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2년 <승리호>가 보여주는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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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호>가 지난 2월 5일 발사됐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천만 영화’를 꿈꾸는 한국형 블록버스터 공식대로 대규모 홍보와 스크린 독과점 논란 속에 개봉했겠지만, 두 차례 개봉연기 끝에 넷플릭스를 통한 공개로 급선회했다. <승리호>는 한국 상업영화에서 거의 최초 시도된 ‘스페이스 오페라’ SF 장르물이다.

영화 「승리호」 / 넷플릭스

영화 「승리호」 / 넷플릭스

국내에서 SF영화가 ‘대박’ 내기엔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우선 가상세계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장르는 필히 대규모 예산을 전제로 한다. <승리호>가 한국영화로는 대규모인 240억원을 들였다지만 할리우드 기준으론 저예산인 셈이니 진입장벽이 퍽 높다. 지금껏 ‘천만 영화’들은 대부분 중장년층도 접근 가능한 가족과 역사 관련 소재로 승부해 왔다.

판타지·공상과학물은 이 부분 공감도가 취약한지라 안전장치로 현실에 대입해 ‘공감’될 이야기와 인물 관계를 유지해 왔다. <승리호> 또한 지금껏 한국영화에서 보지 못한 미래세계를 높은 수준으로 구현했지만, 이 지점은 적절히 유지했다. <승리호>는 기존 한국 상업영화가 지적받아온 ‘국뽕’과 신파 색깔도 옅은 편이고, 영화 속 가족도 ‘대안가족’ 형태를 취한다. 진일보한 측면이다. 하지만 ‘알고 보니 과거를 숨긴 능력자’ 조합인 주인공들 구성은 히어로물의 전형을 답습하는 한계다.

영화 속 2092년 미래는 화려한 CG를 벗겨내면 익숙한 풍경이다. 지구는 오염돼 방독면 없이 숨쉬기 곤란하고, 95%의 인류는 그 환경에 방치돼 있다. 5% 소수는 우주로 이주해 쾌적한 거주구에서 삶을 누린다. 우주라는 배경만 빼면 지금 현실에서 온갖 세련된 이름을 붙인 고급 아파트단지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다. 시민과 ‘비(非)시민’ 거주공간은 완벽히 분리돼 있다.

시민의 거주공간 관리업무는 비시민들 몫이다. 주인공들이 생업으로 삼는 우주쓰레기 청소가 대표적이다. 앞선 우주개발 흔적인 폐기 인공위성들은 지구 궤도를 고속 공전하기 때문에 수거작업은 고난이도 중노동이다. 그들이 우주쓰레기를 잡아채는 생사의 현장은 거주구 안 시민들에겐 그저 천장에 뭔가 살짝 부딪치는 것으로만 인식될 뿐이다. 어디서 많이 보던 풍경 아닌가. 필수업무를 수행함에도 비시민임은 물론, 금융거래도 신용등급이 낮아 현찰만 통한다. 토마토 노점 에피소드에서 보듯 신선식품 먹기는 큰맘을 먹어야만 가능하다.

흔히 SF는 현실과 유리된 별개의 존재로 치부되곤 한다. 하지만 역으로 이 장르는 직설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현실을 은유하고 풍자해온 수많은 사례로 가득하다. 과거에 ‘검열’이 공공연하던 시절 여러 예술가는 시치미 뚝 떼고 ‘이건 미래 가상 이야기입니다!’라며 당대 시대상을 비트는 유쾌한 장난을 저지르곤 했다. <승리호>의 본령은 그 지점이 아닐지언정, 영화 속 배경과 설정은 보는 이들이 온전히 우주여행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2021년 현실과의 접점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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