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새로운 미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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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경험이 남았다’ 맥 끊긴 남북교류의 내일

지난해 초 전 세계에 코로나19가 퍼지면서 영화처럼 비현실적인 생활이 시작됐다. 이런 어려움은 역설적으로 우리나라의 위치를 드러나게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적표는 주요국가 중 가장 좋았으며, 올해 들어 수출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총회는 한국을 역사상 최초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격상시켰다. 또한 2020년 아카데미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 등 수상에 이어 2021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윤여정 배우가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으며, BTS가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하며 달라진 한국문화의 위상을 보여주었다. 각각의 분야가 어려움 속에서도 성과를 거두고 있으나, 안타깝게도 남북관계는 코로나19 유행 이후 전망이 더욱 불투명해진 상태다.

2003년 10월 평양류경정주영체육관 개관식에 참석한 변상욱 건축사 / 변상욱 제공

2003년 10월 평양류경정주영체육관 개관식에 참석한 변상욱 건축사 / 변상욱 제공

일회성 사업에 그친 과거 교류 건설 분야에서 북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진 시기는 1990년대 중반이었으며, 이러한 관심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것이었다. 1990년 독일 정부는 통일 후 동독지역의 인프라 및 주택건설을 위한 대규모 투자를 했다. 또한 통일을 위해 소련의 동의가 필요했으므로 독일 정부는 1989년부터 1993년까지 소련에 437억8000만달러(추정치)에 달하는 대규모 경제지원(Checkbook Diplomacy)을 했다. 이 자금으로 건설되는 아파트 공사 4건을 유원건설과 삼성건설이 수주했다.

1990년 9월에는 일본의 정치적 실세인 가네마루 신 자민당 부총재가 평양을 방문해 일제 식민지배보상금으로 100억달러를 지불하기로 합의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유엔개발계획(UNDP)은 북·중·러 접경지대인 두만강 유역에 초국경도시를 개발하는 두만강개발계획(TRADP)을 발표하기도 했다. 건설업계는 남북통일이 되지 않더라도 일본배상금에 의한 북한지역 인프라건설 및 개발사업으로 대규모 건설시장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됐다.

실제로 1994년 북미 간의 제네바합의에 의해 40억달러 규모의 경수로지원사업(KEDO)이 추진돼 현대, 대우, 동아건설 등 대형 건설사가 참여했다. 1998년 금강산관광이 시작된 후 남북건설협력사업은 본격화됐다. 남북도로·철도연결, 개성공단 등 대규모 사업도 추진됐지만, 규모가 작고 일회성 사업에 그친 것이 대부분으로 건설업계의 기대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다.

남북관계 고려된 신도시 개발 건설 측면에서 남북교류는 북한에서의 건설사업보다 경기도 북부 등 남북접경지역 개발에 미친 영향이 더 컸다. 경기 북부 접경지역은 안보를 이유로 오랫동안 개발에 제약이 있었다. 1988년 7·7선언 후 남북교류에 대비해 북한에 가까운 지역인 일산이 신도시로 개발됐다. 현재 일산은 접적지역(적과 마주치는 지역)이라는 의식이 없지만, 신도시로 지정 전까지 공장, 학교 등을 이전해 인구 밀집을 방지하는 이전촉진지역이었다.

일산은 당초 1기 신도시 대상지역이 아니었다. 신도시 후보지로 박정희 시대부터 검토됐던 분당, 산본, 중동, 평촌 등이 검토됐으나, 남북관계 개선을 고려해 일산을 신도시로 지정했다. 일산 개발에 남북관계가 고려됐다는 것은 개발목표에 ‘남북통일의 전진기지’라는 표현이 포함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일산신도시 준공 후 접경지역개발은 한동안 정체됐지만, 남북경제협력이 본격화되는 2000년 이후 경기도 파주는 개발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한국경제 도약 위해선 필수 남북경협은 2016년 개성공단이 중단되면서 거의 25년 만에 완전히 단절됐다. 현재도 남북관계 전망은 불투명하다. 그러나 어려운 한국경제의 새로운 도약과 안보 위험 해소를 위해 남북관계 개선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최근 코로나19 유행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는 반도체, 2차 배터리, 조선 등이 선전하고 있으며, 올해 구매력 기준 1일당 국민소득(PPP)은 일본을 앞섰다. 그러나 이는 한국경제가 다른 나라에 비해 좋다는 의미일 뿐, 여전히 청년 실업률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잠재 경제성장률도 점차 떨어지는 등 경제적 어려움은 계속되고 있다.

평양류경호텔을 배경으로 북측 안내원과 함께 찍은 사진. 안내원은 2004년부터 개성공단 북한식당(봉동관) 봉사원으로 일했다. / 변상욱 제공

평양류경호텔을 배경으로 북측 안내원과 함께 찍은 사진. 안내원은 2004년부터 개성공단 북한식당(봉동관) 봉사원으로 일했다. / 변상욱 제공

한국경제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북한과의 교류, 협력이 필수적이다. 또한 남북교류는 북한과 경제협력만이 아니라 국내 육상교통을 대륙과 연결해 섬나라와 같은 지리적 약점을 극복하고 인구가 1억명에 달하는 중국 동북지방과 경제공동체를 만드는 토대가 될 수도 있다.

그간 남북경협은 상호이해와 신뢰가 부족한 상황에서 추진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초보적인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남북경협은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방법으로 추진됐으며, 개성공단사업과 같은 개발사업은 성공적이었다. 남북경공업자재 및 지하자원개발협력사업, 남북철도, 도로연결사업 등도 실효성 및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남북교류가 상호이익이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으며, 북한은 최근까지 경제개발구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등 외국인투자유치에 적극적이다. 그러므로 남북경협이 재개되는 경우 남북당국의 지원과 교류협력의 경험을 활용하면 이전과 비교해 규모와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경협사업 추진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재를 마치며 12회에 걸친 남북건설협력에 대한 연재를 마쳤다. 남북경협사업이 1980년대 말부터 시작돼 30년 이상 진행됐음에도 내용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연재를 통해 1990년대의 경수로지원사업(KEDO)부터 2000년대의 금강산관광, 종교 및 남북의료협력사업 시 진행된 주요 남북건설협력사업을 정리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그동안의 성과, 어려움 그리고 시행착오를 돌아보는 계기도 됐다.

자료를 정리하면서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사진들을 찾아낸 것도 성과라고 생각된다. 아쉬움도 있다. 대우남포공단, 평양과기대, 개성공단, 조용기심장병원 등은 자료가 부족하거나 정보를 공개하기 어려워 다루지 못했다. 또한 지면이 한정돼 내용을 제한적으로 다룰 수밖에 없었던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다시 보는 남북건설협력’이 향후 전개될 남북건설협력사업에 작은 도움이라도 됐으면 좋겠다.

<변상욱 건축사 정리·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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