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택조합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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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택조합(일정한 자격 조건을 갖춘 지역 주민이 조합을 구성해 공동으로 용지를 매입하고 집을 짓는 제도)이 사업을 포기하고 이를 다른 주택건설업자 등에게 양도하기로 하면서 주택건설업자 등이 이를 양수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대출하는 사례가 왕왕 있다. 무주택 조합원들이 원본(元本) 모두를 손실 보면서 토지와 사업에 관한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결정하는 모습에서 자포자기와 슬픔이 느껴졌다. 지역주택조합이 사업을 포기하는 사유로는 토지매입에 실패했거나 토지매입에 너무 많은 돈을 쓰는 바람에 사업성이 나오지 않아 시공사, 대출금융기관과의 계약체결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사진/ 강윤중 기자

사진/ 강윤중 기자

이것은 주택법상 95% 미만의 토지 사용권원을 보유한 지역주택조합이 일정한 원주민에게 매도청구하는 것이 제한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지역주택조합은 토지를 일일이 매입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토지비가 상승하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부지면적 95% 이상의 사용권원 확보를 위해 토지를 비싸게라도 매입해야 하는 입장에 몰리게 된다. 지역주택조합사업이 추진되면 지주들은 알박기 기회를 맞이한다. 어떻게든 부지확보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 비싼 가격에 매입하기 일쑤이지만, 매입하고 나면 사업성이 나오지 않아 건설사, 대출금융기관의 외면을 받는다. 반면 국가, 지방자치단체, LH 등 공사에게는 수용권이 주어지고, 원주민이라고 해도 예외가 없다. 사업 진행의 확실성은 물론이고, 예산을 일정시점에서 확정할 수 있으므로 지역주택조합 같은 리스크가 없다.

비교해보면, 도시계획시설사업·도시개발사업 등 개발과 관련한 법령에서 공개발주체·사개발주체 양자 모두에게 수용권을 주는 경우가 많다. 사개발주체가 일정한 원주민을 상대로 하는 매도청구라고 해서 제한하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이러한 제한이 토지확보를 전제로 하는 개발사업에 있어서는 사업실패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주택법에서만 이러한 제한을 두는 합리적 근거가 무엇인가를 잘 아는 사람이 극히 적다는 것은 위 제한이 ‘법은 상식적이어야 한다’는 명제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것을 뜻한다.

지역주택조합은 대표적인 서민조합이다. 정비사업을 위한 재개발·재건축 조합원들은 이미 부동산 소유자인 반면, 지역주택조합 조합원들은 가입 시부터 무주택 요건(일정한 1주택 포함)을 유지해야 한다. 따라서 위와 같이 원본을 모두 포기했던 사람들 대부분 무주택 서민이다. 피해자가 많아 여러 차례 지역주택조합 제도개선이 있었지만, 근본적 결함은 전혀 치유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서민의 내 집 장만 프로젝트가 처음부터 실패 위험이 높게 설계되었다는 것은 양심과 정의감에 불편함을 유발한다.

제안컨대, 지역주택조합과 관련해서는 앞서 본 매도청구권의 제한을 없애거나, 공적 주체들처럼 수용권을 부여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토지확보도 어려운데 주택을 건설하는 방법만을 허용해서는 안 되고, 직장주택조합처럼 주택을 매입하는 방법도 허용해야 한다.

현재 신탁사 한곳이 계약 중인 지역주택조합 또는 추진위원회만 해도 308개에 이른다는데, 여기에 속한 조합원 수만 해도 얼마나 많을 것인가. 이들 조합의 사업이 정상화되면 당장 부족하다는 주택공급에 숨통이 트일 것이고, 많은 무주택자가 유주택자로 전환될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도 제도를 개선하는 것만으로 상당한 정책효과를 볼 수 있다. 지역주택조합제도의 근본적 개선을 기대한다.

김윤우는 서울중앙지법·의정부지법 판사를 역임했다. 아시아신탁에 재직했고, 중소기업진흥공단 법인회생 컨설턴트 등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법무법인 유준의 구성원 변호사이다.

<김윤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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