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기 에반게리온> 완결편 개봉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귀멸의 칼날>이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화제다. 일본 현지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넘어 역대 애니메이션 흥행 수위를 갱신했고, 국내에도 코로나19 이후 얼어붙은 극장가에서 100만 넘는 관객을 기록하며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할리우드 영화 못지않게 일본 애니메이션은 전 지구적 인기다.

에반게리온 극장판 시리즈의 4번째 작품이자 최종작 포스터

에반게리온 극장판 시리즈의 4번째 작품이자 최종작 포스터

2021년 3월 8일, 또 1편의 애니메이션이 일본에서 개봉했다. 당일 조조 상영 후 점심때가 갓 지난 시간 20여만 관객을 기록했다. 그날은 월요일이었고 관객 대부분은 정장을 갖춰 입은 중장년이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 시리즈 최종 완결로 공언된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다. 1995년 26회 분량 TV 애니메이션으로, 1997년 ‘구’ 극장판 <사도신생>과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2편이 공개된 바 있다(해당 작품들은 현재 넷플릭스 스트리밍 중). 이후 리부트 프로젝트로 2007년 <에반게리온: 서>, 2009년 <파>, 2012년 <Q>로 이어지는 ‘신’극장판이 등장했고, 근 10년을 기다린 끝에 최종편이 개봉했다.

에반게리온은 기본만 보면 SF 로봇 애니메이션의 왕도 구성이다. ‘괴수가 등장한다→아버지가 만든 로봇에 탑승한다→괴수와 싸워서 승리한다’ 3단계가 반복된다. 그 전형성에 감독인 안노 히데아키는 기이한 변형을 가한다. 괴수의 정체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으며, 주인공과 또래 동료들은 막장이거나 부재한 부모들에 늘 상처받는다. 왜 하필 내가 목숨 걸고 싸워야 하는지 이유도 모르겠고, 어른들은 강요나 방관으로 일관할 뿐이다. 그런 가운데 폐인이 돼가지만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꿈도 희망도 없는 내용이다. 처음에는 현란한 로봇 액션과 설정에 매료되지만, 점점 어른들과 갈등하며 현실에 좌절해 스스로 문을 닫는 주인공들의 고뇌에 감정 이입된다.

에반게리온이 등장하던 당시 일본은 거품경제가 붕괴하고 대지진과 옴 진리교 창궐 등 암울한 시기였다. ‘밝은 미래’ 기대는 사라지고 가족의 가치는 붕괴됐으며, 왕따와 은둔형 외톨이 등 사회문제는 심각해지고 있었다. ‘세기말’ 분위기에서 청소년들은 에반게리온 주인공들에게 동질감을 느꼈고, 애니 속 설정과 관계는 사회현상과 연결돼 학문적 연구대상이 됐다(사람 간 관계의 어려움에 극도로 집중하는 특징은 ‘세카이 계’라는 일본 애니 특유의 장르가 된다). 에반게리온이 전설이 되고 세대를 초월한 인기를 얻은 것은 슬프게도 그런 사회갈등이 여전한 현재형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에반게리온의 주제가 ‘잔혹한 천사의 테제’ 도입부는 “잔혹한 천사처럼, 소년이여 신화가 되어라!”로 시작된다. 이미 기성세대가 완성해버린 세계에서 꿈을 잃고 물질적으론 풍요롭지만 정작 자기 뜻대로 뭘 할 수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세대, 사람에게 상처받고 상처 입히는 게 두려워 마음의 문을 잠근 세대에게 이 시리즈는 완결 이후에도 평행우주처럼 연속되며 ‘신화’가 없는 세대에게 ‘신화’로 남을 것이다.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방구석 극장전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