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한국 은행도 진출한 금융시장의 잠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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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정기예금 이자 14%… 이자 소득 비과세.”

2011년 머나먼 남쪽 나라 베트남 은행의 높은 이율은 투자에 관심 많은 사람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당시 국내 시중 은행 1년 정기예금 금리는 4%였다. 베트남에 진출한 국내 은행지점으로 베트남 정기예금 가입 문의가 쇄도했고, 베트남에 있던 필자에게도 많은 지인이 가입 문의를 해 상당히 곤혹스러웠다.

베트남 호찌민시 Mplaza 건물에 있는 한국 은행들 / 유영국 제공

베트남 호찌민시 Mplaza 건물에 있는 한국 은행들 / 유영국 제공

당시 환차손, 각종 수수료, 한국으로 송금하기 위해서는 불법 환치기 외에는 방법이 없는 점 등을 설명하며 신중한 투자를 강조했다. 그런데 아직도 국내에서 베트남 정기예금 가입의 위험성을 알리는 기사를 보도하고 있으니, 여전히 국내 투자자들의 베트남에 대한 관심이 과한 듯하다.

이율 높은 정기예금 가입 투자 여행도

2020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베트남을 찾는 개인 투자자가 뚝 끊겼지만, 코로나19 직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베트남 정기예금에 가입하려 투자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많았다. 2018년에는 베트남 부동산 투자 열풍이 불면서 부동산 투자나 이율 높은 정기예금에 가입하는 투자 여행도 성행했다. 또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증권회사를 통해 베트남 주식투자도 한창이다.

과거에는 법망을 피해 베트남 계좌에 투자할 방법이 많았지만 2019년 7월부터 외국인의 베트남 은행계좌 개설에 대한 법규가 마련돼 현지 거주증이나 6개월 이상의 비자가 없으면 예금 납부가 안 된다. 게다가 베트남도 경기 부양을 위해 4차례에 걸쳐 금리를 인하했고, 2021년 1월 현재 은행별 정기예금 금리는 연 4.6~6.7%로 10년 전처럼 투자 욕구를 자극할 정도는 아니다.

가입한 정기예금이 만기가 돼도 본인이 직접 은행에 방문해야만 해지할 수 있는데, 투자 여행으로 베트남에서 정기예금에 가입했던 사람들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베트남 입국이 안 돼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게다가 최근 원화 강세로 지난해 대비 7~9%가량 환차손이 발생했으니 실질적인 수익은 거의 없거나 마이너스일 것이다.

코로나19 상황이 해결돼 베트남에 들어올 수 있다 하더라도 한국으로 송금하려면 베트남에서 정당하게 돈을 벌어 입금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투자 신고 없이 베트남에 가지고 온 돈은 해외로 송금할 수 없다. 베트남 현지에서 달러로 환전해 나가려면 환전 수수료가 발생한다. 게다가 베트남 출국 시 가지고 나갈 수 있는 현금은 5000달러까지다. ‘설마 걸리겠어’ 하고 가지고 나가다가 돈을 모두 압수당하는 경우가 많다. 조금 더 많은 이자를 바라고 한 일인데 뒷수습은 어렵다.

베트남에는 자산 기준 4대 은행으로 국영은행인 BIDV(베트남투자개발은행), Vietinbank(베트남산업은행), Agribank(농업은행), Vietcombank(베트남무역은행)가 있으며, 그 외 20여개의 민간 은행과 11개 외국계 은행이 있다. 베트남 외국계 은행 중에 단연 돋보이는 곳은 한국 신한은행이다. 1993년 베트남에 처음 진출한 이래 2021년 1월까지 41개 영업점을 개설했다. 베트남에 진출한 외국계 은행 중에서 영업점포 수, 취급금액, 고객수 모두 1위다. 2017년 법인 인가를 받은 우리은행은 14개 점포를 운영하고 있으며, 20개 점포 개설을 목표로 공격적인 영업을 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2019년 11월 1조원을 투자해 베트남투자개발은행의 지분 15%를 취득했다. 그 외 KB국민은행, 농협, 각 지방 은행들까지 한국의 어지간한 은행들은 모두 베트남에 진출해 있다.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한국계 은행은 고맙다. 사업 진행에 필요한 복잡한 투자 절차나 간단한 법률 상담도 해주고 베트남에 시장조사를 하러 오는 기업들에 다양한 정보도 제공한다. 해외에서 한국인으로서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곳은 베트남밖에 없지 싶다.

[우리가 모르는 베트남](5)한국 은행도 진출한 금융시장의 잠재성

일본 은행들 현지 은행 지분 확보 나서

일본계 은행 역시 베트남 금융산업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 일본 미즈호 은행은 베트남무역은행 지분 15%를 보유하고 있이며, 미쓰비시UFJ은행은 베트남산업은행 지분 20%를 확보하고 있다. 최근 베트남 언론에 따르면 미쓰비시UFJ은행은 지분 상향 제한이 풀리면 지분을 50%까지 확보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그렇다면, 다들 왜 이렇게 베트남 금융시장에 투자하는 것일까? 인구 1억명에 가까운 베트남 금융시장의 어마어마한 잠재성 때문이다. 2019년 6월 베트남 파이낸스(Vietnam Finance)가 베트남 중앙은행 발표를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4500만개의 베트남인 계좌가 개설돼 있으며, 이는 동일인의 중복된 계좌를 제외한 수치다. 9817여만명인 베트남 인구의 46%, 성인의 63%가 금융거래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2015년 대비 2배 성장한 것으로 베트남 사람의 금융거래 이용률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금융 거래 이용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표현에도 역사적 배경이 있다. 1975년 미국과의 전쟁이 끝나고 베트남 정부는 화교를 축출하기 위해 2차례에 걸쳐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수많은 화교가 떠났고, 지금도 화교는 동남아 중 베트남에서만 영향력이 작다. 하지만 가지고 있던 돈이 순식간에 휴짓조각이 된 것을 본 베트남 사람들은 그 트라우마로 금융거래를 꺼리게 됐다. 그 때문에 베트남 사람은 안정적인 미국 달러, 유료화와 같은 외화를 집 금고에 보관하는 것을 선호한다. 특히 보관이 용이하고 어디서나 자산가치를 인정받는 금을 선호한다.

베트남 경제가 지속적으로 고성장하고 2015년부터 미국 달러 대비 환율 변화도 연간 2~3% 수준으로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어 베트남인 사이에서 금융거래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고 있다. 몇년 전 호찌민 인근 지방의 부호가 1톤 트럭에 현금을 한가득 싣고 신한은행에 예금하겠다고 한 일도 있다.

요즘 베트남 MZ세대는 일상적으로 모바일 전자지갑으로 밥을 먹고 택시를 타며 영화표를 예매한다. 하지만 불과 몇년 전만 해도 먼 미래의 이야기였다. 앞으로 베트남의 발전은 풍부한 상상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유영국은 아모레퍼시픽과 NICE 그룹에서 근무하면서 베트남에서 10년째 화장품 업계에서 일하고 있다. MBC 라디오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 등에서 베트남 경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유영국 <왜 베트남 시장인가>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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