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왜 중형서점에는 학습참고서가 많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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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독자 여러분 곁에 머물고 싶었지만, 시장 변화와 오프라인 독서인구 감소로 어려움을 겪게 되어 사업을 종료하게 됐습니다.” 지난 5월 이런 글귀를 남긴 채 한강문고가 문을 닫았다. 13주년을 한 달 앞두고 갑작스럽게 독자들에게 폐점을 알린 것이다. 폐점 이유로 꼽은 시장 변화는 무엇을 얘기하는 것일까?

서울 망원동 한강문고의 폐점을 아쉬워하는 독자의 쪽지. 서울 한강문고는 지난 5월, 13주년을 한 달 앞두고 문을 닫았다. / 한강문고 페이스북

서울 망원동 한강문고의 폐점을 아쉬워하는 독자의 쪽지. 서울 한강문고는 지난 5월, 13주년을 한 달 앞두고 문을 닫았다. / 한강문고 페이스북

2007년 한강문고가 생겼을 때 먼저 좋아한 것은 아이의 참고서와 문제집을 찾는 학부모들이었다. 이전까지는 종로통을 나가서야 참고서를 살 수 있었는데 이젠 동네에서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2017년 4월 교보문고 합정점이 들어서고 1년 6개월이 지난 2018년 10월부터 참고서와 문제집을 판매하면서 매출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13년 만에 문 닫은 한강문고
한강문고는 불광문고의 분점이다. 불광문고는 1996년 불광역 바로 앞에 150평 규모로 문을 열었다. 1999년엔 50평을 확장해서 음반, 게임 CD, 문구 매장을 볼품나게 만들었다. 당시 직원은 11명. 2005년 30평을 더 늘려서 아동도서매장을 구성했다. 이와 같은 성공의 가능성을 보고 망원동에 한강문고를 낸 것이었다.

한강문고는 인문과학과 문학을 중심으로 독자를 만나고자 했으나, 이미 2000년대 초부터 이와 관련한 독자는 온라인서점 알라딘을 중심으로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었다. 정작 팔고 싶은 책은 그다지 팔리지 않고 참고서와 문구가 매출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던 중 교보문고 합정점이 생기고 문구 할인매장이 근처에 들어섰다. 단행본의 매출은 늘지 않는 상황에서 임대료 인상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폐점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불광문고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강문고 직원을 받아들일 형편이 아니었다. 수차례 확장으로 매장은 커졌지만 10여년 동안 매출은 늘지 않았다. 도서를 다양하게 갖춰도 대형 프랜차이즈서점만큼의 크기는 되지 않았다. 오히려 물가 대비 수익은 감소세로 돌아섰는데 임대료는 매년 올라만 갔다. 이를 감당하기 위해 고정비를 줄였지만 결국 추가로 줄일 곳은 인건비밖에 없었다. 22명이었던 직원을 10명 남짓으로 줄였다.

서울에 400개 이상의 서점이 있지만 불광문고 같은 중형서점은 찾기 어렵다.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대형 프랜차이즈서점이 지역 곳곳에 있고 대학의 구내서점에도 자리 잡고 있다. 두 번째, 독자들은 온라인서점의 당일 배송으로 책을 구할 수 있다. 세 번째, 문화프로그램 등을 통한 차별성을 보여주기가 쉽지 않다. 이미 수많은 도서관과 문화센터에서 특화된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데 이를 넘어서는 기획은 대단히 어렵다.

그래서 그나마 살아남은 지역 중형서점은 결국 참고서 중심의 서가를 운영하게 된다. 지역 중형서점이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노력해온 이유가 여기 있다. 2019년 10월, “서점업의 경우, 소상공인이 약 90%에 달하는 소상공인 업종이며 영세 소상공인 서점의 주요 취급 서적이 학습참고서임을 감안, 대기업이 출점할 경우에도 36개월 동안 학습참고서를 판매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 마침내 입법됐다. 학습참고서 취급 기간을 제한하는 것이 법안의 핵심이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지역서점을 살리는 데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3년 뒤에는 어떤 방법으로 살길을 도모할 수 있을까?

서울 불광문고의 모습. 지역 중형서점은 생존을 위해 학습참고서에 매달린다. / 조진석 제공

서울 불광문고의 모습. 지역 중형서점은 생존을 위해 학습참고서에 매달린다. / 조진석 제공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노력하는 이유

지역 중형서점은 공공도서관과 학교도서관 납품을 현실 타개책처럼 여기고 있다. 납품 권한을 보장받는 ‘서점 인정제’가 대표적이다. 중형서점들은 납품 독점권을 위해서 중앙정부만이 아니라 수많은 지방정부의 조례에 무엇이 서점인지, 무엇은 서점이 아닌지 규정해달라고 요구한다. 학습참고서와 더불어 지역 중형서점의 생존권이 여기 걸려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서점단체는 동네책방이 새로 생겨도 가입을 권유하지 않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이다. 납품권을 독점하고 싶어서다.

서점 학습참고서도, 도서관 납품도 불가능한 동네책방은 무엇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할까. 학습참고서의 경우, 권리금을 내고 출판사에서 ‘지역 총판’을 인정해야 판매가 가능하다. 이미 지역에 자리 잡은 중형서점과 신규 동네책방이 이 권한을 두고 겨루는 건 쉽지 않다. 수많은 동네책방이 커피를 겸하고 다른 상품을 함께 취급하는 이유다.

그런데 이런 생존 방안조차 용납하지 않는 독소조항이 또 발목을 잡는다. “다음의 경우에는 대기업의 사업 진출을 예외적으로 허용키로 하였음. ① 카페 등 타 업종과의 융·복합형 서점은 서적 등의 매출 비중이 50% 미만이고 서적 등의 판매 면적이 1000㎡ 미만인 경우 서점업으로 보지 않기로 함(단, 학습참고서를 취급 판매하지 않은 경우에 한함)”이다. 학습참고서를 취급하는 서점만 예외적으로 보호하고 문화 행사가 열리는 책방, 독자와의 독서모임을 여는 책방, 책과 커피 등과 어우러져서 새로운 책방의 구성을 보여주는 책방은 서점업으로 보지 않겠다고 법규에 명시한 것이다.

생계형 적합업종인 ‘서점업’에서 동네책방을 제외하는 것이 왜 필요한가. 대기업 서점의 입점과 지역 중형서점의 텃세로 동네책방이 발도 못 붙이는 것이 지역문화를 위해서 좋은 일일까? 궁극적으로 서점의 미래를 위해서 도움이 되는지 되물어봐야 한다. 또 온라인서점과 대형 프랜차이즈서점만이 아니라 지역의 중형서점도 서점의 존재 이유가 단지 제 배를 불리고 생존만을 위한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이권에 몰두하는 서점과 서점단체는 대답해야 한다. 우리는 왜 서점을 하고 있는가? 독자들은 왜 서점을 찾는 것일까? 오프라인 독서인구는 누가 기르고 키우고 있는가.

<책방이음 대표·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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