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 앤 버니-월급쟁이 슈퍼히어로의 각박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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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의 눈에야 슈퍼히어로가 마냥 우상일지 모르겠다. 하나 그런 인물이 실재한다면 실존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 세상을 구하려 해도 목구멍이 포도청일 테니. 브루스 웨인(배트맨) 같은 재벌가 출신이 아닌 다음에야 클락 켄트(슈퍼맨)처럼 정규직이 되거나 최소한 피터 파커(스파이더맨)처럼 비정규직 알바라도 뛰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시간을 불의 척결에 쏟는다면 경쟁이 치열한 직장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 더구나 가장이라면? 외려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 슈퍼히어로들의 사회화(?)는 국가권력이나 상업시장에 예속되는 길로 나아가지 않을까.

일본 애니메이션 <타이거 앤 버니> 선라이즈 제작

일본 애니메이션 <타이거 앤 버니> 선라이즈 제작

프랭크 밀러의 만화 <다크 나이트 리턴즈>에서 은퇴했다가 10년 만에 돌아온 초로의 배트맨은 슈퍼맨의 턱을 날린다. 치솟는 범죄율은 외면한 채 공권력의 앞잡이로 전락한 탓이다. 앨런 무어의 <워치맨>은 슈퍼히어로들의 처지를 훨씬 더 열악하게 묘사한다. 정부의 여론몰이와 대대적 단속으로 슈퍼히어로들의 자경단 활동은 관(官)의 선전도구가 된 일부 앞잡이들 외에는 금지된다. 스탠 리의 <엑스맨>은 슈퍼히어로들을 이해관계에 따라 아예 양분한다. 한쪽은 이종괴물 취급을 받으면서도 보통사람들이 주축을 이룬 기성사회에 순응하려 들고, 다른 한쪽은 자신들을 우월한 차세대 종으로 인식하며 독자적 이익집단화를 추구한다.

그런데 슈퍼히어로라 해서 다 양자택일의 극단으로 치닫지는 않는가 보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방영 중인 일본애니메이션 <타이거 앤 버니>(2011)를 보자. 여기서 슈퍼히어로들은 저마다 지닌 각양각색의 초능력 덕에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에 소속돼 도시의 흉악범 소탕에 동원된다. 이들을 움직이는 주체는 민간기업이다. 물론 공권력과는 공생관계다. 범죄자 체포 과정은 상업 TV 채널로 실시간 중계되며 이렇게 쌓아올린 긍정적 이미지는 해당 슈퍼히어로의 연예비즈니스 수익사업과 철저하게 연계된다. 이와 유사한 콘셉트는 반재원의 <초인동맹에 어서오세요>(2007)와 듀나의

<아퀼라의 그림자>(2015)에서 보듯 국내 창작소설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만에 하나 슈퍼히어로가 실재한다면 공권력과 대치하기보다는 자연스레 유관 시스템에 편입될 공산이 크다.

기존 연예기획사 소속 아이돌의 삶과 다를 바 없어진다는 뜻이다. 노래나 연기 대신 범죄소탕 중계방송에 출연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 잡지 인터뷰와 화보 촬영, 팬사인회, 캐릭터 상품 판촉에 열을 올려야 한다. 슈퍼히어로 간 물밑 경쟁도 치열하다. 한마디로 <타이어 앤 버니> 속 슈퍼히어로들은 동료보다 몇푼 더 받으려고 단기성과에 급급해하는 대기업 월급쟁이들과 오십보백보다. 이들은 슈퍼히어로라는 허울이 무색하게 동선은 물론이고 유니폼의 디테일까지 시시콜콜한 지시에 따라야 한다. 싫으면 관두란다. 하지만 기획사의 지원 없이 맨몸으로 초인 행세를 하자면 능력도 능력이지만 일단 방송 카메라조차 따라붙지 않는다.

1980년대의 <다크 나이트 리턴즈>와 <워치맨>은 산업자본주의사회와 양립하기 어려운 슈퍼히어로들의 부조리한 상황을 그렸지만, 21세기의 <타이거 앤 버니>는 아무리 슈퍼히어로라도 경영진이 시키면 휴가 간 시장부부의 아기를 돌볼 수밖에 없는 월급쟁이의 애환을 담는다. 개성을 잃고 자본의 부속물로 전락한 이상 평범한 우리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는 존재다. 우리 역시 초인은 아니지만 거의 초인처럼 안간힘 써야 간신히 살아남는 각박한 현실 속에 놓여 있으니까.

<고장원 SF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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