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스타벅스 커피는 왜 인기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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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그 나라의 역사, 문화, 관습, 기후, 사회현상 등 수많은 것이 반영된 압축판이다. 그 때문에 식음료 산업 트렌드를 보면 그 나라를 엿볼 수 있다.

2013년 스타벅스가 베트남에 런칭했을 때 모든 식음료업계는 초긴장했다. 세계적인 커피브랜드 스타벅스가 베트남에 들어왔으니 산업계 판도가 뒤집힐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일찌감치 베트남에 자리 잡고 있었던 커피빈은 주요 상권에 신규 매장을 열어 공격적으로 대응했고, 베트남 1위 커피체인점인 하이랜드 커피는 메뉴를 새로 단장하고 적극적인 할인 행사를 했다.

베트남 현지화에 성공한 KFC

베트남 현지화에 성공한 KFC

실제로 베트남 1호 스타벅스 매장은 연예인들과 유명인사들로 북적이는 말 그대로 핫플레이스이었다. 하지만 그 인기는 3개월을 못 갔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스타벅스는 2019년 783억동(약 37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베트남 커피체인점 시장에서 아슬아슬한 3위에 랭크됐다. 4등과 약 300만원 차이였다. 스타벅스는 2020년 12월 기준, 67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베트남은 세계 2위의 커피 수출국

이를 두고 일부 시장 전문가들은 베트남 소비자들의 소득이 낮아서 비싼 스타벅스 커피를 마실 형편이 못 된다고 말한다. ‘스타벅스 커피가 비싸다’라는 표현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커피값의 절대적인 금액보다는 정서적인 금액이 비싸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적정한 가격’이라는 기준이 존재하는데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한줄에 2000원 하는 김밥을 미국 브랜드 김밥이 6000원에 판다면 당연히 비싸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6000원을 소비하지 못할 정도로 소득이 낮은 국가는 아니지 않은가.

베트남 호찌민시에 있는 한 길거리 카페에 사람들이 모여 커피를 마시고 있다.

베트남 호찌민시에 있는 한 길거리 카페에 사람들이 모여 커피를 마시고 있다.

베트남에서 스타벅스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100년이 넘는 베트남만의 커피 문화 때문이다. 커피 하면 많은 이들이 브라질이나 콜롬비아 같은 남미를 떠올리지만 의외로 베트남은 세계 2위의 커피 수출국이다. 1857년 프랑스 선교사들이 커피나무를 들여와 재배한 이래 커피는 쌀과 함께 베트남의 주요 수출품이자 상징이 됐다.

베트남 어느 길거리에나 로컬 카페들이 즐비하고 골목길에서 우리나라의 목욕탕 의자 같은 작은 의자에 앉아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베트남 커피는 쓰고 신맛이 강한 로부스터인데 베트남 스타벅스에서 사용하는 원두는 미국에서 로스팅한 아라비카 원두다. 맛의 균질화를 위해 본사에서 공급하는 원두를 사용하는 전략인데 베트남 사람들이 선호하는 커피와는 동떨어져 있다. 아무리 고급 커피라고 해도 소비자 입맛에 안 맞으면 선택받지 못한다.

그래서 스타벅스를 찾는 베트남 소비자들은 커피보다는 알록달록한 그린티라떼나 달달한 티 음료를 주로 시킨다. 메인 음료인 커피는 잘 안 팔리고 부가 메뉴들이 잘 팔리니 스타벅스도 고민이 많다. ‘스타벅스=커피’인데 커피가 잘 안 팔리고 다른 음료가 주로 팔리는 상황이다.

베트남 현지화에 성공한 롯데리아 / 유영국 제공

베트남 현지화에 성공한 롯데리아 / 유영국 제공

그런데 스타벅스만큼 답답한 식품 업체들이 또 있다. 바로 맥도날드와 버거킹이다. 2014년 햄버거의 대명사 맥도날드가 베트남에 런칭할 때 패스트푸드 업계는 술렁였다. 호찌민에 1호점이 생겼는데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겠다고 하노이에서 비행기를 타고 와 먹고 가는 사람까지 생겼다. 첫 달에만 40만명의 고객이 다녀갈 정도로 대성공을 한 것처럼 보였지만 몇개월 지나자 사람들의 관심 밖 존재가 됐다. 막상 먹어보니 별거 없다는 반응이었다.

많은 외신이 베트남 맥도날드의 실패로 ‘패스트 로컬푸드’를 꼽는다. 길거리 행상이나 식당에서 쌀국수를 주문하면 이미 삶아 놓은 면발에 고기 고명만 얹어 국물을 부어내니 3분이면 음식이 나온다. 빠르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햄버거의 강점이 무너져 버린 것이다. 게다가 베트남에는 100년 전통의 바게트 샌드위치 ‘반미’가 있다. 베트남 소비자들에게 햄버거는 반미보다 3배 이상 비싼 짝퉁으로 인식되고 있다. 햄버거 마니아의 사랑을 받는 버거킹은 현재 베트남 전체에 9개 매장만 남았고,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샌드위치 브랜드 서브웨이는 베트남에서 아예 철수했다.

맥도날드와 버거킹도 외면당해

하지만 단순하게 베트남 로컬 음식 때문에 맥도날드가 실패했다고 하기에는 KFC와 롯데리아의 선전을 설명할 수 없다. 1997년에 진출해 135개 매장을 운영 중인 KFC, 1998년에 진출해 200여개 매장을 운영 중인 롯데리아는 베트남 패스트푸드 업계의 1·2등을 다투고 있다.

베트남 현지화된 맥도날드, KFC, 롯데리아(왼쪽부터)

베트남 현지화된 맥도날드, KFC, 롯데리아(왼쪽부터)

KFC와 롯데리아 성공 비결은 과감하게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버리고 현지인 고객이 좋아하는 ‘닭’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KFC는 메인 상품이 ‘치킨버거’이지만 버거에 관심이 없는 소비자들을 위해 ‘치킨+밥’ 메뉴를 선보였다. 최근에는 치킨 덮밥, 치킨텐더 마키와 같은 다양한 메뉴를 만들어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롯데리아 역시 베트남 소비자 입맛에 맞는 치킨 메뉴에 밥을 얹은 ‘치(킨)밥’을 판매하고 있다.

베트남 시장은 파악이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해외에서 유학하던 MZ세대가 코로나19로 대거 복귀하면서 소비시장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베트남 스타일의 진한 커피 대신 콜드브루나 아메리카노, 호주식의 롱 블랙과 같은 연한 커피시장을 확산시키고 있다. 새로운 것을 쉽게 받아들이는 또래 소비자들에 의해 시장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주로 베트남 중상층 거주지역과 금융기업들이 밀집한 도심지역에서 이런 변화는 확연히 드러난다. 단순하게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텀블러를 들고 와 커피를 받아 가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게다가 이 지역 주말 아침 맥도날드에는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아침 식사를 하는 부모들로 가득하다. 아직 베트남 전체로 확산한 것은 아니지만 일단 한 번 유행하면 삽시간에 변하는 것이 트렌드다. 이렇듯 베트남 시장은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해 예측해야 할 만큼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유영국은 아모레퍼시픽과 NICE 그룹에서 근무하면서 베트남에서 10년째 화장품 업계에서 일하고 있다. MBC 라디오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 등에서 베트남 경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유영국 <왜 베트남 시장인가>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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