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모범사례 공공서비스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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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헬싱키에서 개설한 웹사이트 ‘AI 레지스터’에 대한 찬사가 여전하다. AI 기술이 적용된 공공서비스를 모아둔 이 가상공간에는 ‘인간중심 AI’가 나아가야 할 원칙과 윤리가 세세하게 명시돼 있다. 헬싱키 중앙도서관 오디의 서적 추천 챗봇 ‘오보티(Obotti)’를 예로 들어보자. 오보티는 오디 도서관을 이용하는 시민에게 맥락 분석에 따라 책을 추천해주는 AI 솔루션이다. 개별 시민의 관심사와 피드백 데이터에 기반을 둬 그간 발견할 수 없었던 새로운 서적들도 제안한다. 텍스트형 챗봇 서비스뿐 아니라 음성인식 기반 추천도 앱을 통해 제공한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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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는 이 챗봇의 알고리즘 작동 원리와 데이터세트, 데이터 처리 방식, 비차별 정책, 인간에 의한 감독, 위험요소 등을 AI 레지스터 사이트에 공개하고 있다. 오보티뿐 아니라 보건소 챗봇, 주차 챗봇, 육아클리닉 챗봇, 지능형 자료관리시스템 등 모두 5종의 공공서비스 AI도 동일한 수준에서 시민이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AI의 신뢰를 보증하는 알고리즘 개방성과 투명성을 공공 부문이 선도한 모범사례라 할 만하다.

올해는 더 많은 공공서비스 AI를 이 사이트에 등록할 예정이다. 참여하는 도시도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시민의 데이터를 학습하며 진화하는 모델이기에 당연한 조치인 듯 보이지만, 이러한 정책이 모든 국가, 그리고 대도시에서 보편적으로 시도되지 못하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헬싱키 AI 레지스터의 실험이 혁신적이라 평가받는 이유는 저변에 깔린 그 철학에 있다. ‘시민과의 공동 설계, 공동 소유를 통한 AI 신뢰 구축’이 그것이다. 흔히들 기술을 민주주의와 병립될 수 없는 인공적 대상물로 여긴다. 속도가 우선인 기술 경쟁에서 시민의 참여를 보장하는 개발 프로세스는 시장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근거에서다. 물론 타당하나 공공 분야의 기술개발 방식과는 거리가 있다. 시민의 민감 데이터를 합법적으로 활용하고 조합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공공 섹터는 개발 과정을 보다 민주적으로 접근할 이유가 있다.

이를 위한 비교적 쉬운 접근이 규제를 통한 민주적 통제다. 하지만 기술에 대한 감시와 규제만이 정부의 역할은 아니다. AI 기술개발의 모범사례를 스스로 창출할 책무도 있다. 모범 없는 선언, 솔선 없는 강제는 자칫 폭력적으로 비칠 수 있어서다. 헬싱키 AI 레지스터는 그 모순을 넘어서기 위한 공공의 귀감이라 할 만하다.

지난해 12월 과기정통부는 ‘국가 인공지능 윤리기준’을 공식 발표했다. 인간성을 위한 인공지능을 핵심가치로 삼아 3대 원칙과 10대 요건을 담아냈다. 정부, 공공기관의 AI도 적용 대상이다. 그러나 경찰의 얼굴인식 감시기술과 같은 일부 공공서비스는 여전히 불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다. 공공기관 챗봇 가운데 데이터 소스와 프로세싱을 설명한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올해만큼은 정부가 AI의 모범사례를 직접 만들어내고 윤리기준을 준수하며, 민간 영역의 사업자들을 견인하는 성과를 얻어내길 바라본다. K-AI 레지스터를 기대하는 게 과욕은 아닐 것이다.

<이성규 전 메디아티 미디어테크 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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