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화염-유사과학이론 기반의 차별화된 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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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SF작가 존 스칼지의 스페이스오페라 ‘상호의존성단’ 3부작 제2권 <타오르는 화염>은 제1권 <무너지는 제국>에 비해 한방이 부족하다. 첫 권의 인상적 설정과 드라마틱한 전개를 이어받아 디테일을 더할 뿐. 다만 소설의 세계관을 뒷받침하는 ‘플로(flow)’ 개념만은 이채롭다.

<타오르는 화염> 한국어판 표지 / 구픽

<타오르는 화염> 한국어판 표지 / 구픽

우주 지름길 ‘플로’는 하이퍼스페이스(hyperspace·초공간)의 스칼지식 작명이다. 작품은 하이퍼스페이스의 기존 통로가 와해되고 전혀 엉뚱한 데서 신작로가 생겨난다고 가정한다. 이는 거대한 우주상업제국의 정치·경제·사회 질서에 심각한 파국을 초래할 터라 여러 이해집단이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려 벌이는 암투가 이 대하드라마의 재미다. 짧게는 일주일 길어봤자 한달 이내인 우주 비단길을 오가는 먼 미래, 변방행성의 천체물리학자 클레어몬트는 우주 곳곳을 그물처럼 연결한 이 교통망의 붕괴가 임박했음을 깨닫는다.

작가의 착상은 신선하다. 하이퍼스페이스가 웜홀을 경유하는 일종의 지름길이되 경우에 따라 아예 붕괴되거나 원래 위치에서 멀리 이탈할 수 있다고 봤으니까. 뭐든 영원한 것은 없다. 더구나 하이퍼스페이스는 안정된 여행로라기보다 미지의 특이공간에 가깝다. 그런데도 초공간을 항성 간 여행 통로로 삼는 과학소설 대다수는 우주선이 아무 데서나 스타게이트를 열고 하이퍼스페이스로 돌입했다가 목적지 부근 정상공간으로 다시 멋대로 튀어나오는 광경을 거리낌 없이 묘사한다.

반면 존 스칼지의 하이퍼스페이스는 이용조건이 까다롭다. 어디서나 ‘열려라, 참깨!’를 외친다고 벌컥 열리지 않는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우주와 긴밀하게 맞물린 일종의 공동(空洞) 네트워크다. 쓰기 까다롭고 영속되지도 않는 교통망인 만큼 한층 현실감이 증폭된다.

초공간 교통망이 불변고정이 아니라 수천수만년을 주기로 좌표가 변동되며 심하면 아예 없어질 수 있다는 가정은 지금까지 진전된 우주론 논의로 보아 개연성이 있다. 우리 몸을 이루는 중입자들(정상물질)과 전혀 물리화학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암흑물질조차 중력에는 영향을 미쳐 은하의 자전속도가 빨라지게 한다. 블랙홀에서는 빛조차 중력의 노예다. 끈이론은 중력이 우리 우주를 벗어나 이웃 우주들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이는 우주와 우주 간 충돌 가능성의 근거가 된다.

실제로 우주의 멍 자국을 찾는 천문학자도 있다. 그러니 평행우주들이 서로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면서 중력분포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면 여기에 딸린 초공간 네트워크 역시 교란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물질 혹은 질량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존재는 아직 밝혀진 바 없으니까. <타오르는 화염>은 플로 네트워크의 교란 원인이 우주상업제국인 ‘상호의존성단’ 결성 이전에 인간들이 저지른 모종의 사건 탓임을 시사한다. 정확한 내막은 제3권 <마지막 황제>에서 밝혀지리라.

SF는 세상(우주)의 변화가 인류사회를 어찌 변화시키는지 성찰하는 문학 장르다. 그런 만큼 ‘상호의존성단’ 3부작은 우리가 아직 검증하지 못했으나 있을 법한 물리환경을 제시한 다음 그 같은 유사과학이론의 토대 위에 인간군상의 이합집산과 오욕칠정을 정교하게 짜 맞춘다는 점에서 장르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다. 과학소설을 기본설정에서부터 눈에 띄게 차별화하려면 이야기의 근간이 되는 유사과학이론을 그럴듯하게 제시하는 재주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스칼지의 플로 이론은 매력적이다.

<고장원 SF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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