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투자자가 실수에서 벗어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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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거실에서 로봇청소기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기특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나 대신 묵묵히, 꾸준히 일해주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돈이 놀아?” 요즘 자주 듣는 말입니다. 주식투자 열풍 속에 회자되는 유행어인데 로봇청소기처럼 우리 ‘자본’이 열심히 일해 돈을 벌기 원한다는 표현입니다. 예전과 달리 근로소득과 자본소득에 대한 가치관이 많이 변했습니다. 저금리로 인해 저축만으로는 노후보장이 안 되는 시대이다 보니 남녀노소를 따지지 않고 주식투자에 관심이 높습니다. ‘동학개미운동’은 최근 주식투자 트렌드를 대표합니다. 2020년부터 개인투자자들의 투자가 무척 달라지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같은 우량주 투자부터 공매도에 대한 대응까지 ‘개미는 결국 털리고 만다’라는 예전 속설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해외주식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서학개미’라는 신조어도 생겼습니다. 좀더 큰 자본시장, 그리고 합리적인 투자환경, 글로벌 우량기업에 대한 투자로 국내보다 안정적인 투자처라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한 대형 서점에서 1월 19일 방문객이 주식 관련 서적을 보고 있다. / 연합뉴스

서울의 한 대형 서점에서 1월 19일 방문객이 주식 관련 서적을 보고 있다. / 연합뉴스

이런 모습만 봐도 현명한 투자자가 많아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무모한 투자자도 보입니다. 지난여름 우리들제약㈜이 연속 상한가를 기록한 적이 있습니다. 코로나19 신속 진단키트 수출 허가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지만 주가상승률이 단 3일 만에 약 120%라는 점은 설명되지 않습니다. 향후 사업확장과 회사의 다른 면을 투자자들이 매우 긍정적으로 판단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2020년 3분기까지 매출액 704억원, 영업이익 11억원의 실적을 보면 아직 그 정도의 시장평가는 ‘이르지 않나’라고 생각됩니다. 이후 주가는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이런 급등과 급락에는 대박을 꿈꾸는 투자자들이 한몫했습니다. 아무리 개미투자자들이 현명해졌다고 해도 여전히 투자정보가 부족하고, 판단을 내리는 데 서툰 초보자가 많습니다.

보는 만큼 위험을 알게 된다

문화유산을 볼 때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했습니다. 주식투자도 비슷합니다. 투자 회사가 속한 산업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현재 시장상황도 체크해야 합니다. 초보 투자자가 투자 실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투자대상인 좋은 회사를 고르고, 나쁜 회사를 걸러내는 것입니다. 좋은 회사가 좋은 종목이 아닐 수 있습니다. 재무적으로 양호한 상태인 회사가 반드시 주가상승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쁜 회사가 좋은 종목이 될 가능성은 현저히 낮습니다. 가장 최악의 투자실패는 ‘누군가의 말을 믿고 정말 좋은 회사, 좋은 주식인 줄 알고 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상장폐지 될 정도의 나쁜 회사였다’입니다. 아무리 남 탓을 한들 손실은 온전히 투자자가 안아야 합니다. 최소한 내가 고른 회사의 재무상태를 먼저 확인하고 매수 버튼을 누르길 권합니다. 그것만 해도 투자 리스크를 잡을 수 있습니다. 재무제표를 보는 만큼 투자 위험을 줄이게 됩니다.

재무제표가 보기 어렵고, 주식투자와 연결 짓기 힘들다고 하는데 딱 한가지만 기억하면 됩니다. 숫자 크기에 대한 감입니다. 투자를 위해 주가수익비율(PER), 주가순자산비율(PBR), 주당순이익(EPS) 등 주식투자 지표까지 갈 필요도 없습니다. 숫자가 주는 직관력을 이용하십시오. 마치 몸에 맞는 옷을 사듯이 해당 회사 재무제표 숫자와 주식 사이즈를 비교해 봅니다. 어떤 종목을 골랐다는 건 앞으로 주가가 오른다는 판단을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회사도 앞으로 덩치가 커질 수 있어야 합니다. 자산규모가 커지거나, 매출액이 지난해보다 쑥쑥 증가해야 합니다. 세세하게 따지지 말고, 재무상태표의 자산총계와 손익계산서의 매출액을 찾아봅시다.

기술력으로는 국내 톱이라고 불릴 수 있는 괜찮은 A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명성에 비해 주가는 변동이 없습니다. 심지어 실적이 좋았던 최근에는 하락세입니다. 시가총액 5000억원 정도입니다. 만약 투자를 고려한다면 자산총계와 매출액을 살펴봅니다. 자산 5297억원, 2020년 3분기까지 매출액 2706억원 둘 다 전년도보다는 커졌습니다. 영업이익은 79억원 적자에서 458억원 흑자로 대폭 늘었습니다. 이런 재무상태라도 주가가 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최소한 현재 시장평가 사이즈(자산총계와 매출액 등)와 견주었을 때 빠지는 정도는 아닙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게임산업이 언택트 시대에 각광받고 있습니다. 상장사이지만 작은 게임사인 B사를 투자대상으로 고민해 봅니다. 이 회사의 시가총액은 자산총계보다 높은 편입니다. 차이도 중요하지만 최근 사이즈 변화도 살펴야 합니다. 자산총계 1452억원이고, 매출액은 2020년 3분기 기준 209억원입니다. 2019년에 비해 큰 변화가 없습니다. 영업이익은 그래도 206억원 적자에서 28억원 흑자로 전환했습니다. 게임산업은 한 방이 있으니 투자할 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큰 폭의 성장을 아직 보여주지 못했으니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이런 판단에 대단한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단지 숫자를 읽었을 때 할 수 있는 상식적 판단입니다. 크면 클수록 다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부채는 회사가 진 빚으로 언젠가는 갚아야 할 채무입니다. 부채가 증가하거나 자기 덩치(자산)에 비해 큰 곳은 투자대상으로 피해야 합니다. 최근 두산중공업은 두산인프라코어 매각 이후 정상화를 이룬다는 소식이 종종 들려오고 있습니다. 투자대상으로 두산중공업을 생각해 봅시다. 우선 점검할 것은 남은 부채입니다. 빨리 갚아야 할 것만 찾아봅니다. 1년 안에 갚아야 할 단기차입금이 약 6조7000억원입니다. 몇조원의 부채에 놀랄 수 있지만, 자산총계 25조원에 견주어 생각해야 합니다. 두산중공업은 매우 큰 회사입니다. 크기도 중요하지만, 부채가 늘었는지 줄었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이자가 많고, 갚아야 할 시점이 빠른 부채가 늘면 조심해야 합니다.

주식투자도 대신해 줄 수 있는 로봇은 없을까. 물론 있습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투자기법과 종목 투자봇이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투자를 쉽사리 맡기지 못하는 이유는 내 돈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입니다.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할 상황에 빠지기 쉽습니다. 직접 투자한다면 회사의 숫자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리스크를 줄일 수 있습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투자자는 거짓말을 일삼습니다. 우리 주변에 넘쳐나는 정보는 어떤 투자자의 거짓말일 수 있습니다.

<이승환 재무제표 읽어주는 남자>

재무제표로 본 기업의 속살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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