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촛불 하나라도 켜는 것이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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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네요. 제가 죽어야 이 문제가 해결될까요?” 심각한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분들이 공통으로 던지는 한마디입니다. 일단 노동법에 따라 회사에 신고해 보자고 권합니다.

네이버 노동조합 회원들이 지난 6월 7일 스스로를 비관하며 목숨을 끊은 동료의 죽음을 애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네이버 노동조합 회원들이 지난 6월 7일 스스로를 비관하며 목숨을 끊은 동료의 죽음을 애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회사의 조치 의무 강화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노동자는 회사에 신고해야 합니다. 사장이 괴롭힘을 가해도 회사에 신고해야 합니다. 그런데 신고 당사자를 조사하지도 않고 형식적으로만 조사를 끝내버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회사가 직장 내 괴롭힘 조사, 판정, 조치에 대처하는 방법은 천차만별입니다. 조사는 경찰·검찰에서 하는 수사와 비슷합니다. 조사자의 경험과 능력, 교육에 따라 조사의 과정과 결과가 매우 달라집니다. 2021년 10월 14일부터 당사자 조사 의무, 객관적 조사 의무가 명시됐습니다. 회사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있으면 ‘당사자 등에게’, ‘객관적으로’ 조사해야 합니다.

사용자가 조치 의무(조사, 피해 노동자 보호, 가해 노동자 징계 등)를 이행하지 않거나, 비밀유지 의무 위반(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는 경우)하는 경우 역시 과태료 대상으로 바뀌었습니다. 개정법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사용자가 객관적 조사, 피해자 보호, 가해자 조치, 비밀누설 금지 등 조치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합니다.

직원이 신고했다는 이유로 직원에 대해 불이익한 조치(예를 들면, 해고)를 하면 사장이 근로기준법 규정에 따라 징역형으로 형사처벌되는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청주지방법원 충주지원은 2021년 초, 괴롭힘을 신고한 직원에게 “자식도 벼락 맞아라, 눈알들이 다 빠져라” 하면서 신고자 신상을 공개하고 결국 신고자를 해고한 사장에게 처음으로 유죄판결(기사에 의하면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보호관찰 및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했습니다.

근로기준법에는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를 처벌하는 규정이 없습니다. 피해자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모욕, 폭행을 당하면 직접 민·형사상 조치는 별론으로 하고, 회사가 가해자에 대해 징계할 수 있습니다. 다만 2021년 10월 14일부터 사용자(사용자의 가족 포함)가 직장 내 괴롭힘을 한 경우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법이 개정됐습니다.

2019년 7월부터 2021년 6월 말까지 2년간 전체 직장 내 괴롭힘 신고사건(1만134건) 중 검찰에 송치되는 비율은 약 0.9%(102건)에 불과했습니다(고용노동부 자료). 다만 “피고인의 노동자에 대한 낮은 수준의 인식은 언제든지 또 다른 가해자를 용인할 것”을 염려하고 “피고인에게 노동의 의미를 일깨우기 위해” 사회봉사를 부과한다는 최근의 법원 판결에 비춰봐도 새로 만들어진 제도에 맞춰 사회가 조금씩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부장검사로부터 모욕·폭행, 결재서류 찢어 던지기, 술자리 술 시중 강요 등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극단적 선택을 했던 고(故) 김홍영 검사사건도 중요합니다. 단순 모욕과 폭행으로 가해자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이 선고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판결입니다(기존에는 처벌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21년 7월 6일 “우리 사회에서 폭언과 폭력이 지도와 감독의 수단이 될 수 없음은 명백하다”고 판결했습니다(2020고단7281).

방치법에서 방지법으로

결론적으로 많은 회사가 괴롭힘 신고에 대해 여러 상황을 고려해 “직장 내 괴롭힘은 아니다. 다만 분쟁이 있으니 당사자 간에 분리조치를 한다”는 결론을 냅니다. 이때 노동자는 노동청을 찾아갑니다. 그러면 노동청에서도 대부분 같은 결론인데, 근로감독관과 아래와 같은 대화를 했습니다.

근로감독관 이번에 직장 내 괴롭힘 관련, 회사에 행정 지도문을 보냈습니다.

노동자 회사에서는 인정되지 않더라도 노동청에서 객관적으로 조사해 인정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감독관 현행법상 회사의 조치가 위법이거나 명백히 불합리하지 않으면 노동청이 개입하지는 않습니다.

노동자 명백히 불합리한 기준이 무엇입니까?

감독관 아직 명확한 판례가 있지 않습니다만, 조사를 안 한 것과 다름없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노동자 그렇다면, 저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감독관 ….

많은 피해자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에 많은 기대를 걸었지만, 정작 신고를 해보니 바라던 결과를 얻기 어려웠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방치법’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습니다(경향신문 2020년 6월 28일자 “근로감독관들이 오히려 ‘갑질’…‘괴롭힘 방치’로 2차 피해 많다”). 직장 내 괴롭힘만으로 특별근로감독도 이루어지는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올해 5월 25일, IT기업 네이버에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40대 직원이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습니다(한해 약 400명 이상의 노동자가 과로·직장 내 괴롭힘으로 자살한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이 개시돼 한달 넘는 기간 동안 근로감독을 하였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자에 대한 불리한 처우, 임금체불, 임산부 보호 위반 등 노동 관계법 위반사항은 사건 일체를 검찰로 송치하고 과태료 부과 처분도 했습니다. 참고로 설문에 응한 직원 절반 이상(52.7%)이 최근 6개월 동안 한차례 이상 직장 내 괴롭힘을 겪었다고 응답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제정(2019년 7월) 이후 전국의 각 회사에서 첫 신고와 조사, 첫 결과를 진행했습니다. 사건이 누적돼 선례가 만들어져 무엇이 직장 내 괴롭힘인지 비로소 실체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많은 회사가, 상사들이, 집단이, 사용자가, 노동자들이 법을 인식하고 사건으로 발전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모습도 발견됩니다. 법 시행 이전에는 절차가 없어 법률적 보호를 받지 못했는데, 법 제정으로 신고 절차가 생기고 이번에는 제재조항이 부가됐습니다. 다음번 개정에는 살아 있는 선례들이 반영돼 실질적인 ‘방지법’에 조금 더 가까워져야 할 것입니다. 어둠을 탓하기보다는 촛불 하나라도 켜는 것이 낫습니다.

한용현 변호사는 실전에서 대신 싸우는 일을 한다. 수년간 ‘사측’에서 각종 노동분쟁을 대리해 왔다. 지금은 노사를 막론하고 ‘정당한’ 노동법을 발견하고 실현하려 애쓴다. 대한변호사협회의 노동법 전문 변호사 인증을 받았다.

<한용현 법률사무소 해내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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