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스페이스 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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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상상력과 SF적 상상력의 차이

과학과 SF는 상상력에 크게 의존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과학적 상상력이 검증을 위한 사색이라면 SF적 상상력은 그 사색에 내포된 가능성을 한층 더 확장한다는 차이가 있다. 즉 후자는 전자만으로는 미진한 허전함을 채워준다. 대체 어떤 식으로? ‘우주에서 생명의 생존’이란 주제에 한정해 살펴보자.

아서 C. 클라크의 <2010 스페이스 오디세이> 표지 / 황금가지 제공, 이언 뱅크스의 ‘컬처 시리즈’ 첫편인 <플레바스를 생각하라> 표지 / 열린책들 제공, 영화 <13층>의 포스터. 조세프 루스낵 감독의 1999년 작품이다. / ‘네이버 영화’ 갈무리(사진 왼쪽부터)

아서 C. 클라크의 <2010 스페이스 오디세이> 표지 / 황금가지 제공, 이언 뱅크스의 ‘컬처 시리즈’ 첫편인 <플레바스를 생각하라> 표지 / 열린책들 제공, 영화 <13층>의 포스터. 조세프 루스낵 감독의 1999년 작품이다. / ‘네이버 영화’ 갈무리(사진 왼쪽부터)

이론물리학자 폴 데이비스는 항성 간 여행에 적합한 지적 존재는 우리 같은 유기체가 아니라 기계(인공지능과 결합한)라고 보았다. NASA 계산에 따르면,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 항성계 프록시마 센타우리까지 보이저1호가 현재 비행 속도(초속 17.3㎞)로 도달하는 데 약 7만3000년이 걸린다. 꿈의 워프 엔진이 발명되지 않는 한 로켓추진 방식을 아무리 개량해봤자 항성 간 탐사는 아주 오랜 기간을 요할 수밖에 없으니 인간이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냉동인간이란 대안은 한군데 정착이라면 모를까 우주를 탐사하기엔 적당치 않다. 그래서 컷 보네것의 과학소설들에 단골로 등장하는 초장수 외계인 종족 트랄팔마도어인은 자아를 지닌 기계생물이다. 심지어 I. M. 뱅크스의 <컬처 시리즈>와 앤 레키의 <정의 시리즈>에는 아예 우주선 자체가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인격을 지닌 전자생물로 나온다.

기계생물이라면 우리 은하를 정복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생각보다 짧다. 기계는 유기체와 달리 쉽게 자신을 복제할 수 있으니까. 자기복제 기계 개념은 수학자 폰 노이만이 1951년 처음 떠올렸다. 가령 광속의 90% 속도인 반물질 점화방식 우주선으로 은하 전체 식민화에 나선다고 해보자. 과학컨설턴트 마커스 초운의 계산에 따르면 노이만식 AI 우주선의 자가증식 시스템을 채택할 경우 약 2000만년이면 충분하다. 별 하나의 일생에 비하면 이는 찰나에 불과하다. 아서 C. 클라크의 <2010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바로 이 노이만 기계가 무수한 복제들과 함께 목성을 제2의 태양으로 바꿔놓는 현장을 목격한다.

그렇다고 기계만 영생할 자격이 있는 건 아니다. 융통성 있게 접근해보자. 그렉 이건의 <디아스포라>가 힌트다. 여기서 인류 대부분은 자신을 디지털 데이터로 만들어 하드웨어에 저장함으로써 영생을 구가한다. 인간이 영혼을 디지털 데이터로 바꿀 수 있다면 하드웨어(기계)와 융합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 아닐까. 21세기 사이버펑크 소설에서 정신의 디지털화가 야기한 각종 사회변동은 이야기의 기본 틀이 된 지 오래다.

아직 난관이 남았다. 기계와 융합한 생명이 아무리 영생을 거듭한들 오메가 포인트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테니. 오메가 포인트란 우주가 다시 수축을 거듭해 마침내 시공간이 0이 되는 순간이다. 방법은 둘 중 하나다. 그런 악조건에 맞게 신체 구성물질을 바꾸거나 아니면 그리되기 전 다른 평행우주로 탈출하는 길이다. 스티븐 백스터 <질리 시리즈>는 이 두가지를 다 보여준다. ‘포티노 새들’이란 종은 우리처럼 중입자가 아니라 암흑물질로 돼 있어 항성 속을 편안하게 유영하며 ‘질리’ 종족은 포티노 새들에 견디다 못해 은하 규모의 입자가속기를 만들어 다른 우주로 달아난다.

그러나 철학자 닉 보스트롬과 일부 과학자들이 주장하듯 우리 우주가 실재하는 게 아니라 단지 정교한 시뮬레이션에 불과하다면 모든 게 무의미해진다. 영화 <13층>에서처럼 창조주가 전원 스위치를 끄는 순간 종말을 고할 테니.

<고장원 SF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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