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카탈린 카리코와 한국의 교수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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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차별을 받는 외국인들 범주에 재외동포들이 속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만 해도 ‘민족’ 같은 용어들은 널리 쓰이고 있었지만, 정작 해외 한민족들이야말로 실은 국내에서 찬밥 신세가 되기 쉬웠던 것이다.”(박노자)

카탈린 카리코는 mRNA 백신의 핵심기술을 발견한 과학자다. 화이자의 백신이 유명해지면서 카리코의 이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AFP연합뉴스

카탈린 카리코는 mRNA 백신의 핵심기술을 발견한 과학자다. 화이자의 백신이 유명해지면서 카리코의 이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AFP연합뉴스

다음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예측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유전체 편집도구 CRISPR/Cas9의 노벨상 수상은 오래전부터 예측됐지만, 언제가 될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올해 10월, 노벨화학상 혹은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는 반드시 카탈린 카리코가 될 것이다. 이 예측이 틀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는 mRNA 백신의 핵심기술을 발견한 과학자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비밀주의로 일관하던 스웨덴 노벨위원회조차 카리코 박사에게 올해 노벨상을 주지 않을 도리는 없다. 그가 받지 못한다면 노벨상은 무의미한 상으로 퇴출될 것이기 때문이다.

카리코는 현재 바이온엔테크사의 부대표다. 힘들게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조교수가 됐지만, 연구비 부족으로 연구원으로 직위를 강등당하면서까지 그는 ‘핵산의 변형과 세포의 반응’이라는 단 하나의 우물을 팠다. 대학에서 강등당하던 날, 그의 남편은 비자 문제로 헝가리로 떠났다. 그들은 6개월간 생이별을 했고, 카리코는 암에 걸렸다. 2005년 그가 와이스만 교수와 발표한 논문은 이런 역경을 딛고 출판된 기적과 같은 결실이다.

이민자의 과학

화이자의 백신이 유명해지자 카리코의 이력에 관심을 갖는 언론이 늘어났다. 잘 알려진 대로 그는 헝가리 출신의 이민자다. 게다가 미국 박사도 아니다. 그는 헝가리 세게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박사후연구원으로 3년을 더 헝가리에 머물다 도미했다. 한국으로 따지면 결코 국내대학 교수가 될 수 없는 비루한 출신의 과학자인 셈이다. 한국 명문대 교수의 대부분이 미국이나 유럽 박사 출신이라는 건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국내 명문대 출신 유학생들은 대부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교수가 되려 한다. 카리코는 국내 명문대학 교수들이 보여주는 규칙에서 모두 벗어나 있다.

화이자라는 거대 제약사에게 엄청난 이익을 안겨주고 있는 mRNA 백신에 언론이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언론은 백신 개발의 주역들 사이에서 한가지 공통점을 발견한다. 그들 모두가 이민자 출신이라는 것이다. 바이오엔테크사는 터키계 독일 이민자 우구르 사힌과 외즐렘 튀레지 2명의 과학자에 의해 설립됐다. 이들은 화이자와 협력해 코로나19 mRNA 백신 개발에 성공했고, 세계 500대 부자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이 실험실 가운을 입고 결혼식을 올렸고, 결혼식 당일에도 실험실로 달려간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전 세계 연구실 어디에서나 밤새워 연구하는 이민자 출신 과학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타향에서 연구하는 그들에게 연구란 즐거움이기도 하지만 생존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모더나사의 백신 개발 리더는 키즈메키아 코벳으로 35세의 흑인 여성이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미국 과학계는 대부분 백인 남성이 장악하고 있으며, 여성의 비율이 높아진다고 해도 백인이 주류다. 코벳은 암묵적으로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만연한 미국 과학계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흑인 여성 과학자다. 하지만 적어도 미국의 과학자사회는 구조적인 인종차별을 인정하고 이를 수정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3월 미 국립보건원의 수장 프랜시스 콜린스는 ‘UNITE 이니셔티브’를 설립해 다양성·형평성·포용성을 지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선언했으며, 그동안의 구조적 차별에 대해 사과했다.

미국의 과학계는 외국인 연구자 없이는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는 구조다. 예를 들어 하버드대학이 밝힌 외국인 교원의 비율은 무려 38%다. 2012년 발표된 ‘미국 대학의 외국인 교원’이라는 논문은 분야에 따라 미국인 대 외국인 교원의 비율을 적시하고 있다. 이 통계에 따르면 외국인 교원 비율이 가장 낮은 교육학 분야는 8.9%이고, 가장 높은 공학과 컴퓨터 분야는 무려 42.6%에 이른다. 예술과 인문사회과학 분야보다 과학기술 분야의 외국인 비율이 훨씬 높다.

더 놀라운 사실은 1986년 미 국립연구재단이 발표한 외국인 교원 비율에서 발견할 수 있다. 1986년 당시 이미 미국의 컴퓨터 분야 외국인 교원의 비율은 20%를 상회했고, 대부분의 과학기술 분야에서 쉽게 10% 이상의 외국인 교수를 발견할 수 있다. 즉 현재 미국의 과학기술계가 세계 최고의 수준을 구가할 수 있는 이면에는 인재들의 용광로로 기능했던 미국 대학과 이들을 다시 흡수했던 미국의 기업들이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 과학계의 순혈주의와 발전의 지체

국내대학의 외국인 교원 비율은 5%가 채 되지 않는다. 서울대조차 겨우 5%대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마저도 대학평가가 아니었으면 유지되지 않았을 숫자다. 게다가 대부분의 대학은 무늬만 외국인인 한국계 재미교포를 교수로 임명했다. 2017년 조사에 따르면, 전국 41개 국공립대 외국인 교수 가운데 절반이 한국계 외국인이었다. 교육부와 전문가들은 분명 대학교수진의 국제적 다양성이 대학경쟁력을 위한 핵심 요인이라는 점을 알고 있는데, 한국 대학은 애써 그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뜻이다.

코로나19 백신 개발과 미국의 통계가 알려주는 사실은 과학기술 분야야말로 외국인 충원을 통한 다양성이 곧 국제적 경쟁력으로 귀결된다는 교훈이다. 과학기술은 태생적으로 국제적이다. 보편적인 지식과 응용을 다루기 때문이다. 지역적 특수성이 중요한 예술 및 인문학과는 달리, 과학기술은 국제적 감각으로 운영하지 않으면 반드시 세계적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물론 여러 변명거리가 있겠지만, 한국사회가 외국인 과학자를 동료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과학은 한국사회에 자리를 잡았지만, 과학계는 지나친 순혈주의에 빠져 국제적 감각을 잃고 말았다.

일본과 중국 역시 대부분 내국인 교수를 채용한다고 항변할지 모른다. 하지만 서구의 과학기술을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무려 300년이 넘게 서구와 경쟁해온 일본과 엄청난 국가적 자본과 지도자의 의지로 과학기술경쟁력에 목숨을 건 중국을 한국의 사정과 비교할 수는 없다. 게다가 동아시아 3국 모두 과학기술의 초기발전사는 국제적 감각을 갖춘 이들에 의해 주도됐다. 문제는 한국이다. 한국 과학은 어느 순간 질적 도약을 멈췄다. 과학생태계를 국제적으로 만드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다. 답은 가까운 곳에 있다.

<김우재 낯선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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