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팬텀> 오페라 체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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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와 뮤지컬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음악이 극 전개에 주요한 수단이자 역할을 한다는 면은 엇비슷하다. 그러나 태생적 배경을 보면 차이가 있다. 오페라는 주로 소수의 지배계급으로부터 재정적 후원을 받았던 예술가들이 만든 고급문화 성격이 강하다면, 뮤지컬은 산업혁명 이후 도시문화가 본격적으로 대두되며 각광받았다. 오늘날처럼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같은 대중매체가 등장하기 전인 1800년대 말, 입장권을 사서 봤던 뮤지컬의 전 단계 공연들은 당시 대중문화의 모든 것이라 불릴 만큼 큰 인기를 누렸다. 오페라를 ‘이야기가 있는 음악’이라 부르고, 뮤지컬을 ‘음악이 있는 이야기’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디에 방점이 있냐는 차이다. 오페라 무대에 서는 사람은 오페라 ‘가수’라 칭하고, 뮤지컬은 뮤지컬 ‘배우’라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EMK 제공

EMK 제공

뮤지컬의 지평은 꽤 넓고 다양하다. 장르가 지닌 기본 성향 자체도 그렇거니와 여러 형식이나 원작, 내용이 뒤섞여 다시 새로운 체험을 잉태해내는 특성이야말로 그만의 독특한 매력이다. 장중한 클래식음악에서 로큰롤이나 헤비메탈이 등장하는 콘서트 같은 형식, 배꼽 잡는 코미디에서 심지어 랩으로 미국 독립 역사 속 인물을 설명하는 작품까지 폭넓은 콘텐츠들이 인기를 누린다.

그래도 뮤지컬을 통해 오페라 같은 체험을 원한다면 꼭 추천하고픈 작품이 있다. 올해 앙코르 공연을 올린 뮤지컬 <팬텀>이다. 정체를 알 수 없지만 흉측한 외모 탓에 늘 가면을 쓰고 다니는 천재음악가 에릭과 아리따운 오페라 여가수 크리스틴 그리고 과거의 비밀과 연관돼 에릭을 보호하는 극장장 카리에르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박은태, 카이, 규현, 김소현, 임선혜 등 우리말 버전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역량은 탁월하다. 감정에 따라 바꿔쓰는 유령의 가면은 커튼콜에서 마치 진짜 얼굴을 보여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하면서 관객들을 가슴 졸이게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의 백미는 에릭의 과거에 대한 회상이 등장하는 발레 시퀀스다. 김주원, 황혜민, 최예원, 김현웅, 정영재 등 정상급 무용수들이 꾸미는 무대는 공연을 보고 나서며 그의 발끝이 한 번이라도 무대에 닿았었던가 확신하지 못하게 만들 만큼 아름답고 몽환적이다. 뮤지컬 보러 가서 발레에 감동하는 재미난 체험을 할 수도 있다.

여러 번 반복 관람한 마니아 관객이라야 알 수 있을 디테일도 칭찬받을 만하다. 미로를 지나듯 흐르는 유령의 보트가 더욱 길게 물길을 가로지른 느낌을 만드는 이유는 보트의 정반대로 흐르는 배경영상 덕분이다. 곤두박질치듯 떨어지는 샹들리에, 오페라하우스의 여러 공간을 인형집처럼 단면을 보여주며 전개되는 극 흐름도 마찬가지다. 오래 사랑받는 작품은 어쩌다 등장하는 요행의 결과가 아니라는 명제는 <팬텀>이 알려주는 가장 큰 교훈이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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