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완-백조와 흑조로 나눌 수 없는 인간의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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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미스터리에서 선과 악이 분리된 개념이 아니라는 가치관은 가장 주요한 기조 중 하나다. 어떤 인간이든 선한 면과 악한 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종종 선인과 악인을 양분하고 선의와 악의를 정확히 재단하려 한다. 그렇기에 범죄라는 반사회적 행위이자 비일상적 상황과 맞닥뜨렸을 때 인간의 복잡다단한 면은 실로 극대화된다. 특히 진실을 유예하는 미스터리 장르의 특성상 이런 인간의 본질은 사건의 진실로 수렴되면서 곧 작품의 메시지와도 상통하게 마련이다.

<스완>(오승호 지음) / 블루홀식스

<스완>(오승호 지음) / 블루홀식스

재일교포 3세 오승호(고 가쓰히로) 작가의 미스터리소설 <스완>은 대형 쇼핑몰 ‘스완’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과 그 이면의 이야기를 다룬다. 3D 프린터로 자체 제작한 권총을 들고 스완에 난입해 입장객에게 무차별 난사하던 2인조는 많은 사상자를 낸 후 곧바로 자살한다. 사망자 21명, 부상자 17명이라는 피해도 피해지만 범죄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탓에 처벌받은 이가 없어 살아남은 자들의 상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여고생 이즈미만 하더라도 범인의 최후를 목도한 가장 가까운 피해자지만 세상은 그마저도 가만두지 않는다. 당시 같은 자리에 있었던 동급생 고즈에가 범인이 이즈미로 하여금 다음 사살 대상을 지목하게 했다는 사실을 폭로하면서 곧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년 후, 사건 당시 어느 노인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밝히기 위한 생존자들 간의 모임이 마련된다. 이에 5명의 생존자는 그날을 상기하며 다시 한 번 자신의 상처를 더듬는다.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재구성된 사건의 진상은 각자의 입장과 이해에 좌우되는 다분히 가공된 정보에 가깝다. 작은 치부를 숨기고자 교묘히 거짓말을 섞는가 하면, 잔인한 악행이 반드시 태생부터 비뚤어진 악인의 전유물이란 법도 없다. 인간의 욕망과 악의는 너무나도 단순하고 보잘것없기에 오히려 측은한 마음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생존자 각자의 기억과 범인들이 생방송 녹화로 남긴 영상을 토대로 재구성한 그날의 진실 역시 그래서 더 기묘하다. 줄곧 스카이라운지에서 종업원에게 항의하던 노인이 죽은 것은 1층 엘리베이터 앞이다. 사례금에 혹해 모인 생존자들은 갈수록 서로를 비난하고, 모임의 주최자가 원하는 진실이 정말로 노인의 죽음인지조차 점점 의심스럽다. 게다가 이즈미의 ‘악행’을 고발했던 고즈에는 실은 평소 이즈미를 괴롭혔던 왕따 주동자다. 이런 실상을 고백한다면 이즈미는 여론의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테지만, 비밀을 밝히는 순간 그날의 진상이 왜곡될 것 같아 쉽게 입을 열지 못한다. 사실 그냥 범인이 나빴을 뿐이지만 이상하게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여전히 선악을 가리려 한다. 마치 모두가 비난의 대상을 찾아 저마다의 가책에서 벗어나려는 듯 말이다.

총 네 차례로 예정된 모임이 진행됨에 따라 진실은 이즈미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차츰 의외의 진상이 수면 위로 드러난다. 동시에 발레리나인 이즈미가 <백조의 호수>의 ‘흑조’ 오딜 역을 동경하는 그대로 피해자들 각각이 지닌 죄책감과 모종의 음모는 선악이 뒤섞인 인간이란 복잡한 존재의 속내를 속속들이 파헤친다. 결말부에 드러나는 충격적인 진실은 의외로 간명하지만, 결코 백조와 흑조로 나눌 수 없는 인간의 모순은 그래서 더더욱 오래 기억될 만하다.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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