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모든 노화와 마찬가지로 뇌도 늙는다. 크기도 작아지고 혈류와 호르몬, 신경전달물질의 흐름도 예전 같지 않다. 뉴런의 위축이나 손실이 벌어진다. 40대 중반부터 뇌의 퇴행성 변화가 본격 진행된다는 것이 기존 연구인데, 특히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뇌의 영역인 전두엽의 주름이 변한다. 여느 운동 능력과 마찬가지로 늙어갈수록 뇌도 벅차다. 스포츠의 경우 신체 능력의 정점을 지나면 스타디움을 떠나 후진 양성에 힘쓴다. 그러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스타디움에서는 선수도 나이가 지긋하다. 별로 변하지 않는 예측 가능한 게임에서라면 과거의 축적된 경험이 중요해서다. 아무리 공부하고 준비해도 경험이 없으면 기회가 돌아오지 않으니 청년은 여전히 미숙련. 꽃 피울 때를 잃는다.
장로(長老)를 공경하는 연공서열은 해마다 되풀이되는 반복적인 경험이 중요했던 평온한 농경문화의 산물일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은 급변하는 시대. 문제는 너무 늙은 사람들이 너무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스칸디나비안 문화에서는 계급이나 직책을 믿고 장로 노릇을 하는 일에 대해 사회적으로 경계심이 높다. 당장 쓸모 있는 도구나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중용되어야 북유럽의 척박한 환경에서 또 한고비를 넘길 수 있어서였다.
이와 같은 기능주의, 북구적 실용주의는 남녀노소의 다양성과 평등을 가능하게 하고 행복도와 생산성을 높인다. 또한 일단 젊은이들이 어떻게든 해낼 것이라는 낙천주의를 조성하기도 한다. 실제로 덴마크 국회는 40% 이상이 만 40세 이하이고, 노르웨이는 13% 이상이 30세 이하다. 한국의 청년 국회의원 비율은 이미 세계 꼴찌 수준이건만 평균 연령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장로 우대 성향이 농경문화적 산물이라면 제도로 교정할 수 있다. 대만에서는 리버스 멘토십이라고 35세 이하의 사회 혁신가들을 나이 든 각료의 역(逆) 멘토로 임명하는 제도가 있다. 기득권으로 새로운 가치관이 흘러들게 하려는 명확한 정책 목표가 있는데, 청년들이 3주간 의회를 점령한 2014년 해바라기 운동의 산물이었다. 대만의 혁신 아이콘이 된 디지털 장관 오드리 탕도 해바라기 운동 및 리버스 멘토 출신이다. 청년의 분노와 답답함은 그렇게 제도가 되었다.
리버스 멘토링 제도는 원래 기업 인사(HR)의 제도 실험으로 국내에서도 시행하고 있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MZ세대의 취향을 흡수한다거나 또는 코딩처럼 기술 변화가 빨라 노장도 내내 배워야 하는 분야에서는 분명 유의미한 활동일 터다. 일부만 실천 중이지만 리버스 멘토링이 필요한 사정은 어느 기업이나 있다. 혁신을 해야 한다며 나이 든 보스들이 호령하고 있지만, 뭘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스스로도 명확한 최종 이미지가 없고 당신이 무슨 책임을 지겠다는 건지도 석연치 않다 보니 공허한 정신론이 되기 쉽다. 이에 젊은층은 질리거나 지쳐버려 신입사원의 평균 근속연수는 2.7년에 불과하다.
불확실성의 전환기. 시급하게 바뀌어야 할 이들은 제도를 바꿀 힘을 지니고 있지만, 필요를 못 느끼고 있는 이들이다. 이들은 바뀔 수 있을까. 몸과 마찬가지로 뇌도 노화를 막을 수는 없지만 늦출 수는 있다. 전두엽은 새로운 자극에 활성화된다니 안티에이징이 필요하다. ‘노오력’은 청년의 몫이 아니었다.
<김국현 IT 칼럼니스트·에디토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