. 분명 구글이나 페이스북의 봄날도 역사는 한때의 우상이자 우왕좌왕으로 기록하리라. 한데 우리 네이버나 카카오나 넥슨이나 하이브라고 마냥 대수겠는가. 특히 요즘 카카오 경영은 재무전략이 조금 현란해보인다. 삼성전자도 재무전략의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 이럴수록 인간존중과 사업본질에 충실하자.

<엄길청 미래경영학자·전 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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