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텍사스와 한국의 남방한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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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IT) 거점 지역 실리콘 밸리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 HPE나 오라클 등 텍사스로 이주하는 기업들이 속속 늘고 있다. 실리콘 밸리는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지금 당장 잘 나가는 기업들과 종업원만이 버틸 수 있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현지 지가와 생활비, 각종 세제를 고려할 때 그곳에서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지니는 기업과 인재들이 늘고 있다. 인구 통계적으로도 캘리포니아 이탈 주민은 미국에서 가장 많았으며, 텍사스로 유입 인구는 미국에서 가장 많았다.

판교 테크노밸리 / 엄민용 기자

판교 테크노밸리 / 엄민용 기자

사람들은 왜 이사를 할까. 가장 큰 원인은 경제적인 면에 있다. 텍사스는 소득세가 없는 반면,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 가장 높은 13.3%의 소득세를 부과한다. 특히 지난해 이를 다시 최고 16.8%의 최고세율로 인상하고 미국 최초의 부유세까지 창설하려다가 말았다. 연방소득세가 소득 구간에 따라 10~40% 더해짐을 고려할 때 고소득자가 많은 테크 업계일수록 체감이 더할 수밖에 없다. 일론 머스크의 텍사스 이주도 다분히 경제적인 원인이다.

부동산 문제는 더 심각하다. 자가 마련은 언감생심. 모든 일자리가 월세 약 400만원을 감당할 수 있지는 않다. 연봉 수억의 테크 인력들만으로 도시가 굴러갈 수는 없는 법이다. 도시에서는 다양한 직종과 라이프스타일의 시민이 서로를 지원해줘야 하건만 도무지 생활비를 뽑을 수 없다 보니 기능부전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사회문제화되기 시작했다. 경제적인 면 이외에 정치적인 면도 있다. 기업은 정책과 규제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정치적 성향을 포함한 그 지자체의 정책적인 면이 중요해지기도 한다. 예컨대 오라클 CEO 래리 앨리슨은 공화당 의원은 물론 심지어 트럼프의 펀드 레이징도 도왔다. 정든 고장을 등진 그처럼 삶도, 일도 모두 정치와 경제의 영향을 받는다. 특히 코로나19로 재택근무 및 원격근무가 일상화하면서 직장·주거 근접의 메리트가 퇴색되는 지금 상황은 많은 이에게 결단의 기회를 줬다. 개개인의 입장에서도, 회사의 입장에서도 이제 마음 놓고 거점을 옮길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텍사스 이외에도 워싱턴주나 플로리다 등으로의 실리콘 밸리 인재 유출이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현재 진행형인 캘리포니아 탈출기에서 한국의 수도권 과밀 억제에 대한 힌트를 얻고 싶어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양성이 없는 우리에게는 텍사스와 같은 대안 지역이 어디가 될 수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의사결정에 대안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실리콘 밸리가 상징하던 그 혁신의 정신만 이식될 수는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삶터와 일터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일. 이미 인텔이나 삼성 등 IT 거점 단지가 존재하는 텍사스는 그간 대안을 자처해 왔으니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부동산의 가치는 일터가 정하고, 일터의 위치는 인재가 정하는 것이 기본이건만, 우리 엔지니어들 사이에는 ‘남방한계선’이라는 말이 들린다. 소프트웨어는 판교, 하드웨어는 용인이나 이천이라고 하던데 이를 지방 기피를 나타내는 씁쓸한 추세라고 말해 버릴 수만은 없다. 지방이 곧 영세와 중소의 이미지로 머물고 만 것은 정치도, 경제도 혁신의 정신을 이식한 대안 지역을 키우지 못했다는 것이고, 이 일은 취준생이나 구직자가 할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김국현 IT 칼럼니스트·에디토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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