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적 작가’의 인간에 대한 탐구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국제갤러리 서울점에서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1946~1989)의 사진 전시가 열리고 있다. ‘모어 라이프(More Life)’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메이플소프라는 ‘코드’를 넘어 인간에 대한 탐구를 작업화한 그를 만나볼 수 있다.

국제갤러리 제공

국제갤러리 제공

‘탐미적 정물사진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사진들’로 유명한 사진작가 메이플소프는 1970년대 당시 뉴욕 하위문화의 전설로 동성애, 예술과 외설 등의 논쟁을 촉발시켰다. 메이플소프를 수식하는 말들은 설명을 넘어 하나의 ‘코드’가 됐다고 볼 수도 있고, 아예 메이플소프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이자 ‘아이콘’이 됐다는 시각도 있다. 2019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은 메이플소프 30주기에 맞춰 무려 1년에 걸쳐 전시를 개최했다. 대중의 인기를 반영하듯 메이플소프를 주인공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메이플소프>도 2018년에 나와 현재 넷플릭스 등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를 통해 시청할 수 있다.

그의 영향력은 이미 미술시장에서 입증됐다. 예를 들어 전시장 2층에서 만나볼 수 있는 1978년작 ‘패티 스미스(Patti Smith)’는 가로세로가 각기 61㎝ 정도인 작은 작업인데도 뉴욕 크리스티(2019년 4월 2일 기준)에 따르면 최대 추정가가 3800만원을 넘는다.

메이플소프는 자신이 작가로서 살아간 기간 내내 쉬지 않고 꽃을 대상으로 사진작업을 하고 또 발표해왔다. 이 사실은 그에게 붙는 ‘충격적·문제적 작가’라는 라벨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1977년 뉴욕 갤러리에서 ‘꽃 전시’를 열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미술계에 ‘꽃 그리는 작가’에 대한 두텁고 다양한 편견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메이플소프의 꽃 정물 사진작업은 신선하다고도 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튤립 두 송이’, ‘난초’, ‘꽃’ 외에도 글라디올러스, 장미 등을 피사체로 찍은 작업이 포함됐다. 사실 메이플소프의 꽃 작업 중 일부는 작가가 대상에 부여하는 에로티시즘이 도식적으로 느껴질 정도라 아쉬움이 남지만, 적어도 인간에 대한 관심을 꽃으로 치환한 지점을 따라가 보는 것은 2021년에도 흥미로운 일이다. 유명한 꽃 작업으로 조지아 오키프의 작업과 비교하며 감상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참고로 조지아 오키프(1887~1986)는 자신의 꽃 작업에서 에로티시즘적인 측면이 부각되는 것에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메이플소프는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많은 인물사진도 남겼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91점의 작품 중에는 작가가 1975년부터 사망 직전인 1988년까지의 자신을 스스로 찍은 사진작업 9점도 포함돼 있다. 전시장에 흩어져 있는 작가의 초상사진을 시대별로 비교하며 변화의 흔적을 따라갈 수 있다. 데이비드 호크니와 리차드 기어 등 유명인을 찍은 초상사진도 포함돼 있어 보는 재미가 있다. 다만 전시장 2층은 ‘성적 표현의 수위가 높은 작품’도 있음을 참고하기 바란다.

<정필주 문화예술기획자·예문공 대표>

문화프리뷰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