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위선양 너머 스포츠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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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던 2020 도쿄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1년 연기 후 결국 무산될 것으로 점쳤지만, 걸린 게 많은 IOC와 일본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결국 관중 없이 치러졌다. 코로나19 비상사태가 확산됐음에도 큰 사건사고는 없었지만, 일본의 정치적 편의를 봐준 것인지 히로시마 피폭 헌화나 욱일기 도안 은근슬쩍 사용 등 ‘정치와의 분리’ 약속은 상당 부분 훼손됐다. 폐막식의 아이누 전통음악 연출도 러시아와 북방영토 문제 환기가 아니냐는 논란을 낳았다. 반면 군부 쿠데타가 진행 중인 미얀마의 민주화와 인권은 언급되지 못했다. 올림픽이 출발 정신보다는 강대국의 국위 과시와 스폰서 이해관계에 더 충실하다는 자조가 확인된 셈이다.

<로레나, 샌들의 마라토너> 넷플릭스

<로레나, 샌들의 마라토너> 넷플릭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과도한 국가주의, 속칭 ‘국뽕’ 자극에 활용된다는 비판을 들어온 한국의 올림픽 열풍은 이번에는 달랐다. 순위 경쟁보다는 젊은 선수들의 노력과 열정, 인간승리에 박수를 보냈고 아쉬운 패배에도 호응이 인색하지 않았다. 시청률 지상주의에 매몰된 동시에 준비가 부족했던 모 방송사 개막식 중계 논란은 오히려 지구촌 상식을 넓히는 계기로 작용했고, 이번 올림픽 여자배구 8강에서 맞붙은 터키 산불재해 관련 묘목 기부 캠페인은 흐뭇한 풍경을 연출했다. 윗선은 몰라도 국민 대부분의 인식은 이제 합리적 근대에 도달한 셈이다.

넷플릭스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단편 다큐멘터리 중에는 국가주의나 상업성에 얽매이지 않는 스포츠 소재 작품이 적지 않다. <로레나, 샌들의 마라토너>는 멕시코 치와와주 울창한 숲속에 사는 원주민 소녀 로레나와 그 가족 이야기다. 온 가족이 육상선수인 로레나는 자국은 물론 해외에도 알려진 익스트림 마라토너다. 수백㎞ 산길 완주 코스를 그는 전통의상 치마 차림에 샌들을 신고 달린다. 정상급 선수이기에 러닝화 스폰서가 붙지만 로레나는 맨발에 샌들이 오히려 편하다며 신지 않는다. 시합이 끝나면 그는 고향의 계곡과 언덕을 뛰며 자급자족하는 전통적 삶에 흠뻑 빠진다. 달리기란 로레나와 가족에겐 자아실현의 일부일 뿐이다.

<작전명 서핑>은 퇴역군인들이 치유 프로그램으로 서핑을 배우는 과정을 담는다. 지난 20년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전쟁 사상자는 수치로는 과거 베트남전쟁에 비해 적지만 후유증은 그를 능가한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인한 이혼이나 사건사고가 엄청나 큰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다. 군부대가 있는 도시는 부동산 가격이 폭락할 정도다. 상이군인들이 중력에서 자유로운 서핑에 도전하는 순간만큼은 일상을 옥죄던 피해의식에서 해방된다. 비장애인보다 몇 배 더 힘든 과정이기에 부정적 생각에 빠질 틈이 없다. 스포츠의 순기능이 엘리트 체육이 아니라 장애인 재활에서 발견되는 순간이다.

도쿄올림픽은 끝났지만 8월 24일부터 패럴림픽이 열린다. 올림픽 폐막식 생중계 중 KBS 아나운서가 ‘비장애인 올림픽의 종료’를 언급할 만큼 더딘 것 같지만 우리 사회 의식 수준은 올라가고 있다. 올림픽에 대한 논란은 현재진행형이지만 스포츠 정신의 순기능과 감동만은 여전히 ‘살아 있다’.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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