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무조건 환영받는 건 아니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12월 초 골드만삭스가 테슬라 목표주가를 455달러에서 780달러로 높여 잡았다. 연말 S&P 500지수에 편입될 테슬라는 올해 주가가 5배 이상 뛰었다. 국내외 자동차회사들 또한 테슬라를 따라잡으려 기술개발 경쟁에 열심이다. 하지만 전기자동차의 미래가 늘 장밋빛은 아니었다.

단편 ‘느린 조각’이 실린 작가선집 「시어도어 스터전」 표지 / 현대문학

단편 ‘느린 조각’이 실린 작가선집 「시어도어 스터전」 표지 / 현대문학

1996년 미국에서 시판된 1세대 전기자동차 EV1은 갈수록 높아지는 인기와 반대로 지레 겁먹은 개발사 손에 허둥지둥 단종되었다. 근본 원인은 전기차가 기존 내연기관 완성차업계를 고사시킬지 모른다는 이해집단의 공포였다. EV1은 1회 충전으로 160~300㎞를 시속 130㎞에 주파하는가 하면 내연기관과 달리 제조공정이 무척 단순해 대대적 구조조정을 예고했다. 더구나 휘발유를 쓰지 않는 차라니 정유업계 눈에 달가울 리 없었다. EV1의 개발사는 아이러니하게도 내연기관 완성차업계의 공룡 GM이었다. 결국 GM은 자의 반 타의 반 멀쩡한 전기차들을 사막에다 대거 살처분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이로 인해 환경오염을 줄이되 가성비가 뛰어난 전기차를 다시 만날 때까지 사람들은 1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시어도어 스터전의 네뷰러상과 휴고상 단편 수상작 ‘느린 조각(Slow Sculpture)’은 1970년 작이나 같은 맥락을 러브스토리 형식으로 풀어낸 도덕극이다. 한 발명가가 대기오염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신기술을 개발하지만, 그 엄청난 잠재가치를 알아본 공해기업들(자동차회사들과 정유기업들)에 의해 후한 값에 팔린다. 그래 봤자 그 기술이 창고 깊이 처박힐 운명임은 불문가지. 그가 연이어 개발한, 인류에게 이로운 다른 첨단기술들도 같은 신세다. 구매자들이라곤 기존의 이해관계 민감한 대기업들밖에 없으니 발명가는 돈방석에 올랐어도 우울증에 시달린다.

자포자기에 은둔형 외톨이가 된 이 발명가는 우연히 유방암으로 고통받는 한 여인과 조우한다. 기존 의학기술로는 어찌할 수 없는 중증이지만 자신이 개발한 생체전하변환장치로 죽어가던 세포 하나하나를 고압전기로 활성화해 스스로를 재생하게 만든다. 그러나 장기간 피해의식에 시달려온 발명가는 이 여인이 그의 치료를 무면허의료행위라고 떠벌리거나 치료해주려 집에 데려온 것을 두고 납치라고 고발할까봐 두려워한다. 다행히 여인은 첨단기계장치발명에는 도가 텄지만, 인간관계에는 어두운 이 방안퉁수에게 고마움을 넘어서 연민의 감정을 품는다. 발명가는 살면서 처음으로 이 사람은 믿어볼 만한 것 같다고 기대한다. 이 단편은 익숙한 러브스토리 구조를 빌려 과학기술이 우리 삶을 개선하려면 무엇부터 선결되어야 하는지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스티브 워즈니악에게 스티브 잡스가 없었다면 퍼스널컴퓨터의 등장이 얼마나 늦어졌을까? 일론 머스크는 공룡기업 경쟁자들의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전기차 시장을 홀로 안착시켰고, 우주운송 비즈니스에서 민간사업모델을 구현해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그런 잡스와 머스크조차 자신의 사업을 뒤흔들 신기술과 직면한다면, 그것이 온 인류에게 실로 멋진 신세계를 선사할 수 있다 해도 눈앞의 이익을 지키려 변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혁신은 늘 기성권력의 비위를 건드린다. 시스템이 혁신기술을 사장해 사회발전을 저해하는 일이 없게 하려면 길은 하나뿐이다. 바로 우리 모두가 늘 주위를 살피는 파수꾼이 되는 것이다. 공짜 점심은 없다. 과학기술에 정의를 요구하고 싶다면 먼저 인간 자신부터 정의로운지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고장원 SF평론가>

장르물 전성시대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