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따라가는 따스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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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극단의 이름에는 그 극단의 특징과 방향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작가 겸 연출가 민준호를 중심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의 연극인들이 모여 만든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이하 간다)’ 역시 단원들의 유쾌한 에너지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참신함, 그리고 어디든지 관객을 직접 찾아가겠다는 적극적이고 유연한 태도를 그대로 보여주는 이름이라 할 수 있다. 데뷔 이후 줄곧 간다는 <우리 노래방 가서…얘기 좀 할까>, <그 자식 사랑했네> 등 기발하면서도 젊은 세대의 감수성을 담아낸 작품들을 꾸준히 무대에 올리면서 공연계에 ‘간다스럽다’는 신조어를 유행시켰고, 젊은 관객들의 열렬한 지지와 애정을 받아왔다.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제공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제공

하지만 어느덧 이들이 연극을 시작한 지도 십수년이 흘렀다. 20대의 뜨거운 열정과 패기로 똘똘 뭉쳤던 단원들 대부분이 이제 불혹의 나이가 돼 뮤지컬, 영화, TV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활동을 넓혀가고 있다. 민준호 작가 역시 재기발랄하고 통통 튀는 전작들에 비해 한층 진지하고 따뜻한 시선을 담은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다. 특히 <뜨거운 여름>, <나와 할아버지> 등 최근작들은 주로 과거로의 추억 여행을 통해 지난 삶을 되돌아보고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2013년 초연 당시 많은 화제를 모았고, 이후 꾸준히 재공연을 이어가며 극단의 대표작으로 자리 잡은 <나와 할아버지>는 작가 민준호가 실제 자신과 자기 할아버지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를 한 편의 수필처럼 담담하고 솔직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전쟁 통에 헤어진 할아버지의 옛 여자친구를 찾는 데 동행하게 된 작가가 할아버지의 말과 행동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면서, 자신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세월을 살아낸 할아버지란 존재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드라마틱한 사건이나 연극적 장치 없이 솔직담백하게 그리고 있다.

한편 잔잔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에 있어 민준호 연출 특유의 재치와 익살은 다시 한 번 빛을 발한다. 극중 화자인 ‘작가’와 그의 과거 모습이자 주인공인 ‘준희’를 분리해 따로 등장시킴으로써 의도적으로 관객의 혼란과 웃음을 유발하는 설정이나, 일인다역을 맡은 배우들의 변화를 일부러 노출함으로써 극의 재미를 높이는 연출 모두 이러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고집 센 할아버지와 손자가 끊임없이 주고받는 이야기의 촌철살인 위트 역시 작품의 매력을 더한다.

특히 극중 ‘작가’는 자신이 쓴 수필의 배경을 섬세하게 설명하고 표현하느라 무대 위 등장인물보다 더 분주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작가 민준호가 직접 출연해 재미를 더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간다’와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온 신·구 멤버들이 고루 출연해 다시 한 번 유쾌하고 따뜻한 간다 고유의 에너지를 선보인다. 4월 18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

<김주연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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