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제표가 주식투자에 도움이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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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다 보니, 재무제표 관련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주식과 연관됩니다. 가장 흔한 질문은 “재무제표가 주식투자에 정말 도움이 되느냐”입니다. 대부분 투자전문가는 “된다”고 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질문을 조금 비틀어 “재무제표로 주가 상승 종목을 맞출 수 있느냐”로 바꾸면 쉽사리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도 최소한 절대 사면 안 되는 기업을 골라낼 수는 있다”라고 말하는 분은 재무제표에 후한 점수를 주는 편입니다. 재무제표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의 지난 실적을 정리한 재무제표가 현재 시장현황과 주식투자자들의 기대를 반영한 주가를 맞춘다는 건 시점상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영업이익이 30%로 올랐다고 주가가 30% 상승하지 않습니다. 주식으로서 종목은 재무제표의 기업과 동명이인처럼 별개의 존재로 인식됩니다.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한 외환 딜러가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한 외환 딜러가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탐정처럼 숫자에서 단서를 찾아라

게다가 주식은 단지 주식시장 상황만으로 가격이 결정되지 않습니다. 종목과 관련된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정보가 개입됩니다. 주식투자를 시작한 순간 매출액과 같은 기업 경영 실적뿐만 아니라 회사가 속한 산업이나 환경, 사회적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합니다. 재무제표는 그중 일부입니다만, 만약 투기가 아니라 회사를 보고 투자한다면 반드시 참고해야 할 회사 정보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한가지 팁을 드리자면 재무제표 곳곳에 숨겨진 의미를 얻기 위해 탐정처럼 숫자를 단서로 찾아보면 좋습니다. 주식투자에 놀라운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셜록 홈스가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탐정 셜록의 추론 장면이 나옵니다. ‘소매가 많이 단 것으로 보아 타자수가 분명하군’, 왓슨의 신발 안쪽에 긁힌 자국으로 보아 ‘무능하고 게으른 하녀가 있다’는 식의 추리 말입니다. ‘가추법(가설적 추론)’이라고도 하는데 풍부한 지식과 경험 그리고 관찰이 만들어 내는 직관입니다. 한편의 스토리로 추론을 완성하다 보면 투자에서 조심해야 할 위험 요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회사 규모가 커지고 앞으로 잘 나갈 것이라고 사장님이 말합니다. 실제로 재무제표상 자산총계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외상값을 나타내는 매출채권 숫자는 감소했고, 재고자산 수치는 전년도에 비해 더 증가했습니다. 손익계산서의 매출액은 전혀 늘지 않았는데 재고가 왜 늘었을까요? 앞으로 팔 것을 미리 쌓아두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회사가 정상적으로 잘 돌아갈 때는 창고조차 깔끔하게 정리합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창고를 정리합니다. 늘 매출액에 견주어 비슷한 재고를 유지하는지는 재무제표로 눈치챌 수 있습니다. 악성재고가 되지 않더라도 어떤 제품이든 창고에서 보관 기간이 길면, 당연히 판매가 어렵습니다. ‘그래, 사장의 말은 어쩜 사실이 아닐지도 몰라.’

이번 신규 사업 기획이 ‘대박’이라 투자자가 줄을 선다고 모회사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떠들고 다닙니다. 곧 공장을 짓고, 제품을 출시하면 엄청난 실적이 예상된다는 언론기사까지 났습니다. 부채비율의 증가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전환사채 발행 관련 숫자가 재무제표에 적혀 있습니다. 이자율뿐만 아니라 몇차례 발행이 됐는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말 대박 기획이라면, 금융권 차입이 더 손쉬울 것입니다. 전환사채는 차입을 해주는 채권자에게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한까지 옵션으로 제공합니다. 투자자를 유치하는 방법처럼 보이지만, 이자만 내는 회사채와 금융권 차입금이 조달되지 않을 때 활용되는 차선책입니다. 타인이나 금융기관으로부터 차입한 자본을 가지고 투자를 해 이익을 내는 ‘레버리지 효과’는 사업 성공가능성이 높을 때 경영자가 부채를 일으키는 이유입니다. 반면에 만약 성공 가능성이 확실치 않을 때는 자기 돈을 투자해 지분을 갖고 들어온 투자자가 회사에는 더 이롭습니다. 사업실패를 나눠질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상황에 따라 부채는 다양한 방법으로 재무제표에 등장합니다. 똑같은 금액의 부채라도 그 이름이 무엇인지에 따라 회사의 자금 여력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아! 이 회사 저 정도의 자금이 꼭 필요한가? 아직 굳이 저렇게 돈을 많이….’

어디서 투자를 받았는지도 중요하다

회사의 사정을 더 정확히 아는 이는 바로 내부자입니다. 혹은 관계자입니다. 지난 분기까지 투자자로 지분 목록에 있던 이름이 사라졌습니다. 지배구조가 개선됐고, 좀더 경영진의 리더십이 확고해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투자자가 조기에 엑시트를 한 것은 아닌지, 누가 빠져나갔는지, 이유는 무엇인지 슬며시 알아봐야 합니다. 스타트업의 경우 기업가치 평가와 투자금액이 얼마인지도 중요합니다만, 어디서 투자를 받았는지도 평판 조회하듯이 알아둬야 합니다.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떨 땐 회사 역사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회사 이름이 자꾸 바뀌는 경우나 대주주 변동이 2~3년마다 있을 때는 ‘이 기업이 진짜 회사를 키울 생각이 있는지’ 의심해봅니다. 한 우물을 파도 성공할까 말까 합니다. 자꾸 여러 사업을 기웃거리는 것도 가벼이 넘겨볼 사항은 아닙니다. 가끔 회사의 주된 사업 업종이 30개가 넘거나, 최근 몇년 사이 추가한 사업목적이 연관성이 전혀 없는 게 많다면 재무제표 탐정의 촉을 발휘해봅니다. “이 회사는 사업에 의지를 갖기보다는 기업을 팔고 빠지려는 듯하네.”

이 외에도 재고자산의 평가충당금 급등, 유형자산 중에 과하게 숫자 비중이 높은 비품, 건설 중인 자산 등 재무제표 곳곳에서 “왜 이러지” 싶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매출액, 영업이익, 당기순이익의 적자 그리고 부채의 증가 등 모두에게 눈에 띄는 큰 숫자 변화도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주식투자에 재무제표를 활용하려면 사건을 해결하는 작은 단서처럼 평소와 다른 어울리지 않은 작은 숫자 변화를 관찰해야 합니다. 관찰에 추론을 덧붙이는, 재무제표 곳곳에 숨겨진 기업의 의도를 파헤치는 재무제표 탐정처럼 말입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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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 재무제표 읽어주는 남자>

재무제표로 본 기업의 속살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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