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대신 책임을 택한 파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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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이자 연출가인 조광화가 재창작·연출한 연극 <파우스트 엔딩>은 괴테의 <파우스트>를 바탕으로 했지만, 여러 면에서 원작과는 전혀 다른 방향과 색깔을 보여준다. 원작과 달리 신은 우스꽝스럽고,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으며, 사랑에 대한 관념도 전혀 다르다. 사실 <파우스트 엔딩>은 <파우스트>를 무대 위에 재현하거나 축약한 작품이라기보다는 조광화가 읽고 해석한 <파우스트>, 그가 <파우스트>의 프리즘으로 바라본 세상을 그린 작품에 가깝다.

국립극단 제공

국립극단 제공

무엇보다 이 공연이 원작과 가장 크게 다른 지점은 ‘엔딩’을 전면에 내세운 제목이 말하듯, 구원이 아닌 파괴와 종말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류 번영을 위해 축적해온 지식과 기술이 오히려 인간을 위협하고 세상을 파괴한다는, 문명 전체에 대한 반성적 시선이 작품 전체에 걸쳐 선명하게 드러난다. 처음부터 끝까지 극의 중심 공간으로 활용되는 파우스트의 연구실은 이러한 인간 문명의 축소판과도 같다. 법·의학·예술·종교 등 각 분야에서 더 강력한 힘을 갖기 위해 다투는 학생들의 교실이자 파우스트가 유토피아를 꿈꾸며 인간개조를 시도하는 실험실이기도 한 이 공간이야말로 ‘더 잘 살기 위한’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세상을 파멸시키는지 압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극 중 클라이맥스에서 신에 의한 구원을 거부한 채, 자신이 저지른 일들에 책임을 지고 지옥으로 향하는 파우스트의 마지막 선택은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든 비극의 책임을 우리 스스로 깨닫고 짊어져야 한다는 작가의 생각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파우스트 엔딩>의 무대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새빨간 눈을 반짝이면서 메피스토를 따라다니는 6마리의 거대한 들개 퍼펫이다. 공연 내내 위협적인 움직임으로 무대를 가득 채우는 거대 들개 퍼펫들은 작품의 아포칼립스적 세계관을 직관적인 정서로 전달하기 위한 장치다. 이와 함께 극의 중간중간 정서를 환기하고 주제를 응축해 보여주는 노래들과 무대를 압도하는 스펙터클한 군무 역시 말이나 이야기로 설명하기보다 몸과 에너지 그리고 시청각적 감각을 통해 작품의 주제와 정서를 전달하고자 하는 조광화의 연출 스타일을 느끼게 하는 요소다.

에필로그에서 시각장애인이 된 파우스트는 낡은 지팡이에 기댄 채 머나먼 방랑의 길에 오른다. 두눈을 잃고 스스로를 세상에서 추방한다는 점에서나 자신이 저지른(비록 고의가 아니었다 할지라도) 죄의 대가를 스스로 짊어진다는 점에서, 마지막 파우스트의 모습에는 저 옛날 오이디푸스의 발걸음이 겹쳐진다. 인간 지성의 한계를 드러내고 운명 앞에 무력하다는 점에서 이들은 분명 비극의 주인공들이지만, 적어도 스스로의 말과 행동에 끝까지 책임을 진다는 점에서는 위대한 인간의 의지를 보여주는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 3월 28일까지, 명동예술극장.

<김주연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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