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견무사와 고양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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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무림에 녹여낸 ‘반려동물무협’

하세 세이슈에게 2020년 나오키상을 안긴 <소년과 개>는 주인 잃은 개의 여정에 다채로운 인간 군상의 드라마를 엮어낸 소설이다. 그간 국내에서는 도쿄 가부키초의 중국계 갱 간 쟁투를 다룬 <불야성> 시리즈로 알려진 작가인 만큼 다소 의외의 작품으로 다가올 법도 하다. 더욱이 시종 담담하게 떠돌이개 다몬의 곁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조망하는 시선에는 굽이치는 각각의 인생 역정만이 아니라 작은 감동마저 담아내고 있어 한층 새롭게 느껴진다. 물론 개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독자도 느끼길 바란다는 작가의 말까지 들여다본다면 그 의도와 의미는 더욱 선명해진다. 그만큼 <소년과 개>는 개를 의인화하지 않은 채 대지진의 여파 속에 살아가는 여러 인물의 생을 한순간이나마 위무하는 존재로서 반려동물의 정체를 분명히 한다.

「애견무사와 고양이 눈」(좌백, 진산 지음) 표지 / 황금가지 제공

「애견무사와 고양이 눈」(좌백, 진산 지음) 표지 / 황금가지 제공

<소년과 개>가 반려동물의 함의 그대로 독자의 몸쪽에 꽉 찬 직구를 꽂아 넣는 작품이라면, <애견무사와 고양이 눈>은 독자의 노림수를 완벽히 비껴가는 변화구로 더욱 눈길을 끈다. 한국의 대표적인 무협 작가이자 부부 소설가인 좌백과 진산이 각각 개와 고양이를 소재로 집필한 6편의 단편소설은 ‘반려동물무협’이라는 농담 같은 아이디어를 정말로 하나둘 구체화한다. 실제로 집필 계기를 위트 있게 압축한 두 작가의 대화를 매 작품 서두에 배치해 소설의 단초라는 게 실은 별것 아니였다는 식의 변명을 늘어놓기도 한다. 물론 이를 무협세계에 그럴듯하게 녹여내고 단편이라는 형식에 더없이 걸맞은 방식으로 구현함으로써 이 변명은 곧 훌륭한 너스레가 된다.

표제작 중 하나인 <애견무사>는 “동물무협이라 하면 동물이 주연이거나 말을 하는 내용이어야지”라는 진산의 다그침에 “그럼 그렇게 한번 써볼까?” 하고 좌백이 화답한 작품이다. 막 강호에 나온 철부지 무인 나현이 도사와 만나 요마, 귀신, 강시를 쫓는 전기(傳奇) 무협으로, 호기롭게 집을 나선 젊은 기개와는 별개로 아버지가 반려견과 동반하기를 명령하면서 어쩐지 ‘동물무협’의 최소 조건만을 겨우 충족한 듯 보인다. 하지만 이내 겁쟁이 나현과 본디 견신이던 반려견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거의 매 순간 웃음으로 눙치는 독특한 축귀 이야기가 완성된다. 또 다른 표제작인 <고양이 눈>은 고양이 특유의 도도한 시선과 이를 마냥 어여삐 바라보는 인간의 동거가 그 핵심이다. 견신에 쫓겨 고양이 몸에 현현한 고양이 요괴는 산골에 은거하는 무사와 그 가족의 삶을 내내 오만하고 퉁명스럽게 관찰하다 결국 무심한 척 마음을 내준다. 고양이다워 사랑스럽고 고양이답기에 더더욱 생소한 무협담이다.

장르소설 중에서도 유독 무협소설은 타깃 독자가 기존 무협팬에 한정된 것처럼 여겨지기 십상이다. 실제로 무협 용어나 배경을 알아야 한다는 점이 어느 정도 장벽이 된 것도 사실이다. 반면 <애견무사와 고양이 눈>은 생소한 개념에 세세한 해설을 더하고 동시에 이를 재미있는 서사로 수렴하면서 손쉽게 장벽을 허문다. 더불어 무협소설의 클리셰를 대놓고 언급하면서 기존 무협팬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건네는 것을 잊지 않는다. 여기에 개와 고양이의 친숙한 이미지를 그대로 강호무림에 적용함으로써 생경한 조합 이상의 특별한 작품을 줄줄이 건져 올린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조금 거들 뿐 무협의 다채로운 면면과 단편의 재미까지 고루 아우른, 그야말로 숙련된 작가의 각별한 기획품이다.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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