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플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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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 건설 둘러싼 음모와 살인과 복수

<드래곤플라이>는 가와이 간지의 데뷔작 <데드맨>의 주역들이 다시금 의기투합한 <가부라기 특수반> 시리즈의 후속작이다. 전작의 ‘6연속 살인’에 견줄 만한 사건이 이번에도 단번에 경시청을 혼란에 빠뜨린다. 강변에서 불탄 채 발견된 처참한 형상의 시신을 보건대 범인은 피해자의 신원을 알아내기 어렵게 미리 준비한 휘발유를 사용한 것이 분명하다. 이상한 것은 이 소사체(燒死體)에 내장이 없다는 점이다. 시체를 태우기 전 범인이 내장을 모조리 들어낸 탓이다. 경시청은 인력을 총동원해 대책반을 꾸리는 한편, 가부라기 경위로 하여금 단순 정신이상자의 행동으로 치부하기 힘든 사건의 진실을 다른 각도에서 파헤치게 한다.

<드래곤플라이>의 표지 작가정신 제공

<드래곤플라이>의 표지 작가정신 제공

우선 가부라기 팀은 사체에서 발견된 유일한 단서인 잠자리 모양의 펜던트를 수소문한 끝에 군마현에 있는 한 액세서리 가게의 주문 제작품임을 확인한다. 그러고는 곧 피해자가 댐 건설로 수몰된 이곳 히류무라 출신의 청년 유스케임을 특정하면서 이 살인사건이 댐 건설을 두고 벌어진 분쟁을 비롯해 20년 전 히류무라에서 일어난 미결 살인사건과 긴밀히 연계돼 있음을 직감한다. 여기에 선천성 시각장애를 가진 여성 이즈미와 유스케의 연관성이 곳곳에서 강조되는가 하면, 작품의 제목인 ‘잠자리’가 예상치 못한 순간 계속해 키워드로 떠오르면서 사건의 진상은 불행히도 가장 약자가 벌인, ‘가장 믿고 싶지 않은 진실’을 향해 나아간다.

이를 지탱하는 장치 중 하나가 ‘애브덕션(abduction)’으로, 시리즈의 핵심과도 같은 이 추론법이 교착 국면마다 등장해 기존의 발상을 완전히 전복한다. 애브덕션이란 기존의 연역법이나 귀납법과는 다르게 A라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조금은 엉뚱한 B를 가정할 때 무리 없이 A로 귀결되면 B를 ‘참’으로 보는 제3의 추론법이다. 그래서 작중 프로파일러 사와다는 이를 ‘비약법’, ‘포획법’ 등으로 번역하는데, 가부라기는 다분히 직관에 의존한 이 방법을 통해 몇차례 진실로 ‘도약’한다. 덕분에 의외의 진실을 미리 설계해둔 소설 작법을 그대로 도치한 듯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만큼 독자에게는 깜짝 놀랄 만한 충격적인 전개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는 경찰이라는 조직의 생태가 긴밀히 반영된 탓도 크다. 가부라기 특수반이 비약이나 다름없는 직관을 논증해나가는 것을 경찰 수뇌부는 늘 마뜩잖아한다. 물증이나 증인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정황만을 근거로 진실에 접근하려는 가부라기의 방법은 당연히 저항감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특히나 경찰은 계급에 따른 명령 체계가 그야말로 절대적인 세계다. 작중에서도 경찰은 정해진 법과 규범을 준수하면서 오히려 범죄자에게 틈을 내주기도 하고, 책임 소재를 따지고 들며 한낱 개인의 신념을 시험하는 조직으로 그려지기에 가부라기의 독특한 발상은 당연하다는 듯 묵과되기 일쑤다. 그래서 더더욱 애브덕션은 작위적인 미스터리 작법 이전에 제도권에 도전하는 훌륭한 대항마처럼 비친다.

또한 이 작품에서 잠자리는 일본의 창세신화에서 시작해 어린아이의 사소한 신념과 욕망을 은유하고, 댐 건설을 둘러싼 음모와 20년 전 살인과 복수에까지 관여하며 미스터리 장르 특유의 신비한 분위기를 한껏 북돋는다. 무엇보다 진실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며 ‘납득할 만한 사실’을 두고 다투는 범죄자와 형사들의 분투 모두가 미스터리의 매력을 절절히 웅변한다.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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