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젊은 주식 초보자들 증시 상승세 이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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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주식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은 지수를 끌어올리는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폭락한 주식시장에 신규 개인투자자들이 재미있는 애칭을 달고 진입하면서 국가별로 경이로운 주식지수를 만들어내고 있다.

베트남 호찌민시 1군에 있는 호찌민 증권거래소. 건물 앞 곰과 소 조형물이 눈에 띈다. / 유영국 제공

베트남 호찌민시 1군에 있는 호찌민 증권거래소. 건물 앞 곰과 소 조형물이 눈에 띈다. / 유영국 제공

한국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폭락장 속에서 반등의 기회를 노리고 외국인과 기관의 대량 매도세에 반발 매수하는 개인투자자들의 모습이 ‘동학농민운동’ 같다 해 ‘동학개미’라고 부른다. 미국에서는 2008년 모기지 사태로 몰락한 중산층 출신의 젊은 개인투자자들이 무료 증권 거래 앱을 통해 거대 자본에 맞서 투자를 한다고 해서 ‘로빈후드’라고 칭한다. 한편 중국에서는 잘라내면 금방 자라나는 부추처럼 반복적으로 매입하며 끊임없이 주식을 투자하는 90년생 주링허우 세대를 일컬어 ‘청년부추’, 일본에서는 대형 매도 세력에 대항에 잽싸게 움직이는 닌자처럼 대응한다고 해서 ‘닌자개미’라고 부르고 있다.

‘F0’는 ‘첫 시작한 사람’이라는 의미

베트남 증시에서도 연일 최고치 주가지수, 최대 신규 증권계좌 개설수 갱신, 증권사 매출 및 영업이익 최고치 기록 등을 이끌고 있는 초보 투자자들이 있다. 베트남에서는 이들을 ‘F0(F+숫자 0)’라고 부른다. 베트남에서는 코로나19 최초 확진자를 생물학 용어를 사용해 ‘F0’라고 지칭하는데 1차 접촉자를 ‘F1’, 2차 접촉자를 ‘F2’라고 분류해 인터넷과 온라인 메신저를 통해 이들의 동선을 전 국민에게 통보하고 방역하고 있다. 베트남인들에게는 ‘첫 시작한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최근 유행하는 단어다.

베트남 1위 증권사 SSI Nguyen Hue 지점에서 증권 계좌 개설을 신청하는 모습 / 유영국 제공

베트남 1위 증권사 SSI Nguyen Hue 지점에서 증권 계좌 개설을 신청하는 모습 / 유영국 제공

베트남에서 주식계좌를 개설하려면 증권사와 연계된 은행에서만 가능하고, 작성해야 하는 신청 서류도 4~5가지나 된다. 이렇게 복잡하고 시간이 걸림에도 젊은 베트남 투자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베트남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21년 3월, 한달 신규거래 계좌수가 11만3875개로 월 기준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 1~4월 누적 개설수 39만3659개는 2020년 한해 개설수 전체의 93%에 해당한다. 지난해 베트남 주식시장 총액은 베트남 국가 GDP의 87%에 달했고, 국채시장과 회사채시장을 포함할 경우 110%에 이른다.

베트남 1위 증권가인 사이공증권은 올 1분기 1조4700억동(약 735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57% 증가했고, 세후 이익은 4260억동(약 213억원)으로 8배나 늘었다. 그 외 VN다이렉트증권도 8배 늘어난 4825억동(약 241억원), 비엣캐피털증권은 2.5배 늘어난 2920억동(약 146억원), VPS증권은 2배 늘어난 2020억동(약 101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해 업계가 웃고 있다.

베트남 증시는 MSCI지수 중 (모건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셔널) ‘프런티어 마켓’에 속해 있는데 2020년 12월 쿠웨이트가 ‘이머징 마켓’으로 승격 확정되면서 프런티어 마켓에서 베트남의 비중이 기존 17.5%에서 25.2%로 늘어나게 됐다. 이는 베트남 증시에는 상승 호재가 됐다. 베트남 정부는 이 기세를 몰아 베트남 증시도 ‘이머징 마켓’으로 승급되기 위해 외국인 투자자들의 편의를 배려한 다양한 법 개정을 진행하고 있다.

베트남 증시가 급격히 상승한 데는 여러 요인이 있는데 무엇보다 성공적인 코로나19 방역에 따른 경제성장이 크다. 베트남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2020년 2.9% 성장하며 1인당 GDP 2777달러를 기록해 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플러스 성장국가가 됐다. 올해 2021년에도 6.5~7.0% 성장이 기대되고 있다. 베트남 국민 스스로가 국가경제 성장에 대한 강한 확신으로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또 다른 요인으로는 급격한 금리인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충격으로 경기 부양을 위해 베트남 중앙은행이 4차례 걸쳐 기존 5%였던 금리를 4%대로 대폭 내렸기 때문이다. 주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던 부동산 임대업이 어려움을 겪은데다 낮아진 예금금리 대신 20~30% 수익을 거두는 주식시장에 학생, 주부부터 공장 노동자, 사무직원까지 뛰어들고 있다.

경제성장·금리인하 등 영향 증시 호황

어려워진 경제상황이 역설적으로 베트남 증시를 활황으로 만든 것도 또 다른 이유다. 베트남 통계청에 따르면 코로나19 충격으로 2020년 10만1700개의 사업장이 폐쇄 또는 휴업 중이다. 이로 인해 직장을 잃어 소득을 벌기 위한 생계형부터 보유한 부동산 가치 하락으로 인한 대안 투자처로 주식시장에 관심을 갖거나 새로운 사업을 진행할 수 없어 투자금으로 주식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베트남 1위 증권사 SSI Nguyen Hue 지점 객장 전광판 / 유영국 제공

베트남 1위 증권사 SSI Nguyen Hue 지점 객장 전광판 / 유영국 제공

다른 한편에서는 베트남 주린이 ‘F0’ 탄생을 베트남 개혁개방 정책이었던 ‘도이머이’에서 찾기도 한다. 개혁개방이 시작된 1986년 자유시장 체제를 도입해 민간기업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35년이 지난 지금 해당 사업체를 설립한 부모 세대들이 이제 30~40대가 된 자녀들에게 사업권을 물려주며 자본력을 갖춘 젊은 투자자들의 공격적인 증시 참여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개혁개방 시대에 자란 1980년대생들이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이용해 손쉽게 주식거래를 하게 된 것도 베트남 증시 성장의 한 원인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베트남 증시가 더욱 성장하기에는 부족한 것들도 많다. 2020년 기준 베트남 증시 시가 총액은 2100억달러로 한국 증시의 10% 수준이며, 아세안 주요 6개국 중에서도 가장 작다. 이는 외국 자본의 대량 매도에 쉽게 흔들릴 수 있다는 의미다. 최근 폭발적으로 늘어난 주식 거래로 서버가 견디질 못해 여러차례 매매가 중단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베트남 증시에 직접 뛰어든 투자자들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데 베트남 기업에 대한 과장되고 제한적인 정보가 넘쳐나고 있다. 한국에서 막연하게 알고 있는 기업 이미지와 실상은 아주 다르다. 일례로 2019년 세계 3대 신용평가 회사인 피치는 베트남 시총 1위 기업의 모그룹이자 베트남의 삼성이라 불리는 빈그룹에 대해 기업 평가를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는데 한국에서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베트남 기업 중에는 성장 가능성이 높고 베트남 현지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확보하며 영업이익을 내고 있는 우수한 기업들도 있지만, 구체적인 계획 없이 말뿐인 사업계획 공시도 많다. 투자자들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유영국은 아모레퍼시픽과 NICE 그룹에서 근무하면서 베트남에서 10년째 화장품 업계에서 일하고 있다. MBC 라디오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 등에서 베트남 경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유영국 「왜 베트남 시장인가」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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