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수준에 걸맞게 직접민주주의 꽃피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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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서독에 간 우리 간호사들 125명 중 17명은 1977년 체류 연장을 거부당해 강제송환됐다. 1973년 석유 파동을 계기로 경제불황을 맞이하자 서독 정부가 외국인 간호사의 체류 연장을 거부했던 것이다. 분노한 우리 간호사들은 ‘간호사 송환반대 서명운동’을 했다. 그 이유는 ‘1만명의 서명을 얻으면 연방의회 안건으로 올라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우리는 필요할 때 데려왔다 필요 없어지면 버리는 물건이 아니다. 우리는 인간이다. 올 때는 당신들이 불러서 왔지만, 우리는 우리가 살고 싶은 곳에서 살 것이고 돌아가고 싶을 때 돌아가겠다”고 주장했다. 결국 장기체류 허가와 영주권 취득이라는 성과를 얻어냈다.

1960년대 서독에 간 우리 간호사들은 독일 정부의 체류 연장 거부에 맞서 ‘간호사 송환반대 서명운동’을 했다. 1만명의 서명을 얻어 장기체류 허가와 영주권 취득이라는 성과를 얻어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1960년대 서독에 간 우리 간호사들은 독일 정부의 체류 연장 거부에 맞서 ‘간호사 송환반대 서명운동’을 했다. 1만명의 서명을 얻어 장기체류 허가와 영주권 취득이라는 성과를 얻어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참 다행이다’는 안도감을 느낀다. 그리고 동시에 생소함도 느낀다. 그것은 우리 민주주의에 결핍된 직접민주주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의 설명은 독일법상 ‘연방의회’가 아니라 ‘주 의회’ 또는 ‘자치단체 의회’ 안건으로 상정됐던 것이 아닐까 싶기는 한데, 중요한 것은 시민이 서명운동을 해서 겨우 1만명의 서명을 얻으면 의회의 안건이 된다는 것이다. 곧바로 주민투표에 회부되지 않고 의회의 안건이 된다는 것은 간접발안제도임을 의미한다. 의회의 안건이 된 후 의회가 해당 발안과 다른 의결을 하거나 해당 발안을 의결하지 않은 경우에는 해당 발안을 직접 주민투표에 부칠 수 있게 된다.

반면 우리의 주민투표법은 지방자치단체에 관한 사항만 허용될 뿐인데도, 무려 주민투표청구권자 총수의 5~20%의 범위에서 조례로 정하는 수 이상의 서명을 요구한다. 독일의 지방자치단체 서명 요구 수준인 2~10%와 비교했을 때 매우 높다.

그리고 지방의회의 안건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주민투표에 회부되는 직접발안제도로 규정돼 있다. 전체 투표수가 주민투표권자 총수의 3분의 1에 미달될 때는 개표를 하지 않고, 주민투표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의 투표와 유효투표수 과반수의 투표로 확정된다. 이 숫자 또한 매우 높은 허들로 기능하는데, 그 유명한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의 경우에도 개표되지 못했다.

독일의 경우는 위와 같은 요건이 아예 없고 단지 찬성정족수만 있다. 찬성정족수란 찬성자가 다수인 경우 찬성자가 정해진 유권자 비율 이상이어야 한다는 규정으로, 그 유권자 비율은 8~25% 정도다. 함부르크에서는 찬성정족수도 필요하지 않고 투표자의 다수결로만 결정한다. 개표하지 않는 경우도 없다.

독일제도와 비교해보면, 우리 주민투표제도를 이용하는 데에 드는 노력과 시간에 비해 결과를 얻기는 매우 어렵고, 그 결과도 대단할 것이 없다. 우리 주민투표제도였다면 ‘간호사 송환반대 서명운동’은 도저히 성공할 수 없었다. 독일은 자치단체의 주민투표가 수천건 실시됐다. 물론 스위스는 그보다 직접민주주의가 더 활성화돼 있다. 그러나 우리의 주민투표 실시사례는 10여건에 불과하다. 이것은 제도 설계가 처음부터 그렇게 됐기 때문이다. 유명무실한 형식적 권리보장, 장식적 제도 도입의 전형적인 예라고 하겠다.

정부와 국회는 세계 제일의 우리 국민 수준에 걸맞은 자유와 권리 그리고 직접민주주의를 제공해야 한다.

김윤우는 서울중앙지법·의정부지법 판사, 아시아신탁 준법감시인을 역임했다. 지금은 법무법인 유준의 구성원 변호사이고, 중소기업진흥공단 법인회생 컨설턴트 등으로 활동 중이다.

<김윤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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