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과 예술작품의 또 다른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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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과 예술작품의 만남은 다양한 형태로 변주 중이다. 호텔에서 열리는 아트페어를 총칭하는 호텔 아트페어에서는 주로 갤러리들이 아트페어 주최 측으로부터 객실을 임대해 벽은 물론 침대나 탁자에서 화장실에 이르는 객실의 다양한 공간에 작품이 전시된다. 보통 호텔의 비수기에 3~4개 층을 빌려 진행하는데, 올해는 일본의 ‘아트 오사카’나 홍콩의 ‘아시아 컨템포러리 아트 쇼’ 그리고 우리나라의 ‘아시아 호텔 아트페어’가 개최될 예정이다. 단순히 임대하는 것을 넘어 전시장을 호텔 서비스의 한 축으로 끌어들인 경우도 있다. 인천 파라다이스시티는 아트테인먼트 리조트를 표방하며, 전시장 ‘파라다이스 아트 스페이스’를 중심으로 호텔 로비, 통로 등 리조트 곳곳에 세계적인 예술작품을 설치하고 고객을 맞고 있다. 필자가 큐레이터 레지던시를 했던 중국 상하이의 ‘하우 아트 뮤지엄’ 또한 ‘원홈 아트 호텔’과 직접 연결돼 있어 호텔 투숙객이 외부를 통하지 않고 미술관 전시장에 입장 가능하다.

강원 고성 아트호텔 리메이커의 객실 중 박진흥 작가의 아트룸 ‘쉼’(위)과 오묘초 작가의 아트룸 ‘기이한 긴장’ / 필자 제공

강원 고성 아트호텔 리메이커의 객실 중 박진흥 작가의 아트룸 ‘쉼’(위)과 오묘초 작가의 아트룸 ‘기이한 긴장’ / 필자 제공

동해안 최북단 해변인 강원도 고성군 명파해변에 문을 연 ‘아트호텔 Re:maker(이하 리메이커)’는 아예 한발 더 나아가 객실 자체가 전시장이자 작품이 된 것이 특징이다. 이 호텔은 오래된 숙박시설을 리모델링했는데, 강원문화재단이 ‘DMZ 문화예술 삼매경’이라는 이름 하에 리모델링을 주도했다. ‘리메이커’는 호텔의 객실을 개별 작가(팀)들이 맡아 전시장으로 탈바꿈시켰다는 점에서 새롭다. 보통 호텔에서 예술작품을 만나 볼 수 있는 곳은 객실의 침대 머리맡이거나 로비로 한정돼 있으며, 그나마 회화나 사진 등 평면 작품들에 국한되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곳은 숙박이라는 객실의 기본을 지키면서도 객실의 구성요소 전반에 예술적 요소를 융합시키려 시도했다. 특히 완성된 방에 예술작품을 놓는 방식이 아니라 작품을 설치해가며 방을 완성해가는 방식이었다는 점에서 기존과는 달리 여러 장르의 작품들을 객실에서 경험할 수 있게 했다.

예를 들어 2번 객실인 홍지은 작가의 객실은 ‘조선왕가-again’이라는 제목 하에 실향민을 투숙객으로 상정한 전시장이다. 이 방은 조선왕가의 궁궐을 콘셉트로 하여 방 전체가 목재로 제작됐고 천장도 연등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분단의 불편한 긴장감을 키워드로 삼은 오묘초 작가의 방은 DMZ의 긴장감을 ‘쉼’의 공간인 객실의 기능적 요소에 잘 버무려냈으며, 박진흥 작가는 반대로 ‘쉼’ 그 자체가 극대화된 공간을 객실에 구현했다.

호텔에 머물며 인접한 미술관에 다녀오는 것이 아닌 숙박 그 자체가 전시 관람이자 관객 참여적 예술행위인 리메이커에서의 하룻밤은 특별할 것이 분명하다. 다만 인근 관광지가 통일전망대 외에는 딱히 없고 접근성도 썩 좋지는 않다는 단점을 앞으로 어떻게 극복할지가 관건이다. 재방문을 늘리기 위한 별도의 체험, 투어 프로그램 개발 또한 필요해 보인다. 투숙은 올 7월부터 가능하다.

<정필주 문화예술기획자·예문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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