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부심’ 부추기는 기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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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그것도 서울에서 내 집을 마련한 사람이라면, 그것도 지방 출신이라면 엄청난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이것을 요새 식으로 ‘집부심’이라고 불러보자. 내 집 장만 과정에서 많은 고생을 했으리라. 우리가 그러한 ‘집부심’을 존중하는 것은 당연하다. 폄훼하고 무시할 이유는 전혀 없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그런데 이러한 ‘집부심’이 집 없는 사람을 무시하고 비하하고 집단 따돌릴 자격을 부여해주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집부심’을 비뚤어진 방법으로 대물림할 자격을 주는 것도 아니다. 가령 아이들에게 전세나 임대아파트 사는 아이들이랑 놀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이 비뚤어진 모습의 대표적인 예이다.

‘집부심’은 집과 나를 일체화한 나머지 계급의식으로도 발전한다. 칼럼니스트 김소민씨의 “공공임대가 부러우면 국민이 아닌가?”라는 글에서처럼, 아파트단지별로 가격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아파트단지에 사느냐가 자신의 계급이 되고, 아파트 가치에 대한 조롱은 자신의 가치에 대한 조롱이 된다.

‘집부심’ 과잉의 원인은 무엇일까? 너무 고생하고 살던 사람들이라 자신의 성취에 너무 도취하고 성취하지 못한 사람들을 보며 상대적인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일까? 아니면 가진 자산이 주택뿐이라 주택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는 것일까? 이에 대한 심리적 기제를 이해해 보고 싶지만, 긍정적으로 이해할 방법은 아직 못 찾았다.

‘집부심’을 정치적 목적으로든 아니든, 언론에서 더 조성하고 부추기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한다.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수도권에 5억 이하 (아파트가) 있다”, “우리 집 정도는 디딤돌 대출로 살 수 있다”고 말한 것을 비판한답시고, “수도권에서 가장 저렴한 아파트로 오인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입주민들은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는 김현미 전 장관이 거주 중인 아파트 주민연합회가 내놓은 성명을 그대로 실은 이유가 무엇일까? 아무리 장관을 비판하고 싶어도 그 잣대가 비뚤어져서야 바른 비판이 나오기 어렵지 않을까?

더 심각한 기사들을 보자. 공공임대 아파트를 공급한다는 기사에는 “공공임대 사는 애들은 엘거지”, “휴먼시아 사는 애들은 휴거지”라는 보도가 꼭 따라붙어야 할까? 호텔을 매입해서 제공하는 임대주택에 사는 사람들을 “호텔거지”라고 부르는 보도는 또 무엇인가?
언론까지 나서서 집 없는 사람들을 집단따돌림하고 모욕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런 기사들을 보면 일베와 언론의 차이를 모르겠다. ‘집부심’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집부심’이 비뚤어진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전혀 못 하게 된 것은 언론의 책임일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정치권에서도 “44㎡에 누가 사느냐”는 말까지 한다. 44㎡에 사는 4인 가족이 무슨 죄가 있길래, 그런 말을 듣고 살아야 하나. 말하는 정치권도, 보도하는 언론도 격이 떨어져 보인다.

지금 라디오에서는 마침 식당에서 서비스하는 분들 등 약자에게 하는 말이 자신의 인격이라는 캠페인이 나온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그리고 우리 언론과 사회가 집 없는 사람들, 집 없는 약자들에게 하는 말이 우리의 인격이라는 캠페인도 나오길 희망한다.

김윤우는 서울중앙지법·의정부지법 판사, 아시아신탁 준법감시인을 역임했다. 지금은 법무법인 유준의 구성원 변호사이고, 중소기업진흥공단 법인회생 컨설턴트 등으로 활동 중이다.

<김윤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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