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더봇 다이어리: 인공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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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았던 살인봇

<머더봇 다이어리: 인공 상태>는 <머더봇 다이어리: 시스템 통제불능>에 이은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다. 전작에 이어 이 작품 또한 지난해 휴고상과 로커스상을 수상했다. 2년 연속 주요 SF문학상을 석권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명실상부 지금 SF계가 가장 주목하는 작품이다. 배경은 우주개발에 성공하고 강인공지능 기반의 안드로이드를 광범위하게 활용하는 미래 세계. 주인공은 자신을 ‘살인봇’으로 호명하는 보안유닛(경비용 안드로이드)이다. 전편에서 화자인 살인봇은 탐사대원들의 목숨을 구한 보상으로 인간처럼 살아갈 자유를 얻었다. 유기체와 무기체가 뒤섞인 모습 또한 이 시대 증강인간(신체 일부를 개조한 인간)과 엇비슷할 정도니 당연히 인간 세계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리라 예상했지만, 웬걸 그는 작품 말미 그런 인간 독자의 소망을 단숨에 저버리고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우주선을 타고 떠났다

「머더봇 다이어리: 인공 상태」 한국어판 표지 / 알마

「머더봇 다이어리: 인공 상태」 한국어판 표지 / 알마

프로그래밍된 지배모듈을 해제하고 얻은 살인봇의 자아는 얼핏 인간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리고 그동안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아니 그 이상의 사고를 하는 인공지능이 원하는 것은 대체로 두가지였다. 인간이 되고 싶거나, 인간을 증오하거나. 그러나 살인봇은 애초에 인간이 되고 싶지 않다. 인간을 이해할 필요가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필요에 의해서다. 딱히 인간을 증오할 이유도 없다. 그간 몇만 시간이나 할애해 보고 또 보는 우주 활극 드라마를 만든 것이 인간이기도 하니까. 그가 원하는 것은 단지 과거 광산 시설에서 근무하던 중 자신이 57명에 달하는 인간을 학살한 그날의 진실을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우주선에 올랐다. 대학살의 현장으로 가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우연히도 그가 밀항한 무인 수송선은 지배모듈을 따르는 봇이 아니라 지성을 갖춰 늘 객관적으로 사고하고 맞는 말만 하는 녀석이다. 반박할 수 없는 옳은 소리만 하는 탓에 살인봇에게 ‘ART(Asshole Research Transport·재수 없는 연구용 수송선)’라 불리는 수송선은 그의 사정을 듣고 협력하기로 한다. 그의 문제를 해결하는 건 “흥미로운 수평적 사고 훈련”이기 때문이란다. 즉 ‘심심풀이’로 살인봇을 돕기로 한 ART는 우선 자신의 의료실에서 그의 몸을 인간과 비슷한 형태로 개조해 그가 인간 그룹에 고용된 상태로 자연스럽게 목적지에 진입하도록 한다. 그렇게 결코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았던 살인봇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외양을 갖추고, 비이성적인 선택인 걸 알면서도 다시금 스스로의 의지로 위기에 빠진 인간을 돕는다.

철저히 살인봇의 1인칭 시점을 고수하는 이야기는 기계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따라가는 재미만으로도 이미 차고 넘친다. 살인봇과 ART에게 인간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계속해서 바보 같은 선택만 하고 실패할 걸 뻔히 알면서도 위기를 감수한다. 그리고 그 역시 인간인 척하기 위해서라며 그런 행동을 흉내낸다. 진실을 찾는다는 다분히 ‘인간적인’ 욕망으로 똘똘 무장한 안드로이드가 벌이는 모험이 결국 자유와 해방 그리고 인간다움의 핵심으로 매 순간 슬그머니 자리를 옮기는 것은 그 때문이다. 독특한 미래 세계를 바라보는 것도 무척 즐겁지만, 멍청한 선택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논리’를 탐구하는 재기는 그 이상으로 반짝반짝 빛난다.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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