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주인은 누구여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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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반, 성장의 극을 달리던 일본 부동산 가치는 정점을 찍었고, 일본 부동산을 전부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돌았다. 그러나 버블 붐은 종지부를 찍고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린 장기 불황이 일어났다. 전국에 짓다 만 맨션과 리조트가 널려 있었다.

「푸시- 누가 집값을 올리는가」 / EBS D-BOX

「푸시- 누가 집값을 올리는가」 / EBS D-BOX

코로나19 재유행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상향되면서 소상공인과 임차인들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며 아우성을 지른다. 반짝 ‘착한 건물주’가 유행했지만 일부 선의로 상황을 바꿀 순 없는 노릇이다. 부동산 문제로 갑론을박 와중에 참고할 만한 다큐멘터리 하나 소개한다. <푸시- 누가 집값을 올리는가>는 “도시를 떠나야 할 때가 언제냐 하면 빈티지 옷가게가 생기고 예술가들이 몰려들 때다. 곧 땅값이 오를 테니까”라는 인상적 도입부로 시작해 유엔 주거문제 관련 특별조사위원 레이라니 파르하의 여정을 따라간다.

토론토, 런던, 바르셀로나, 베를린, 발파라이소, 뉴욕, 밀라노… 세계의 대도시들은 공통적으로 집값 폭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토론토에서 지난 30년간 집값이 425% 오를 동안 임금은 133% 올랐다. 부동산 가격은 치솟는데 실거주자는 점점 줄어든다. 매입 주체는 부동산 관리회사와 그 자본을 대는 초국적 금융자본들이다. 공실률이 높으면 손해 볼 것 같지만 거대 자본은 오히려 리모델링을 통해 수익을 극대화한다. 동명의 영화로 유명한 ‘노팅힐’ 인근 그렌펠 타워 화재가 예시다. 저소득 노동자 계층이 살던 낡은 건물 화재로 이재민이 된 시민에게 노팅힐에서 살 능력이 안 되면 떠나라는 정치인의 일화는 뭐가 단단히 잘못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영화에는 쟁쟁한 게스트가 등장한다. 도시이론 권위자 사스키아 사센,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사회운동가 출신 바르셀로나 시장 아다 콜라우, 르포 작가 로베르토 사비아노 등이다. 이들의 해법은 같은 문제를 안은 도시들의 정보 공유와 공동대응이다. 그리고 도시 주거권이 보편적 인권임을 확인한다.

영화 후반 카메라는 서울을 경유한다. 감독은 한국이 지난 50년간 경제성장을 일궈냈지만 이를 위해 ‘브루탈리즘(brutalism)’ 개발을 감수했다고 딱 한줄로 정리한다. 용산 참사의 생존자가 이를 증언한다. ‘세계 3위 규모 연기금’인 한국 국민연금이 서민 은퇴자금 마련을 위해 다국적 부동산 회사에 투자하는 모순이 드러난다.

잔뜩 공부는 했지만 가슴이 답답할 이들에게 권한다. <JR의 벽화 프로젝트>는 전방위 예술가 JR의 ‘도시의 초상화’ 작업을 담은 단편이다. 1000명의 샌프란시스코 시민, 노숙인과 거리 예술가, 이민자와 성소수자, 노동자와 기업가 등이 한데 모여 ‘도시의 얼굴’을 완성한다. 도시의 주인은 누구여야 하는가에 대한 작은 대답이다. 두 작품 모두 EBS D-BOX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로 만날 수 있다.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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